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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의 상상력(권용선)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4-29 15:38
조회
681

권용선/ 수유너머104 연구원


 감염병 시대. 비대면적 관계의 일상화는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외부활동이 줄어들고, 가계 수입이 감소하고, 학습권이 위축되고, 친밀감에 기반한 사회적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흔쾌히 불편과 고통을 감수한다. 그 어떤 것도 생명 자체보다 우선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 사태 이전의 삶으로 온전히 되돌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자본과 정치권력의 핵심들은 비용과 효율성의 차원에서 이미 시민들의 삶을 새롭게 기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때마침 교육과 경제, 문화 영역의 상당 부분이 온라인 혹은 비대면적 방식으로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학습중이다. 특정한 기술과 지식이 주목받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동안, 어떤 일자리는 사라지고 어떤 공간은 폐쇄되고. 사회의 가장 위험한 모서리를 붙잡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소리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디스토피아의 상상력.


 하지만 바이러스가 주는 공포와 피해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행되는 동안, 작은 기적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숨죽여 있던 비인간-생명들의 조용한 활기. 베네치아 수로의 물색이 투명해지자 사라졌던 백조들이 돌아왔고, 누렇고 탁하던 서울의 봄 하늘이 몇 해만에 쨍한 푸른빛으로 선명해졌다. 차량의 통행이 끊긴 로키산맥 근방의 고속도로는 순한 야생동물들의 산책로가 되었고, 사라졌던 곤충과 식물들이 다투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비로소 지구가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위성에서 본 베네치아 모습.  2020년 4월13일(위)과 2019년 4월19일(아래).
흰점들이 크고 작은 배들이다. 유럽우주국 제공
사진 출처 - 한겨레


 돌아보면, 코로나19라는 이름의 바이러스가 출현하기 전에도 지구는 끊임없이 위험의 징후를 발산하고 있었다. 이상고온현상이 지속되면서 빙하가 녹아내리고, 크고 작은 지진이 지구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생태계의 교란으로 특정 생물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거나 감소하고, 거처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인간들의 생활권역 안으로 드물지 않게 끼어들곤 했다. 보다 쾌적하고 풍요로운 문명의 삶을 향한 욕망이 가속화되면서 생명계 전반의 안정성은 급격히 와해되어갔고, 서식지를 잃고 방황하던 어떤 동물들은 바이러스의 매개체 혹은 숙주가 되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개발과 발전, 이윤과 축적, 과시와 폭력을 둘러싼 욕망을 멈추고 돌아보지 않는다면,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지금보다 더 진화된 형태로 우리 앞에 되돌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말해야 할 것은 유연한 사회적 거리두기 혹은 거리두기의 해제 이상의 그 무엇이어야만 하는 건 아닐까. 바이러스의 확산과 감염을 막기 위한 방역,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 사회 경제적 활기를 기대하는 국가적 차원의 기금 분배는 오히려 사태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숙고해야 할 것은 오히려 거리두기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비인간-생명들과 거리두기. 그것들이 본래 자신들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기. 훼손되고 위축된 지구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


 이런 점에서 나는 지난 4월 15일의 국회의원 선거가 제법 아쉬웠다. 수구파 정치 세력의 축소는 그 자체로 반길 만한 것이었지만, 거대 여당과 불가피함을 핑계로 출현한 위성정당의 협업은 한동안 국회 안에서 ‘다양한 소수의 목소리’를 독점하거나 은폐할 테니까. 만약, 창당준비에서 멈춰버린 동물당이 실제로 정당 등록을 마치고 선거운동 판에 뛰어들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서 유럽의 어떤 나라들처럼 의회에 좌석을 차지한다면, 그들이 동물인지감수성을 주장하고 동물인지정책을 만들고 동물권을 입법화한다면, 나아가 동물들에게도 시민권을 주자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정치에 관한 조금은 유쾌하고 발랄한 상상을 시작하게 되지 않았을까. 저 유명한 68혁명의 구호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근본을 재기획할 수 있는 ‘상상력에 권력을’ 부여하는 데 있는 건 아닐까. 어떤 점에서 정치란 무한히 뻗어나가는 상상력을 법의 언어로 갈무리하는 능력, 보다 많은 그리고 충분히 다양한 삶들을 함께 살릴 수 있는 상상력의 현행화와 관련된 활동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