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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쿡기자] 흉악범 얼굴, 본다고 뭐가 달라질까 (국민일보, 2019.08.2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8-23 13:35
조회
1980

말 많고 탈 많은 범죄자 신상 공개. 신상 공개로 얻을 수 있는 공익이 불분명할 뿐 아니라 피의자 인권을 대중의 ‘분풀이’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범죄자 신상 공개는 지난 2010년 제정된 ‘특정 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시행되고 있습니다. 신상공개 조건은 ▲범행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강력범죄 사건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경우 ▲국민의 알 권리와 공공이익 등입니다.


올해 신상이 공개된 범죄자는 4명입니다. 지난 20일 ‘한강 시신 토막 사건’ 피의자 장대호(38)의 얼굴과 나이, 이름이 공개됐습니다. 제주에서 전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고유정(36), 청담동 주식 부자로 알려진 이희진씨 부모를 살해한 김다운(34),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범 안인득(42)도 신상이 공개된 이들입니다.


그러나 신상 공개가 될 때마다 잡음이 일었습니다. 기준이 자의적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외부전문가 4명과 경찰 내부 위원 3명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열어 결정합니다. 그러나 여론 동향에 따라 공개가 결정된다는 비판이 매번 나왔습니다. 애초부터 ‘잔인한 범행’, ‘공공이익’ 등 신상 공개 조건이 추상적이라는 문제점도 있죠. 고유정처럼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면 어쩔 수 없다는 점 등 제도 자체에 허점이 많습니다.


범죄자 신상 공개는 인권 침해 요소가 다분합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어긋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자 신상을 공개하는 명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국민의 알 권리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인데요.


과연 범죄자의 개인 신상 공개로 얻을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은 어떤 게 있을까요.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르면 일단 답은 ‘없다’에 가깝습니다. 헌재는 지난 2014년 “원칙적으로 ‘범죄사실’ 자체가 아닌 ‘피의자’ 개인에 관한 부분은 일반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할 공공성을 지닌다고 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또 “이에 대한 예외는 피의자가 공인일 경우, 특정강력범죄나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을 위한 경우 등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될 수 있을 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헌재는 “피의자 얼굴은 개인의 인격주체성을 결정짓는 가장 기본적 정보로 정보화 사회에서 얼굴이 공개되면 파급효과가 강력하다”며 “경찰의 촬영 허용 행위는 언론을 보다 실감나게 하기 위한 목적 외에 어떠한 공익도 인정할 수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범죄 예방 효과도 의문입니다. 흉악범들이 얼굴이 공개될 것을 우려해 범죄를 자제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얼굴을 공개한 범죄자들은 여전히 구금 돼있기 때문에 재범방지 효과를 논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5월 열린 형사정책연구원 3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는 출소 후 중대 범죄자들에 대한 신상공개와 전자발찌 부착명령 등 제재가 사회 복귀를 어렵게 해 결과적으로는 재범율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결국 흉악범 신상 공개를 통해 충족되는 것은 알 권리가 아닌 대중의 호기심이라는 의견이 나옵니다. 범죄자들의 얼굴이 공개되면 인신공격성, 자극적인 보도가 잇따릅니다. 지인, 가족들의 ‘신상털이’를 포함해 2차 피해가 발생합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장은 지난 10일 c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과의 통화에서 “고유정의 얼굴을 본 다음 우리 사회가 얻은 소득이나 교훈이 하나라도 있는지 모르겠다”며 “대중들이 호기심을 충족한 것 말고 굳이 얻은 것이 있다면 ‘흉악범도 저렇게 평범한 얼굴이구나’ 하는 정도”라고 비판했습니다.


범죄자 신상 공개가 대중들의 관심을 돌리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명박 정권 시절 청와대는 경찰에 용산 참사를 향한 비난 여론을 돌리기 위해 ‘강호순 사건’ 수사 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당시는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기 전이었는데 다수 언론에서 강호순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는 이례적 보도 행태를 보였죠.


뿐만 아닙니다. 범죄자 신상 공개는 범죄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는 결과로 귀결되기 쉽습니다. 전문가들은 진주 아파트 방화 사건처럼 사회에서 소외된 외톨이들이 적개심을 바탕으로 다수 살인을 저지르는 증오범죄, 즉 ‘외로운 늑대’ 범죄가 앞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범죄자를 비난하고 미워하는 것에서 끝난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분노의 초점을 사회와 구조적 문제로 조금 옮겨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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