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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석미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5-28 13:15
조회
730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살며 무당이 되어 본 적이 있다. 진짜 무당을 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무당처럼 억울하게 죽은 넋을 위로하는 일을 했다고 하면 될까?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2007년부터 3년간 ‘대통령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 조사관을 했다. 위원회는 군 사망사건 중 의문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2006년 설립되었다. 군 사망사고 유가족과 인권단체의 노력으로 설립된 이 위원회에는 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사망한 김훈 중위 사건을 비롯해 600여건에 달하는 사건이 접수되었다. 진정을 제기한 것은 대부분 가족이었다. 유가족이자 피해자인 그들은 자랑스러운 아들이 군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에 대해 국가가 진실을 밝혀주길 바랬다.


 그들의 아들들에 대한 사인은 대부분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었다. 사건 당시 작성된 헌병대 수사기록을 보면 자살의 이유는 대개 가족, 애인, 성격문제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당시 군복무와 관련이 없다고 본 그들의 죽음은 국가로부터 명예로운 죽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공상이 아닌 일반사망 ‘사상’으로 처리되었다. 가족들은 억울했다. 사회에서 누구보다 건강하게 생활하다가 나라의 부름으로 군에 갔는데, 자살이라니 웬 말인가. 헌병대의 수사과정도 믿음이 안 갔다. 군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빠르게 사건을 처리하고 종결하는데 급급했다. 사망의 이유도 석연치 않은데, 헌병대의 처리 과정도 의심을 키웠다. 더구나 천편일률적인 사망 동기와 처리방식은 더 그랬다. 군의문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실제로 강한 의혹이 제기된 사건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 외 많은 사건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의문사가 되었다. 유족들은 자식의 죽음이 결코 자살이 아닐 것이라고 믿으며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조사관이 사건을 배당받고 조사계획서를 작성하며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은 진정인, 곧 유가족의 진술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진정인이 조사방향과 결과에 동의하는 지 여부는 사건을 종결하는데 결정적인 열쇠였다. 따라서 사건 관련 문서를 찾고, 관계자를 찾아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사고 현장을 방문해 정황을 살피고 단서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사관이 제일 신경 쓰고 노력해야 할 것은 바로 진정인과의 소통이었다. 그들이 제기하는 의혹에 따라 조사활동은 ‘타살’ 혐의에 방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곧 난관에 봉착했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위원회가 조사한 많은 사건은 자살로 종결되었다. 비록 사망의 유형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원인에 있어서는 개인적 문제가 아닌 군복무와의 연관성이 상당부분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사망의 유형으로 전공사상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이더라도 군복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하면 ‘진상규명’을 결정하였고, 이후 전공사상 심의를 다시 진행해 공상처리 할 것을 국방부에 권고했다. 문제는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진정인이 자식의 사망을 ‘자살’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헌병대 수사를 믿을 수 없어 또다시 국가에 호소하며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유가족에게 다시 자살을 인정하도록 하는 기막힌 상황이 펼쳐졌다. 곳곳에서 고성이 오갔다. 조사관 중에는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도 생겼다. 유가족 몇몇은 조사결과를 부정하며 위원회 입구에 자리를 깔고 농성에 들어갔다. 어려웠다. 피해자와의 소통은 서로 다른 이해와 요구로 접점을 찾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위원회 사건 중 일부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건은 진정인과 소통하여 조사를 종결하고 잘 마무리되었다. 지금도 역시 피해자와 더불어 운동을 하고 있지만, 이때 경험한 피해자와의 관계는 나에게 많은 배움이 되었다. 피해자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며,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피해자성이나 피해자다움에 갇혀있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바라보는 자들의 편견이라는 것을, 그리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는 존재여야 한다. 지금 이용수 할머니를 둘러싼 위안부 운동 관련 논란을 보며 그 시절 ‘무당’이 되어 피해자를 만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서로 다른 이해와 요구를 가지고 이어온 30년을 부정하는 현실에 마음 무거운 요즘이다. 코로나로 어려운 이때 함께 뭇매를 맞으며 또 한 고개를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