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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과 기침, 선풍기와 골절 그리고.... (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5:36
조회
516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 네트워크 ‘젠더고물상’


열흘이 지나도록 기침이 멎질 않는다. 처음엔 가벼워 곧 끝나려니 했는데, 당사자인 나나, 옆의 가족까지 잠을 설치는 날들의 연속이다. 괴롭고 미안하다. 며칠 전 병원엘 갔더니 에어컨 바람이나 선풍기 바람이 원인일 수 있다고 한다. 약을 복용하고 있는 데도 나을 기미가 없어 오늘은 기어이 주사까지 맞고 왔다. 매일같이 오가는 학교와 집은 온도차가 엄청나다. 추우리만치 에어컨 바람을 쐬다 집에 가면 그냥 선풍기 바람만으로는 견디기 힘들다. 물에 적신 옷을 걸치고 선풍기를 틀어야 그나마 견딜 만하다. 그 상태로 깜빡 잠이 들면 한 밤중엔 추워지게 되는데, 그것이 감기의 화근일 수도 있지 싶다. 여튼, 살인적인 더위다. 살아가는 햇수에 비례해 온도계 수치도 올라만 가고 있다. 한 친구는 기온이 내려가는 밤이면 창문을 열면 그나마 잘 수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그 라인 전체 가구들이 에어컨을 설치한 덕분에 위아래층의 에어컨 실외기의 더운 공기들이 들어와 잠을 잘 수가 없게 되었단다. 도저히 견딜 수 없던 친구도 결국 에어컨을 사러 갔지만 열흘 뒤에나 구입 가능하다는 답변만 듣고 왔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사정이다. 그리고 우리는 ‘악순환’을 말했다. 더위를 견디기 위한 현대적 처방들이 더위를 더욱 증가시키는 순환고리에 대해.


오늘 병원 가는 길, 누군가 ‘아줌마’ 하고 부른다. 설마? 하며 돌아보니 다부진 체격에 지쳐 보이는 한 할아버님이 나를 응시하신다. ‘네?’ 하고 응답하니 ‘선풍기 파는 곳이 어디요?’ 하고 물으신다. 그 근처엔 없는 걸로 알지만, 혹시나 중고가전제품 파는 곳이 근처인지라 알려 드리고 가던 길에 그 상가를 들여다보니 문이 잠겨있다. 그 옆 만물상에 들어가 선풍기가 있는지 물어보자 없단다. 뒤에서 걸어오시는 할아버님이 보인다. 그냥 갈 수가 없었다.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것 같아 미안하고, 또 목소리에서 절박함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마침 내가 가는 병원 옆에 대형마트가 있어 동행하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아내가 갑자기 쓰러지는 병이 있으신데 오늘 또 발병을 하셨고, 쓰러지시면서 갈비뼈와 선풍기가 동시에 부서졌다는 것. 병원 측에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입원이 불가하다 하여 현재 응급처치 후 집으로 가야 할 상황이지만 선풍기도 없이 찜통더위에 염증이라도 생길까, 아픈 아내가 더위까지 어찌 견딜까 싶어, 아내를 병원에 둔 채 급하게 선풍기를 구하려고 하신 거다. 걱정과 절박성이 담긴 표정으로 선풍기를 구입해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문득 에어컨을 생각하다 바로 그쳤다. 에어컨이 있다면 선풍기가 절박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입구를 알려드리고 병원으로 향하는 맘이 저리다. 80이 넘으셨다는데, 넉넉하지 않을 듯 뵈는데다 아내의 지병과 당장의 치료까지. ‘힘드시겠다...’는 생각. 그러나 당신은 정작 자신의 힘듦보다는 할머니의 치유로 은유되는 선풍기에만 관심이 온통 집중되셨다. 에어컨이 옵션이 아니라 아파트의 한 부품이 되고, 생필품이 되고, 그 바람이 병을 만드는 시대에, 선풍기 한 대가 아내의 치유와 회복이 핵심 과제인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뭔가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뭔가 아닌 것이 무엇이었을까?


808194_20160602183218_230_0003.jpg사진 출처 - 전자신문


오늘 지인이 검찰의 출두명령을 받았다. 지난 총선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말을 전화상으로 했다가 ‘들통 난’ 것이다. 문자로는 가능하나 말로는 안 되는, 이상한 선거법 덕분이다. 그는 이제 ‘전과자’가 될 것이다. 정치인을 비교, 선택, 유통 및 홍보하는 정치적 소비행위를 적극적으로 한 덕분이다. 표현이 소비되고, 소비가 곧 표현인 요즘에 말이다. ‘선거’는 대의제에서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유권자들이 정치소비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즉 그동안 정치적 대상으로 존재하던 유권자들이 이 과정에서만큼은 정치적 주체로서 정치의제와 정치인을 비교, 선택, 지지, 선전과 홍보를 통한 권장 등을 통해 정치를 소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사람들이 그 다양한 만큼의 의사표명이 가능하고 그 표명된 의사들이 소통, 유통, 합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자본주의에서 상품에 대해 소비하는 형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의 삶을 정치적 의제화 하고 실행에 옮길 사람, ‘대표’라 불리지만 ‘대리’를 의미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과정은 상품의 소비과정에서 ‘적극적 유통’으로서의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 즉 ‘좋으니 선택해봐’라는 권장과 홍보의 과정이 그것이다. 그것에는 일대일, 일대다, 면대면의 대화, 전화, 메일, 문자 등 인간의 언어로 사용되는 모든 기호적 방법들이 동원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글로는 가능하되 말은 안 된다는 것은 인간의 직접소통을 단절시켜버림으로써 공동체를 해체하는 동시에 선택을 위한 정보획득의 기회를 막는 결과를 가져온다. 가장 열려있어야 할 민주적 과정이 어쩌면 가장 은밀하고, 은폐되고, 닫혀버린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쯤이면 민주주의를 조롱하는 것이 아닐까? 민주주의조차 그 범위를 정해주고자 하는 오만이다.


