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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의 새로운 상상력(이재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1-18 16:58
조회
789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2020년 한 해를 되돌아보면, 한 단어로 정리가 가능하다. ‘코로나19’.


 이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사회와 개인에게 강요됐다. 그 와중에 지역화폐(법적 명칭은 지역사랑상품권)는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지역화폐 활성화 정책이 대대적으로 펼쳐졌고, 전국 지자체 중 95%가 도입을 완료하면서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10%의 할인을 받으며 지역화폐를 접할 수 있었다.


 지역화폐의 확산은 할인혜택 덕분이다. 지역화폐 구매(교환)시 제공받는 10%의 할인은 놓쳐선 안 될 재테크가 돼 버렸다. 소상공인 매출 하락을 받쳐줄 단기 처방으로 지역화폐 확산에 예산을 투입한 정부 덕분에 지역화폐는 2020년 올해 승승장구했다.


 그렇다면 과연 지역화폐는 2021년에도 더 잘 나갈 수 있을까?


 일단 정부가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한 인센티브 예산을 1조 원가량 투입할 예정이다. 지자체 발행액의 6~8%를 보전해주기로 함에 따라 2021년에도 전국 지자체 대부분에서 연중 10% 정도의 할인혜택을 부여해 유통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전국 지역화폐 발행량도 2020년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화폐는 2021년에도 잘 나갈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지원이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정책적 필요에 따라 결정된 정부 지원이다 보니 정책결정 주체의 변화에 따라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앞으로도 쭉 정부지원이 이어질 것이라고 보긴 힘들다. 지역화폐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입장에서도 모두 정부 지원의 한계를 말하고 있다.


 결국 지원이 줄거나 없어지면, 다시 말해 소비자 할인이 줄거나 없어지면 지역화폐는 ‘혜택 많은 소비쿠폰’의 지위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골목 상권에서만 쓰게 해서 사용도 불편한데(물론 웬만한 카드 가맹점에서는 다 쓸 수 있는 지역화폐도 있다) 혜택도 적으니 ‘지역화폐, 수고했다 너는 이제 장롱으로…’ 이런 식이 될 터이다.


 전국 지자체의 95% 이상 도입한 지역화폐는 그래서 발전하거나, 유지에 그치거나,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유명무실해지는 경우란, (지역화폐 자체가 쉽게 일몰시키기 어려운 정책이다 보니) 사용자는 없지만 이름만 남는 경우를 말한다.


 유지하는 경우란, 각종 복지 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정책시행 등이 뒷받침해 일반적인 구매와 사용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발행 규모와 명목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발전하는 경우란, 인센티브와 발행량은 줄어들지라도(개인적으로 지역화폐 발행량은 향후 1~2년 내 최고점을 찍은 후 감소할 것이라고 본다) 사용자는 늘고, 활용도도 높아지는 것이다.


 사용자는 늘고 활용도는 높아지는 것은 무슨 상황일까?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넘어 지역의 공동체성을 강화하며 지역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자본을 구축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된다면 가능한 상황일 것이다.



사진 출처 - 경기도청


 이 같은 노력은 제법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가 ‘지역화폐를 활용한 배달앱’이다.


 민간 배달앱의 높은 배달주문 수수료가 논란이 된 이후 군산시가 가장 먼저 배달앱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배달의 명수’를 내놓았다. 이후 경기도가 도내 31개 시군 도입을 목표로 ‘배달특급’이란 공공배달앱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는 행정이 개발과 운영을 도맡는 것이 아닌 기존 중소 민간배달앱과 제휴를 맺어 낮은 수수료를 받게 하는 ‘제로배달유니온’을 출범시켜 운영 중이다. 시흥시의 ‘시루 배달앱’, 천안시 등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도입을 준비 중이다.


 공공형인가 민관제휴형인가의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은 지역화폐로 결제가 가능한 배달앱이란 점이다.


 지역화폐로 주문배달을 할 경우 인센티브 효과를 볼 수 있어 소비자들에게는 상당한 매력이 있다. 시흥시의 경우 모바일 지역화폐인 ‘모바일시루’ 사용자가 시흥시 경제활동인구의 63%인 17만 명에 달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성남시는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를 가져오면 성남사랑상품권을 주는 ‘자원순환가게 re 100(recycling 100%)’을 모두 8곳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성남시 이미 최근 1년간 232가구의 주민이 가져온 2만 1,625kg 분량의 재활용 쓰레기에 538만 1,608원을 보상한바 있다.


 춘천시는 지역 내에서 유통할 수 있는 ‘에너지화폐’를 유통시킬 계획이다. 단독·공동주택을 지으면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설치하면 휴대폰으로 에너지 포인트(소양강페이)를 지급한다. 지역 내 가맹점을 구축해 이 포인트를 식당 및 마트 등에서 실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지방세, 주차료 등 공공요금도 납부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시흥시는 건강걷기 앱을 자체 개발하여 만보를 걸으면 시흥시 지역화폐인 모바일시루 100포인트를 적립시켜주는 ‘만보시루’를 연말에 공개한다. 시민건강권 증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연결시키겠다는 목적과 더불어 ‘쓰는 지역화폐’에서 ‘버는 지역화폐’로의 인식 전환에 첫 발을 딛겠다는 의도가 있다.


 노원구 등은 자원봉사 인정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정책을 지난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자원봉사의 무보수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지만 지역화폐가 지역사회 발전에 복무한다는 인식이 커지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지역화폐를 경제 활성화를 넘어 공동체강화와 사회문제 해결의 도구로 삼고자하는 시도는 소비쿠폰으로 전락할 수 있는 지역화폐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지역화폐라는 도구를 더 잘 쓸 수 있게 하는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