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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복지는 정부 예산에 맞추기 복지인가 (정지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39
조회
226

정지영/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국장


헌법 제34조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34조 2항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이제 말하기도 지쳤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거꾸로 가는 시계가 언제 제자리로 돌아올지 암담하기만 합니다. 위의 헌법이 과연 대한민국의 헌법인지 확인하고 또 확인해 봅니다.


복지재정 효율화. 증세 없는 복지처럼 두 단어는 어색하기만 합니다. 최근 국무총리실 사회보장위원회는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 추진방안’을 의결하고 보건복지부는 곧바로 정비지침을 각 지자체에 통보하였습니다. 2015년이 100일도 남지 않았지만 2016년 각 지자체 예산에 반영될 수 있게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이란 무엇일까요? 비슷하거나 겹치는 것이 있다면 정리하는게 당연하겠죠. 그러나 5,891개의 지자체 자체 사업 중 1,496개의 유사·중복사업 정비목록은 각 지자체 각 분야의 정비계획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하는 걸 보며 ‘아!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고, 없는 사람 목을 조르는구나!’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업들이 노인·장애인·아동·저소득 계층 등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입니다. 무려 1조원에 달하고 기존 사업들의 대상자만 65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예만 몇 가지 들겠습니다. 먼저 장애인 활동지원 시 추가지원 사업은 보건복지부 발굴사업에 들어있습니다. 활동지원제도는 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사회참여를 지원하기 위하여 국가가 유급인력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최중증 장애인에게 최대 하루 13시간을 지원합니다. 하루 13시간 지원도 최중증으로 독거 상태여야만 가능한 시간입니다. 이 부족한 시간으로 인해 홀로 남아있던 김주영, 오지석 동지 등이 사망한 사건 이후로 지자체에서는 자체 조례를 통해 24시간을 채워 주었습니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처음 4명의 장애인에게 지원해주던 것을 20명까지 늘릴 계획이었으나 이미 보건복지부의 제동으로 10명만 지원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사업도 보건복지부의 지침에 들어있는 통폐합 대상에 들어있습니다.


20151014web01.jpg사회보장사업 정비추진을 반대하며 국회에서 여야 원내대표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져버리고 효율이라는 이름의 예산축소, 복지후퇴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농아인들을 위한 자막방송이나, 행사에서 수화통역을 해주시는 분들을 예전보다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각 지자체가 지원하는 수화통역센터에서 나오신 분들입니다. 수화통역센터를 통해 더 많은 청각장애인이 일반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일상생활과, 병원, 법원, 학교 등 수화통역사를 파견 받아 사회활동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손말이음센터의 ‘농인영상중계통역서비스’와 유사하다며 예산지원을 중단하거나 축소하려고 합니다.


정부는 ‘맞춤형 복지’의 시대로 전환한다고 합니다. 누구 기준의 맞춤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예산이 적자나는 것에 맞추는 복지 인가요? 당사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중앙정부가 담보해주지 못하기에 지역주민복지를 주 사무로 하는 지자체에서 주민이 뽑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자치의원들이 조례를 제정하고 합의하여 만든 사회보장 사업을 정부가 무슨 권한으로 통·폐합을 요구하는 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생각하는 ‘협의’는 ‘합의’ 또는 정부의 ‘동의’입니다. 각 지자체에 검토하라고 했을 뿐 강제한다고 한 적 없다고 하지만, 중앙정부와 협의 없이 진행한 사업비만큼 지방교부세에서 제하고 내려줄 수 있게 관계법령을 개정하고, 통폐합 검토 성과에 따라 지방단체 평가에 반영할 수 있게 한 것이 강요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한 번 헌법 34조 1항과 2항을 되새겨봅니다. 사회의 저소득층, 장애인들도 ‘모든’ 인간들이 가지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것, 사회보장의 효율화가 국가의 의무인 사회보장 증진과는 다른 말이라는 것을 박근혜 대통령의 머릿속에 어떻게 넣을 수 있을까요!


이 글은 2015년 10월 14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