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국제엠네스티의 반여성적, 반인권적인 성매매 비범죄화 결의에 저항하라 (정재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29
조회
286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살아가면서 우리는 무엇이 진보적인 관점에서 최선, 혹은 최선은 아닐지라도 무엇이 차선인지에 대해 단호하게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정도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종종 처하곤 한다. 제한되거나 왜곡되어 제공되는 정보들로 인해 이러한 곤혹스러운 상황은 자주 발생하곤 하는데, 특히 국제적인 성격을 갖는 경우, 명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킨다. 가령, 인류 전체를 위협할 수도 있는 핵무기 개발 위협이나 테러나 내전으로 인한 대규모 학살 등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강대국들의 물리적 개입은 격렬한 논쟁을 야기하곤 하며, 우리에게 진보적 관점에서의 지지와 비판, 그리고 반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던져 주고 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현장에서 많은 역할을 하는 국제NGO들의 판단이나 주장, 행동에 대해서도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최근에는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국제개발협력 NGO들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렇듯 언제나 ‘선’으로 정의되었던 NGO들에 대해서도 비판적 논의가 생겨나고 있는 데에는 다양하고 많은 이유가 있다. 사회의 근본적 변혁은커녕 시장자본주의체제를 교정만 할 뿐이라는 거시적 차원에서의 고전적인 좌파적 비판은 그만두더라도, 거대해진 국제NGO들의 관료주의화나 지역전문성의 약화, 지원 금융의 문제나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경향, 그리고 사변적 관념주의와 뿌리 깊은 서구 중심적 경향에 대해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우려를 보여주는 예가 바로 국제엠네스티의 성매매 비범죄화 결의이다. 그들은 성매매 여성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소외된 집단 중 하나이며, 차별과 폭력과 학대의 위험에 늘 노출돼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이들이 겪고 있는 학대와 폭력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성매매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비범죄화(decriminalizing)하는 것이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결의안에서 줄곧 ‘성노동(sex work)’, ‘성노동자(sex worker)’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데에서 보이듯 이번 국제엠네스티의 결의의 논리는 격렬한 논쟁의 한 축인 소위 ‘성노동자’론자들의 논리이다. 즉 이들은 성매매가 몸이나 인격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종의 ‘서비스’를 사고파는 일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에는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환원시키는 극단적인 관념과 여타의 서비스와 차이가 없거나 심지어 더 심한 서비스 노동이 더 많다는 극단적인 궤변, 그리고 성인 간의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직업선택의 자유에 속한다는 극단적인 자유시장주의가 깔려 있다. 물론 엠네스티는 성을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어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비범죄화가 된다고 이러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하다. 더욱이 그러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로 인한 고통은 고려하는 이들이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상대와 돈 때문에 성행위를 해야 하는 고통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20150825_64.jpg‘성매매 비범죄화’ 불 지핀 국제앰네스티
사진 출처 - 주간경향


그러나 이들이 성매매의 현실과 현장에 대해 무지하거나 알기를 기피한다는 데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성매매가 성판매자와 성구매자 간의 거래인 양 착각하는 이들은, 성매매 여성들을 고용해서 막대한 이득을 얻는 중간 알선업이라는 착취 고리를 애써 간과하고 있다. 서구에서조차 성매매업은 자영업적 형태가 아니라 중간 알선 착취자들의 막대한 이윤 창출의 영역이며, 성매매를 합법화한 국가들에서조차 여전히 이러한 불법 영역이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는 현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착취를 목적으로 하는 인신매매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인신매매에는 반대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경계는 매우 희미하다는 현실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는 그냥 표어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전 지구적으로 성매매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 다르며, 전반적인 여성인권에 대한 상황이 너무 다르다. 극소수의 서구 국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는 일반적 여성 인권 수준도 심각한 상황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외면한 채 자발성을 운운하는 것, 대부분의 성매매가 아동을 포함한 10대에 시작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구 중심적, 자유시장주의적, 남성성욕중심주의적 사고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국제엠네스티의 결의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성매매 산업 내의 식민주의와 봉건적 가부장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작동하는 권력의 본질을 간과하고 가난한 국가 여성들, 일국 내 빈곤층 여성들로부터 ‘성적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것을 직업 선택권 정도로 생각하는 반인권적, 반여성적 논리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다.


성적 자유와 성매매를 구별하지 않은 채, 자유로운 성행위 자체에 대해서만 집중하여 ‘할 만한 노동이나 서비스’로 판단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비범죄화로 인한 성매매 산업의 증가나 성매매 종사 여성의 증가 등은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그리고 성을 성스럽게 여기는 보수적 입장에서 보다 보니 성매매 여성들의 성은 또 더럽게 여기는 것뿐이라며 성매매에 반대하는 사회과학적 논리를 전혀 이해하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그런 허황된 입장에서가 아니라, 대다수의 성매매는 남성이 여성을 일방적으로 선택하며, 여성의 선택권은 없이 돈으로 원하지도 않는 상대와 성행위를 해야 하는 성적 자기 결정권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매매는 성구매자와 성판매자 간의 거래 행위가 아니라 가장 막대한 이윤이 남는 중간 성산업 착취자들의 탐욕적 이윤과 지대의 원천이며, 이러한 산업은 없어질수록 좋은 비공식 경제의 가장 추악한 부분이기도 하다. 노르딕 모델과 같은 대안 모델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내린 국제엠네스티의 포주와 성구매자 등 성산업 범죄자들의 인권만을 생각한 반인권적, 반여성적 결정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이 글은 2015년 9월 3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