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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텍트의 시간, 대학의 온라인 강의에 관한 한 가지 경험적 사례(권용선)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7-29 16:03
조회
170

권용선/ 수유너머104 연구원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났다. 감염병에 대한 공포, 마스크 대란, 위생수칙의 학습, 국경을 넘는 외국인에 대한 불편과 방역에 대한 자긍심, 닫힌 교문과 온라인 학습, 활기를 잃어버린 공항과 터미널들, 폐업을 선언하는 작은 가게들,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감염의 공포 속에서도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 이 모든 비일상적인 일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 벌써 반년도 더 지났다.


 2월 졸업식도 3월 입학식도 없이 대학에 들어온 스무 살 청춘들은 집이나 카페에서 온라인으로만 ‘대학의 맛’을 간신히 허락 받았고, 일주일에 두 번 출강하던 그 대학의 단과대학 건물을 나는 학기 내내 한 차례도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는 하나의 강좌로 묶여 있었지만, 가상의 시공간을 공유하는 식으로만 만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가을학기에도 비대면이 강의의 기본값이 될 것이다.


 3월이 시작되고도 한참동안 대학들은 강의방식을 결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했고, 비대면 온라인 수업 방침이 정해지고 나서는 각 과목 교수자들의 좌충우돌이 시작되었다. 방송장비를 구입하고, 프로그램을 숙지하고,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고, 강의내용을 녹화하고 업로드 하는 이 모든 과정들이 이전에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새로운 교육방식이었다. 이 과정 속에서 단기계약직 강의노동자인 강사들은 난데없이 새로운 불안과 의문 또한 가져야만 했다. ‘온라인 강의가 자리잡게 되면, 대학은 비용절감의 차원에서 교과목을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강사 수를 대폭 줄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까?’ ‘2년 후, 대학들이 다시 공채시스템을 가동시킬 때까지 코로나 정국이 지속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와 같은.


 처음 시도해보는 낯선 강의방식에 준비시간도 몇 배로 늘어났다. 강의 내용에 대한 공부 외에도 프리젠테이션에 쓸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들을 감각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글자체와 색깔 음악과 이미지 자료들까지 꼼꼼히 신경 쓰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반복해서 재녹음하는 자발적인 수고를 하는 동안, 남의 속도 모르고 ‘온라인 강의, 수업의 질 떨어져’ ‘학생들 등록금 환불 주장’과 같은 뉴스들이 넘쳐났다. 대학이 어떤 식으로든 강의에 대한 모니터링을 할 것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았던 강사들은 양질의 온라인 강의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는 걸 모두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는데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삶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관계가 그렇겠지만, 교육의 영역에서도 ‘실감’은 중요하다. 교수자는 자신이 전달하는 교육의 내용이 잘 전달되고 있는지 학생들의 기색을 살피고 눈을 맞추며 질의응답과 수행을 검토하는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확인해 나간다. 반드시 강의 내용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특정한 공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시간의 두께 속에서 관계는 복제 불가능한 고유한 것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학기가 끝난 후 그것은 학점이나 몇 가지 인상적인 크고 작은 사건으로만 잠깐 기억되다 곧 잊혀질지라도.


 대면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실감’을 강의의 척도로 잡는다면, 모든 온라인 강의는 ‘질이 떨어지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익숙한 관념을 지우기 위해서는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오래전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모든 미디어 중에서 라디오가 가장 ‘내밀한’ 성격을 지닌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비대면의 조건 속에서 미디어 장치를 경유하면서도 감응적 시너지를 불러일으키기엔 라디오 방송 컨셉으로 강의를 만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대학 강의실에서 딱딱한 표정으로 지루한 교양서적을 설명하는 선생이기를 그치고, 심야라디오방송 교양프로그램의 디제이가 되기로 했다. 적절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늦은 밤에 녹화를 했고, ‘애청자사연코너’를 통해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문학’과 관련된 교과목의 특성 덕이기도 했겠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매주 도착하는 정성들인 ‘사연들’(정확히는 사연이라는 이름의 수업내용과 관련된 질문과 의견)을 읽어주는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는 누구, 매일 밤 조금씩 자기 전에 듣고 있다는 누구, 방송을 듣고 책을 다시 찾아 읽었다는 누구, 자료화면의 색감에서부터 어떤 문장들에 대한 취향까지 꼼꼼하게 말해주던 누구, 다른 사람의 사연에 대한 감상을 전해주던 누구,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도 수업에 반영해 달라고 요구하던 누구. 어느 순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 누구들은 강의실의 학생이기를 그치고 프로그램의 애청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첫 온라인 비대면 수업시간을 통해 나는 지금까지 진행했던 어떤 대면강의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학생들과의 따뜻한 ‘교감’을 경험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었다.


 9월이 되면 다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겠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코로나와 동거하는 삶의 양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 수업은 계속될 것이고, 대학들은 학생들의 등록금 환불 요청이나 휴학 등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보며 비용의 보존과 절감을 계산할 것이다. 대학이, 대학의 형태가, 교육의 방식이 어떤 식으로든 달라지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지금의 대학구성원 누구라도 고통 받지 않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이 낯설고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일자리’와 ‘배움’의 권리는 흔들리지 말아야 하고, 더 나은 삶을 기획하는 희망과 상상의 실천들은 멈추지 않아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