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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산 노동이 아니라 생산 노동이라 부르자(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2-24 15:55
조회
1112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방식의 온라인을 활용한 형태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러 곳에서 행사를 준비 중이다. 그 중 <제3회 세계여/성노동자대회> 조직위원회는 올해 행사의 초점을 임신과 출산 노동에 맞추고, 임신과 출산이 인간 생산 노동임을 전면에 부각하며 임신과 출산의 생산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주장하고자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 “임신·출산을 생산과 노동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 가치화하지 않는 것은 가족과 국가와 시장의 통제와 맞물려 있습니다. 가족과 국가와 시장들은 여성을 통제합니다.”라는 이들의 주장은 구미가 당긴다. 이들의 성 노동론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그동안 여성들의 가사노동과 임신/출산을 재생산 노동이라 칭하며 부차적인 노동, 혹은 노동이 아닌 생물학적 활동으로 가치절하하는 현실에서 여성운동이 전면화하여야 할 의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리아 미즈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경제를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나누는 전략은 처음부터 자본축적의 과정”, 이라고 보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당연히 ‘진짜’ 경제로부터 배제”되지만, “사실상 이 부분(보이지 않는 부분)은 보이는 경제의 근간을 이룬다.”라고 주장한다. 사실상 여성들이 하는 노동은 가사노동과 임신/출산에만 국한되지 않지만, 여전히 여성들의 일차적인 노동과제는 ‘재생산 노동’이라는 가사 및 임신, 출산, 육아로 한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성들의 자리는 여전히 가정이라는 인식, 가정은 공적 영역에서 동떨어진 곳이며 따라서 여성들의 노동은 공적 노동이 아닌 사적 노동으로 가치 평가되며, 무급으로 진행되는 것을 당연히 여기도록 만들어낸다. 그러나 소위, 생산영역의 노동은 이러한 여성들의 비 가시화된 재생산영역의 노동이 없으면 작동하기 힘들다. 여성들의 노동은 근본적으로 노동력을 생산하는 노동이다. 가정주부가 가정에서 생산하는 것은 단순한 사용가치가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다. 이러한 여성의 생산력이 전제될 때 남성 임노동자의 생산성이 작동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핵가족이야말로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생산되는 사회적 공장(달라 코스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가정주부인 여성과 그 노동은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노동이 아니라, 잉여가치 생산 노동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의 노동을 사적인 노동으로 비가시화하고, 공적 노동에서 배제함으로써 무급화 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적 착취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제3회 세계 여/성노동자대회 페이스북


 그런 의미에서 <제3회 세계여/성노동자대회>가 임신과 출산을 ‘인간 생산 노동!’으로 호명하고, 이의 가치와 의미를 전면화함으로써 노동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고 확산시키고자 하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현재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여성운동 세대들은 구 여성운동 세대들과 달리 ‘몸의 정치’를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세대들이 법과 제도 등의 제/개정 등 공적이고 정치적인 영역, 즉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었던 영역에 끼어드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신세대들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을 거부하고, 대의 정치체제를 비판하며, 가부장제가 가장 친밀한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작동한다는 것을 드러내며, 그것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몸의 착취를 통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모든 사적이라고 보여지는 여성들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과 억압, 착취가 결국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정치가 작동하는 기제라고 문제 제기하고 있다. 여성의 몸을 통해 가해지는 가부장제의 폭력과 억압이 자본축적의 원천이라고 본다. 이는 가부장제가 공공정치 영역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남성의 여성의 몸-섹슈얼리티와 생식능력-에 대한 통제에 기원한다고 보는 것이다. 남성국가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대표적인 통제가 낙태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와 생식능력을 사회적 노동으로 가치화하는 것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에 제동을 거는 행위가 된다.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을 노동으로 정당화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평가와 보상을 받는 것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무엇에 기반하고 있는지, 그 착취구조를 전면적으로 드러나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진정한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재확인하면서, 생산의 개념에 대해서도 착취적 구조가 아닌 인간해방의 관점에서 재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과정과 생산과정의 분리가 아닌, 생산과정이 곧 노동과정이라는 합의, 이윤창출의 과정이 아니라 생산과정이 되는 노동과정, 이러한 인식과 합의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결국 노동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는 정치환경을 구성하게 한다. 이는 결국 경제와 정치, 공과 사, 이성과 감성, 정신과 몸이라는 이분법을 극복하는, 사회구조를 전면적으로 재구조화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성들의 생식능력을 재생산이 아니라 생산으로 호명하는 것은 그 시작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