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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정치적 사기꾼(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5-22 16:50
조회
276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정치는 이성적 행위다.


 개개인의 삶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서 성립한다. 가장 가깝게는 부모를 통해 생명을 얻어 현존한다. 어릴 때 부모의 보살핌이 없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어느 누구건 간에 가족의 도움과 함께 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개개인의 욕망의 형성과 실현의 부단한 변화와 발달은 철저하게 사회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욕망 실현을 둘러싸고서 충돌이 일어난다. 이러한 충돌을 제 스스로 조정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이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각자가 이성을 발휘하여 사회 전체적인 욕망과 이익의 충돌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는 데서 정치가 성립한다. 그래서 이성은 정치적 이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정치의 필요성은 욕망에 근거하지만, 정치적 행위의 정당성은 이성에 근거한다. 정치의 필요성이 욕망에 근거한다는 것은 최대한의 실현을 원하는 개개인의 욕망들 간의 충돌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 정치가 정치적 행위자의 개인적 욕망을 최대한 실현하는 데 필요하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정치적 행위의 원리적인 정당성은 이성에 근거한다. 그리고 그 현실적인 정당성은 법에 근거한다. 법은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수단과 절차의 한계를 규정한다. 그 한계는 각자가 욕망을 최대한 실현하고자 노력하되, 그 노력이 다른 사람이 욕망을 최대한 실현하고자 하는 기회와 노력을 저해하지 않는 그 접점에서 성립한다. 말하자면, 법은 각자의 자유를 보장하되 그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보장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호혜적인 욕망의 실현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그 조건으로서 어떻게 하면 공존 가능한 자유를 찾아 보장할 것인가를 성찰하여 규정하는 인간의 능력이 이성이다. 그러니까 법은 철저히 이성에 입각해서 설립되어야 한다. 이에 이성은 법적인 이성으로 나타난다.


 입법을 하는 정치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법이 이성이 명령하는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 반드시 사회적으로 혼란이 일어난다. 그런 만큼, 나의 자유를 위해 남의 자유를 침범하고, 나의 욕망 실현을 위해 남의 욕망 실현을 가로막는 일을 합법화함으로써 서로 간의 대립과 충돌을 부추기고 정당화함으로써 힘을 통한 약육강식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사진 출처 - 구글


2. 이성을 벗어나 멍한 광기로


 흔히들 개개 정치인들은 자신을 대표로 내세운 지역이나 단체 등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리하여 개개 정치인들은 각 지역이나 단체의 이익을 위해 다른 지역이나 단체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그 현실은 정부가 제시한 예산을 심의하는 데서 여실히 나타난다. 그리하여 각 지역이나 단체 심지어 개인마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공을 세운’ 정치인을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대표로 피선된 개개 정치인은 선택된 순간부터 국가 구성원들 전체의 이익을 조화롭게 조율하는 이성적인 존재로서 중립화된다. 그래서 헌법 제7조 1항에서 모든 공무원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 명기된 것처럼 국회의원은 국민 전체를 위한 봉사자로 정의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보면, 국회의원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한 것은 그가 사회적으로는 사인(私人)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오로지 공인(公人)일 뿐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사인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적인 공인으로서의 지위를 활용할 경우 일반 국민들의 범법 행위보다 더욱 엄하게 처벌되어야 마땅한 까닭이다.


 정치인으로서 국회의원은 무엇보다 다른 국회의원들과, 특히 다른 정파에 속한 국회의원들과 이성적인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이기적이라고 평가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 나는 본래 이기적이야.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 하고서 강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자 균형 잡힌 태도를 취한다는 평가를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국가 구성원 전체의 조화로운 이익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국회의원은 특히 그렇다.


 정치인은 정치 행위의 결과로서 평가되어야 한다. 개개 정치인이 과연 앞으로 어떤 정치 행위의 결과를 낳을 것인지 파악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뿐이다. 그동안 그가 과연 얼마나 어떻게 자신의 욕망 실현보다 다른 사람들의 욕망 실현을 위해 삶을 살아왔는가, 그리하여 그동안의 그의 삶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어떻게 의미 있는 결과를 낳았는가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와 무관하게 오로지 미래를 향한 선전과 선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정파적이고 심지어 이기적인 감정을 분출토록 하여 일종의 왜곡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일에 몰두한다면 그는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간단히 말해 사기꾼일 뿐이다.


 정치적 사기꾼들은, 히틀러의 인종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선동 정치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철저히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에 숨겨져 있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그리하여 맹목적인 공격과 투쟁을 향한 동물적 본능을 자극한다. 우선 이성적인 근거 제시는 전혀 필요 없다고 여긴다.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성적인 주장을 하면 할수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는다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세뇌의 과정이 진척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일신의 영달을 기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모두 악하다고 여긴다. 그 악의 요인들을 가상적으로 집단화한다. 그렇게 집단화된 악의 세력을 현실 어디에서건 찾아낸다. 이제 그 악의 세력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객관적으로는 풍차를 적으로 여겨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이지만, 주관적으로는 신의 뜻을 실현하는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성한 행위로 여긴다. 정치적 사기꾼은 제 자신을 그렇게 만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래야 한다고 여기고 선전 선동을 일삼는다.


 그런 까닭에 정치적 사기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적대적 관계의 해소다. 그래서 정치적 사기꾼은 이성적 인간을 두려워한다. 이성적 인식 능력으로써 적대적 관계를 통해 발생하는 불행한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적시하고 실천적 이성 능력으로써 그 불행한 사실들을 해소하고자 하는 자들을 두려워한다. 두려워한 탓에 공격을 가하고, 공격하기 위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암암리에 퍼뜨린다. 그 술책으로 각종 이데올로기적인 기호와 상징을 만들어내어 마치 자신이야말로 오히려 참다운 이성의 화신인 양 선전한다. 그리하여 억압되었던 이기적 본능을 분출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자들을 끌어 모은다. 이기적 본능의 집단이 형성되고, 정치적 사기꾼은 거기 모인 사람들이 스스로를 적대 세력에 의해 공격받아 위기에 처해 있는 희생자들이라고 느끼게끔 한다. 모인 자들은 집단적인 광분과 광기로 제 정신을 잃는다. 대체로 이성을 잃은 멍한 눈빛으로 개인성을 상실한 하나의 덩어리 집단이 된다. ‘끌어내려라!’, ‘죽여라!’, ‘목을 따 와라!’ 등의 극단적인 망언들이 넘쳐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