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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일 (이광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22
조회
242

이광조/ CBS PD



얼마 전 가뭄으로 바짝 마른 논에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는 대통령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소방차가 실어 나른 물이 가뭄을 해소할리야 만무하지만 그나마 타들어가는 농심을 달래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여론은 뙤약볕 아래 무거운 소방호스를 들었던 대통령의 마음을 제대로 몰라주는 듯하다. SNS 상에서는 시위 진압용 물대포를 직사해서 모를 다 죽인다는 비아냥이 나오는가 하면 전형적인 전시성 이벤트라며 대통령의 진심을 폄훼하는 평가들이 넘쳐났다. 해당 지역 농민들 사이에서는 진즉에 와서 물을 줬어야지 너무 늦게 와서 모가 다 죽은 논에 물을 뿌렸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이 민생현장을 찾는 것이 비난 받을 일은 아닐 텐데, 뭔가 꼬여도 한참 꼬였다.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 울화통이 터질 일이리라.

민생현장을 찾는 대통령의 행보가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박 대통령의 정성에 냉소와 조롱이 쏟아지는 건 메마른 논에 물을 뿌리고, 메르스 공포 속에 전통시장을 찾아 쇼핑을 하는 등의 위민 활동이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역할의 본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슈퍼맨이나 원더우먼도 아닌데, 문제가 있는 모든 삶의 현장을 찾아서 해결사 노릇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누가 대통령에게 마블 영웅들의 역할을 바라겠는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국민통합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입헌군주국의 군주도 아니지 않은가. 메르스 사태와 극심한 가뭄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행보에 응원과 격려보다는 냉소와 조롱이 더 많이 쏟아지는 건 박 대통령이 ‘대통령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변죽만 울린다는 냉정한 평가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들은 정책을 통해 민생을 돌보고 현안을 푸는 정치인이자 국가 최고 지도자를 바라는 것이지 그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위안이 되는 스타를 바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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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청와대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각한 양상을 보이면서 당장 가뭄과 홍수를 해결한다던 4대강 사업의 효과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조차 인정하듯이 4대강에 보를 막아 가득 담아둔 물은 가뭄을 해소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다. 농지까지 물을 보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4대강의 용수를 농지로 보낼 수 있는 연결수로를 만든다 하더라도 과연 농업용수로 쓸 수 있을까 하는 데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에서는 해마다 녹조가 대규모로 발생하며 물고기들이 집단 폐사하는 살풍경이 되풀이 되고 있다. 올해에는 낙동강의 상황도 심상치 않아 어민들이 배를 타고 시위를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4대강 곳곳에 설치된 댐 규모의 대형 보로 인해 물이 썩고 있다는 얘기다.

어떤 일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은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4대강이 사업의 계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전문가들이 이런 문제점들을 지적했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도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는 데 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은 대운하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었지만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대운하와 다르다는 이유로 입장을 유보했었다. 하지만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이 대운하를 전제로 추진되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은 지가 벌써 2년 전이다. 잘못된 정책으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국고를 낭비하고 4대강의 수질오염과 자연생태계 파괴를 가져온 국책사업을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누가 바로잡을 수 있단 말인가. ‘비정상의 정상화’를 그리 소리 높여 외치는 분이 왜 이 거대한 비정상에 대해선 그토록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박근혜 정부 출범에 앞장섰던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4대강 사업은 단군 이래 가장 부패한 사업일 가능성이 크다.”며 4대강 사업의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을 경우 박근혜 정부는 ‘MB 2기’가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타들어 가는 농민들과 어민들의 마음을 달래기에도 ‘MB 2기’라는 오명을 벗어버리기에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 아래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을 시간 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질 우려가 있지만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2007년 12월 19일. 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당선
취임 이후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대한 반대 여론 확산.

