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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요람' 한신대는 지금 '침몰중' (오마이뉴스,2017.10.15)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15 17:37
조회
669

  -2년 가까이 이어진 학내갈등, 결국 신학전공 33명 자퇴결의

한신대학교(아래 한신대)는 진보 성향의 장로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다. 한신대의 뿌리는 기장 교단의 창시자인 장공 김재준 목사가 1940년 설립한 조선신학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종합대학으로 개편됐지만 신학, 특히 민중신학의 산실로 평가 받았으며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섰던 장준하, 민중신학의 창시자 안병무, 늦봄 문익환 목사등 비판적 지성을 배출했다.

무엇보다 한신대는 1970,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하자 다음해인 1973년 한신대는 삭발투쟁으로 맞섰다. 김형민 SBS CNBC 프로듀서는 2016년 5월 26일 치 <시사iN> '산하의 오역' 기고를 통해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1973년 한신대학교에서는 맹렬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정부는 시위 주도 학생들에 대한 제적을 요구했다. '다 잘라버리시오. 말 안 들으면 재미없소.' 마치 이스라엘의 왕이 났다는 소리에 갓난아이들을 죄다 죽여버리라고 소리 지르던 헤롯 왕처럼 말이야.

이 산천초목도 덜덜 떨 만한 호령에 한신대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단다. 이 대학의 학장님이 머리를 박박 밀어버린 거야. 학생들을 지지하고 정부의 요구를 따를 수 없다는 시위였지.

그를 따라 교수님들이 줄을 서서 머리를 시원하게 밀어버렸고, 이를 본 학생들도 앞다퉈 이발소로 달려가거나 자기 손으로 가위를 들어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라버렸다. 일부 교직원도 삭발에 동참했다고 하니, 졸지에 한국신학대학은 승가대학(스님들을 위한 교육기관)을 방불케 하는 '빡빡머리'들의 천국이 되고 말았단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도 한신대는 특유의 옹골찬 기질을 과시했다.

인권활동가인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2016년 4월 6일 치 <경향신문> 기고를 통해 아래와 같이 적었다.

"1986년 10월 '건국대 사태' 때는 100명이 넘는 한신대 학생들이 구속됐다. 정권 말기적 발악을 보이던 전두환 정권은 건국대에 모인 학생들의 시위를 트집 잡아 단일사건으로는 건국 이래 최대 구속자를 만들어냈다. 모두 1274명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단위 학교에서 구속자 100명을 넘긴 학교는 건국대,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그리고 한신대뿐이었다. 학교 규모는 작았지만, 민주화운동 역량은 옹골찼다. 한신대는 민주주의의 요람이었던 셈이다."


신학전공 33명, '한신 죽음' 선포하고 자퇴

한신대의 지난 역사를 자세히 언급하는 이유는 최근 학내사태 때문이다. 우선 13일 한신대 신학전공 학생 33명은 경기도 오산캠퍼스에서 열린 신학생 채플에서 자퇴를 결의했다. 이 학생들은 이에 앞서 지난 9일 공개자퇴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공개자퇴서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한신 신학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한신의 선배들을 동경했고, 한신의 정신을 따라 걷고자 했습니다. 민주화의 선봉에 섰다는 한신을 우리의 자랑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2017년 9월 21일 우리의 자랑, 한신은 죽었습니다."

한신대 학내갈등은 2015년 채수일 전 총장(현 경동교회 담임목사)가 임기를 1년 10개월여 앞두고 사의를 표하면서 수면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신대 이사회는 채 전 총장의 후임으로 강성영 교수를 신임 총장에 선임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학생들의 반발을 불렀다. 30여 명의 학생들은 이사회가 열렸던 지난해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약 14시간 동안 농성을 벌였다. 이사회는 이들 학생들을 고발 조치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 병력이 출동했다. 한편 올해 1월 이 학교 학생 5명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학내갈등은 이 학교 운영주체인 기장 교단이 지난 해 9월 제101회 총회에서 강 총장 인준을 부결하면서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갈등은 이사회가 지난 9월 12일 연규홍 교수를 신임 총장에 선임하면서 재점화되기 시작했다. 한신대학교 총학생회는 이사회 결의 다음날인 9월 13일 교무처장과 기획처장 앞으로 공문을 보내 연 총장 서리의 성추행 및 논문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이때 총학생회는 관련 의혹과 관련한 조사자료를 제출해줄 것을 함께 요청했다.

연 총장은 관련 의혹을 적극 해명했다. 연 총장은 기장 계열의 기독교 인터넷신문 <에큐메니안>과 인터뷰에서 논문 표절은 "2007년, 2010년, 2013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다뤄졌다"며 "외국 논문들을 번역해서 요약해서 대충 내는 것이 당시에는 통례적이었기 때문에 연구윤리위원회도 다시는 다루지 않는다고 종결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성추행 의혹에 대해선 "1년 반 전 총장선거 때도 활용됐었다. 상대방의 정치적 공략"이라고 선을 그었다. 결국 기장 총회는 지난 9월 20일 경주에서 열린 제102회 총회에서 연 총장 인준안을 통과시켰다.

