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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세력의 국가사유화 (정재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5:41
조회
339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군사 독재가 종식되고 정권의 교체도 경험하게 되면서 최소한 정치적 민주주의, 제도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는 안정화에 접어들었다고 말하던 시기에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제 아주 심각한 정치적 문제는 점차로 사라져 가고 그 동안 상대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집중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보니 비록 학위를 위해 정신없는 나날들이었지만 조금은 다른 여유를 갖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유학 자체도 힘든 과정이었지만, 점차로 국가의 권위주의적 성격이 강화되고, 시민사회는 탄압받아 질식 상태였으며, 스킨헤드 등 외국인 혐오증이 사회에 만연하는 등의 문제를 겪으면서 더더욱, 최소한 그 정도는 아닌 소위 민주화를 달성한 한국으로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시절이었다. 유학 말기에 한국에서는 다시 보수 정권으로의 정권 교체가 있었으나, 많은 이들의 바람처럼 이제 ‘민주 대 반민주’의 시대는 지나고 합리적인 ‘보수 대 진보’의 정책 경쟁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설사 이렇게 다시 보수 정권으로 정권이 교체되어도 커다란 후퇴는 없을 것이라 기대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필자는 현실 사회에서 보수 세력이라는 것은 사전적 정의인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거나 기존 사회 체제 유지를 통한 안정적 발전추구가 아닌 탐욕과 특권의 독점적 확보와 확대를 추구하는 기득권 세력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왔다. 즉 정치 사회의 보수 정당 세력은 이 사회의 지배 집단의 이익을 반영하는 세력들 중 일부분일 뿐이며, 부를 독점하고 착취하고 지배하고 있는 실제 세력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헤게모니 하에서 그들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집단과 오랜 기간 세뇌된 집단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강조해 왔다.


바로 이런 생각을 지지하듯 보수 정치 세력이 정권을 잡자마자 이들을 앞세운 사회의 기득권세력에 의한 노골적이고 급격한 총체적 퇴보가 시작되었다. 한 네티즌이 공중파 뉴스에만 나온 자료를 가지고 한국이 헬조선인 이유에 대해 트위터에 올린 내용이 화제가 된 바 있었다. 그에 따르면, OECD 국가들 중(때로는 조사 대상 국가들 중) 아동 복지비 지출 등 전체 복지비 지출비율, 의료비 공공부담, 언론의 자 , 여성의 사회 참여, 아동 삶의 질, 노인 소득, 삶의 만족도, 고용 안정성, 노동 의욕, 직장인 유급 휴가, 수도권 주거 행복, 성평등도, 사회자본지수, 교사만족도, 수면시간, 아동 성범죄 처벌 정도, 유리천장지수, 행복지수, 출산율, 은퇴 후 생활 자신감, 가족과 같이 보내는 시간 등은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반면, 가계 부채 증가율, 국가 부채 증가율, 물가상승률, 산업 재해 사망, 교통사고 사망, 의료비 지출, 사기사건 발생률, 실업률 증가, 노동시간, 최저임금 이하 비율, 사교육비 지출, 노인 빈곤율, 정규직 해고 용이성, 남녀 임금 격차, 일자리 포기 청년 비율, 여성 · 노인 · 청소년 자살률, 고령층 부채자 비율, 등록금 부담, 아동 학업 스트레스, 대기 질 등은 최고를 기록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들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며, 더 큰 문제는 이번 정권이 들어서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지표들은 모두 수위를 다투거나 꼴찌를 다툰다는 점에서 단순히 어느 나라에서나 나타나는 사회문제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게다가 최고/최하만 아닐 뿐 심각한 여러 사회문제들이 한층 더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이렇게 거의 모든 지표들이 보여주듯 모든 측면에서 사회가 파탄 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은커녕 엄청난 실정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와 같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사건이 아닌 경우에도 그 대처와 수습과정에 있어서의 대혼란, 진상규명 방해, 원인 은폐 등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한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외에도 아주 많이 추려서 굵직굵직한 몇몇 주요 사건들로만 한정해도 문제가 심각하다.


66752_135256_3543.jpg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잇따른 인사 참사, 윤창중 성추행 사건, 기초노령연금 공약 파기, KTX민영화, 의료 · 가스 · 철도 민영화 추진, 교학사 교과서 논란,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카톡 검열, 전시작전권 전환 공약 파기, 정윤회 비선 실세 의혹, 경남도 무상급식 포기 및 공공의료 기관 폐쇄, 통진당 강제 해산, 각종 비위 장관 억지 임명, 교과서 국정화 강행, 건국절 논란 유도, 성완종 리스트, 미군 탄저균 배달 사고, 각종 검찰 비위 사건 및 정치검찰의 불공정한 편파적 기소, 테러방지법 입법 강행, 위안부 졸속 합의, 개성공단 폐쇄, 노동법 개악 시도, 전교조 법외 노조화, 박정희 우상화 작업에 예산 낭비, ODA의 새마을 운동화, 4대강 수질 악화 방치 및 확대 기도, 세월호 특조위 조사 방해 및 임기 종료, 가습기 살균제 조사 방해, 고 백남기 농민 사건, 사드 배치 강행, 일베 등 방조, 롯데 · 어버이연합 · 권력 실세 등에 대한 비호 및 엉터리 수사, 문화계 블랙리스트, 청와대 주도 미르, K-스포츠와 전경련 등의 연루, 그리고 최근 우병우, 최순실 등 비선과 초법적 특권 세력들의 권력 남용 및 비위 사건 방조 등등 나열하는 것 자체도 버거울 정도로 사태는 심각하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이 말 그대로 우연히 일어날 수도 있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건들에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비리나 부정, 불공정 행위들은 빠져 있다. 위에 나열한 사건들로 한정하더라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실정과 사건들 속에서도 기득권의 이익과 이해를 위한 조치가 취해지고 있었다는 것이고, 설사 그 와중에 명확히 법적인 위반이 드러났다 하더라도 제대로 조사되거나 처벌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기득권들의 국가 사유화 과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상황에서 헬조선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병들고 다치고 죽어가고 있다. 자살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범죄로 빠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로를 증오하고 혐오하는 풍토가 생겨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기득권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상황에서 안타깝게도 힘들게 사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조금이라도 다른 집단들, 약한 집단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혐오의 감정을 드러내며 불만의 화살을 돌려 댄다. 당연히 이러한 과정에도 저들은 개입한다. 가짜 시민사회단체들을 만들어서 서로에게 화살을 겨누게 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지지기반이 되고 있는 일베와 같은 젊은 극우 범법자들을 적극적으로 방조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근본적인 물음을 물어야 한다. 저들은 왜 저렇게 뻔 한 거짓 선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뻔한 은폐와 왜곡을 반복하는 것일까? 당연히 이 모든 짓들은 죄상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 그 첫 목표이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우리는 최순실 사태를 겪으며 확실하게 배우고 있다. 이 와중에도 현재 조선일보를 필두로 기득권 세력들은 박근혜 카드를 일정정도 버리면서 소위 비박 혹은 개혁파들을 내세우며 세력을 재편하고 있다. 부화뇌동하는 일부 야권 세력들까지 끌어들일 경우 그 파장은 꽤 클 것이다. 그러나 현재 최순실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는 기득권 연합, 즉 새누리당, 국정원과 검찰 등 각종 관료 집단, 재벌, 그리고 사회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기득권 집단 등등이 연출하는 쇼에 속아서는 안 된다. 자격이 안 되는 대통령을 앞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해 온 이들 집단에 대한 시민사회로부터의 통제와 감시, 견제 장치가 확보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 글은 2016년 11월 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