2008년 5월 13일. 정두언 의원
“한반도 대운하를 한강 개발과 같은 재정비 사업으로 우선 추진하고, 연결(운하 개통) 부분은 계속 논의하자.”(총선 당선자들과 MB의 청와대 오찬 회동)

2008년 6월 19일. 이명박 대통령
“대운하 사업도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

2008년 11월 28일. 이명박 대통령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대운하도 관계없이 임해라. 4대강 정비사업이면 어떻고 운하면 어떠냐. 그런 것에 휘둘리지 마라.”

2008년 12월 4일.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
“4대강 사업이 운하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소백산맥을 넘어가면 대운하다. 사업을 다 해놓고 대다수가 (운하를) 연결하자고 하면 말자고 할 수는 없다.”

2008년 12월 4일. 이만의 환경부 장관
“국민들이 잘 몰라서 대운하를 반대한다. 여러분이 노이로제처럼 생각하는 운하 문제도 어느 땐가는 거론될 것이다.”

2008년 12월. 국토부. 홍수예방과 수자원 확보, 수질개선, 친수공간 조성 등을 목적으로 한 ‘4대강 종합정비방안’을 발표
4대강 수심을 2.5미터 수준으로 유지하고 소규모 보 4개를 건설한다는 계획.

2008년 12월 2일. 이명박 대통령
"4대강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5~6m가 되도록 굴착할 것"
(균형발전위원장과 6개 부처 실국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2008년 12월 16일. 박근혜 의원
“정부가 대운하와 관계가 없다고 하니 믿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국민을 속이는 것인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2009년 6월. 국토부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을 통해 수심을 4~6미터까지 깊게 파고 수중보도 16개 설치하겠다며 당초 계획을 전면 수정.

4대강 수질 조사를 위한 로봇 물고기 개발 착수.

2009년 6월 29일. 이명박 대통령
“대운하의 핵심은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것”

2011년 1월. 감사원
“(4대강 사업과 관련해) 특별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2011년 3월. 김황식 국무총리
“4대강의 보에 물이 채워지면 매년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에서 벗어날 것”

2012년 10월. 금강 백제보 인근 물고기 폐사. 환경부 집계 6만 마리. 충남도 집계 30만 마리.

2013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대운하는) 내가 거의 다 해놨기 때문에 나중에 현명한 후임 대통령이 나와서 갑문만 달면 완성이 된다.”

2013년 1월. 감사원
“보(洑) 안정성 등 총체적 부실이 확인됐다.”

2013년 7월 10일. 감사원
"4대강 사업이 대운하를 고려해 추진되면서 건설사들의 입찰 담합과 관리 비용 증가, 수질관리 문제 등을 유발했다."

2013년 7월 10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
“감사 결과가 사실이라면 국가에 엄청난 손해를 입힌 큰일이다. 국민을 속인 것이다.”

2013년 7월 15일. 박근혜 대통령
“여러 논란이 있는데 감사원이 발표한 부분을 앞으로 소상히 밝혀 의혹이 해소되도록 해야 한다. 필요한 후속조치와 대책을 추진해주기 바란다.”
“무리하게 추진돼서 국민 혈세가 들어간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13년 8월 7일.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4대강 사업은 단군 이래 가장 부패한 사업일 가능성이 크다.”

2014년 7월. 낙동강 칠곡보 부근 물고기 집단 폐사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칠곡보 직·하류 구간은 보 구조물로 인해 수변 식물대가 형성되지 못했다.” “강준치들이 높은 수온과 ph농도, 용존산소 과포화, 산란처의 부재, 산란 후 스트레스와 먹이 부족 등의 복합적 요인으로 폐사했다.”

2015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MB 회고록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한국이 세계 금융위기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내가 대운하를 만들기 위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벌였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
“감사원의 비전문가들이 단기간에 판단해 결론을 내릴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2015년 6월 2일. 감사원. 로봇 물고기 개발 사업을 실패한 국책사업으로 결론.

2015년 6월. 낙동강 물고기 집단 폐사 발생.

2015년 6월 23일.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4대강 사업 보에는 상당한 (물이) 저수되고 있고, 보와 가까운 지역은 가뭄 대책이 돼가고 있는데 먼 데가 문제”
“4대강 물을 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참 잘 안 된다는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