기장 총회의 결정은 재차 학생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자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 공개자퇴서가 발표된 직후인 10일 이신효 '민주한신을 위한 신학대학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민주한신 비대위) 공동대표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사실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는 게 맞다"는 뜻을 전해왔다.

학교 측은 연 총장 선임이 적법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13일 치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학교 측은 "연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은 이미 학교연구윤리위원회에서 문제 삼을 수 없다는 결의가 내려진 사안이며 이사회는 한신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학생, 교원, 직원, 대학 간 4자협의회를 통해 복수의 총장 후보자를 추천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4자간 내부 문제로 총장후보자를 추천하지 못함에 따라 장기간 총장 공백에 따른 학교 운영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연 교수를 선임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학생 측은 총장선임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다고 맞서고 있다. 이신효 공동대표는 기자에게 "총장 공백 기간과 무관하게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총장 선임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학생들의 결기 어린 외침, 들리는가

총장 선임을 둘러싼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시계를 지난해 3월로 되돌려야 한다. 당시 한신대는 교수회의 전체표결을 실시해 총장 선출방식을 새로 정했다. '교수, 학생, 직원이 직접 선거를 실시하고, 득표율에 각기 2:1:1의 가중치를 둬 합산한 후 1위와 2위를 총장 후보로 정해 이사회에 올린다'는 것이 바뀐 안의 뼈대다. 이에 따라 학생들이 총장 선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는 각각 총투표를 실시했고, 이 결과 류아무개 교수가 1순위 후보로 확정됐다. 그러나 당시 이사회는 1순위 후보가 아닌 3순위인 강성영 교수를 총장으로 선임했으나, 총회 인준 부결로 체면을 구겼다.

연규홍 총장 선임 과정 역시 매끄럽지 않았다. 지난해 기장 총회는 강 전 총장서리 인준을 부결시키면서 이사회에 대해서도 사퇴 권고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이극래 이사장은 8월 사퇴하고 유영준 장로(신송교회)가 이사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그러나 이사회는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총장 선임 절차를 진행했다. 여기에 총장 후보에 지난 해 인준이 부결된 강성영 교수가 다시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학생들이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한 건 바로 이런 맥락이다. 기자와 접촉한 학생 A씨는 "한신대 이사회의 연 총장 선임은 사퇴한 이극래 전 이사장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채 대행 체제로 이뤄졌다. 절차상 하자가 심각하다"라고 지적했다. 민주한신 비대위도 13일 성명을 통해 "제대로 된 검증조차 진행되지 않고, 학내 구성원의 목소리를 전부 무시하고 101회 총회의 결의사항까지 무시한 연규홍 교수의 총장 인준은 잘못됐다"라고 선언했다.

연 총장은 학생들의 자퇴결의가 있기 하루 전인 12일 담화문을 발표해 "저는 제7대 한신대학교 총장의 임무를 시작하며 기독교 정신으로 한신 공동체의 상처를 치유하고 신뢰를 회복하여 하나 되는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일에 앞장서고자 한다"라면서 진화에 나섰다. 이어 "이를 기초로 한신의 개혁과 자랑스러운 선배들의 민주전통을 바로 세우고자 다짐한다"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학생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총학생회는 곧장 반박 성명을 내고 "이것(연 총장 담화문 - 기자 주)은 학내 구성원을 기만하는 것이자,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몰염치한 행위"라고 일축했다.

한신대에서 일고 있는 학내갈등은 여느 사학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비슷한 양상이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집단 자퇴결의는 이례적이다. 게다가 한신대가 지닌 학풍, 그리고 1970, 1980년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보여준 저항정신을 떠올리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신학과 이영미 교수는 학생들에게 "학생으로서 마지막 결단이 자퇴다. 제자들이 내는 자퇴서를 받을 수 없다. 여러분들이 연 총장과 최선의 대화 노력을 한 뒤 자퇴서를 내달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공은 학교 측으로 넘어왔다.

한신대가 이대로 침몰하면, 비단 신학교 하나의 위상 추락뿐 아니라 한국 민주화 운동의 소중한 유산을 잃는 결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자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의 결기어린 외침을 한신대 구성원은 물론 우리사회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전 평범한 학생입니다. (중략) 주어진 대로, 시키는 대로만 하면 쉽고 편했습니다. 복잡하게 나서서 행동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권력층이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것이 편했고, 제게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니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2016년 3월 입학하자마자 제 손으로 총장을 선출했으나, 이사회는 우리의 투표를 무시하고 비민주적으로 총장을 선임했습니다. 저항하는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총회에서 총장인준이 부결됐습니다. 학우들이 싸웠습니다. 사실 너무나도 무서웠기에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 방관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가만히 있는 사이에 이사회는 다시 연규홍 교수를 총장으로 선임했고, 결국 이번 제102회 총회에서 인준됐습니다. 제가 가만히 있을 때, 제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한신은 죽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 신학전공 박시은(16학번)

지유석 기자 lukes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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