거침없는 소통이 권장되는 영역들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에어컨과 관련해 장황히 떠든 것은 그러한 맥락 속에 있다. 상품의 소비와 관련된 말들의 소통은 무한정 장려되면서 의식을 파고 들어와 필요 이상의 물건들을 소비하게 하고, 그로인해 우리 삶이 상품에 의해 역으로 소비되도록 만들어내는 말들, 그로인해 더위를 비롯해 ‘못 살겠는’ 상황이 강화되는 그런 환경이 되도록 만드는 말들의 소통이 그것이다. TV를 켜면 정규방송과 켜켜이 홈쇼핑 채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외 방송채널들은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홈쇼핑을 틀어댄다. 먹방, 쿡방을 위시해 ‘건강 염려증’을 유발하는 방송에서 어떤 음식이 좋다고 하면 그 옆의 홈쇼핑에선 어김없이 그 상품을 판매한다. 주부라는 정체성도 가진 나는 ‘가사노동을 간편하게 해주는’ 상품들에 눈을 뺏긴다. ‘사고 싶다’는 충동이 이는 순간이다. 대부분 찌든 때를 순식간에 없애주지만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제품이거나,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청소제품들이다. 어느 순간 그런 것들에 ‘혹’하고 눈을 뺏기는 자신이나 일회용품을 권장하는-실은 반복적 방송을 통해 세뇌시키는-그 현실에 화가 났다. 더위가 맹승을 떨칠 때, 그 주범의 하나인 에어컨을 ‘없으면 올 여름 거의 죽음’이라는 협박을 통해 소비할 것을 강요할 때도 화가 난다. 상품소비의 달콤한 강요는 딸 또래 아이들이 어떤 옷을 가졌는지 고려 없이 무의식적으로 옷을 사들이고 그로인해 넘쳐나는 옷을 정리할 줄 몰라 쌓아두는 습관을 갖게 하는 원인일 수도 있다. 모든 소비상품은 일회용품처럼 취급되면서 쓰레기는 넘쳐나지만, 그것들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도록 즉각 치워버리는 고도의 ‘양심회피’ 전략으로 인해 우리는 또 다른 쓰레기들을 양산하는 삶을 반복한다. 결국 그 결과는 ‘살인적 더위’를 넘은 그 무엇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레바논의 쓰레기 사태를 보면서, 저 많은 쓰레기들이 어디서 왔을까?란 경악과 동시에 쓰레기 재앙이 우리 모두의 현실이 될 날이 곧 올 것만 같은 불안에 포위되었었다.


상품의 소비는 이제 공급이 수요를 조종함으로써 수요는 공급의 노예가 된다. 상품의 선택은 따라서 자발적 선택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은폐된 강요와 협박’의 결과로 나타난다. 그 과정에 ‘말’과 ‘말의 유통’은 아주 적극적으로 권장된다. 그러나 정치의 소비에 있어서 그것은 반대의 과정을 강요받게 되고, 따라서 정치는 적극적으로 소비되지 못하고 수요가 줄어듦으로써, 수요자가 없는 공급현장은 공급자들끼리 수요자가 되는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치는 정치인들끼리만 소통, 유통, 소비하는 것이 된다. 상품소비의 영역에선 결코 권장되어선 안 되는 말들의 자유를 넘은 과도한 소통은 인간과 지구를 병들게 하고, 정치소비의 영역에선 결단코 권장되어야 할 말의 유통/소통들은 은폐되거나 폐쇄됨으로써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존재와 정치적 의제로서의 지구를 병들게 한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규제되거나 제거되어야 할 것은 일회용품을 비롯한 과도한 상품광고와 판매를 주도하는 쇼핑방송이다. 반면, 세뇌라도 좋으니 적극 권장되고 열려야 할 것은 정치를 소비하라는 주문과 말들이 유통되는 선거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의 세상에서, 나와 우리 스스로에 ‘반대하는’ 삶을 살도록 주문받고 있다. ‘너 자신을 상품으로만 소비하라’, ‘너는 정치적 존재가 되어선 안 된다’ 등등. 에어컨의 자리를 선풍기로 대체하고, 문자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소통기호가 유통될 수 있을 때 우리는 어쩌면 자신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도 있지 않을까? 상품소비를 규제하고 정치소비를 권장하는 삶의 양식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이 글은 2016년 8월 24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