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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 국가기록원장’ 박찬우 의원님께/ 오항녕 (한겨레, 2017.07.2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9 16:14
조회
219
연일 청와대 캐비닛에 버리고 간 ‘대통령 기록’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300종, 1300여종… 아예 전체 청와대 캐비닛을 조사한다고 합니다. 그 기록에는 세월호 여론조작, 삼성뇌물 사건 등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 청와대 고위직이 개입한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문서파쇄기에 특수종이까지, 그렇게까지 기록을 파기하고 감췄으면서, 정작 업무 참고용으로 차기 정부에는 달랑 10여쪽 문서만 넘겨주었던 사람들이 ‘버리고 간 역사’입니다.

이 일로 오랜만에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의원님을 ‘원장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국가기록원장 시절 박찬우 자유한국당 의원님은 역량 있는 관료이자 배울 점 많았던 공직 선배였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 때는 민관, 여야를 불문하고 책임정부, 문화국가의 기초로서 국정 기록 관리에 대한 비전과 책임감이 충만한 시절이었습니다.

새내기 기록연구직들이 대거 공공기관에 입성하였고, 저도 국가기록원에 개방직으로 참여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 한복판에 의원님이 있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제게 ‘기록원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나랏일 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하셨지요? 당시 의원님의 토로에서 저는 진정성을 느꼈습니다. 도리어 그 기억 때문에 지금 마음이 아픕니다.

의원님은 지난 7월17일, 18일에 잇달아 박근혜 전 정권이 함부로 버리고 간 기록을 현 청와대가 공개한 것은 부당하고, 검찰에 사본을 보낸 것은 위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고발까지 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이번 청와대가 공개한 기록은 비밀기록도 비공개 정보도, 지정기록도 아니므로 공개 자체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 수사 진행 중인 사안에 증거자료로 쓰일 기록을 검찰에 협조하는 일은 정부기관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걸 행정가이신 의원님께서 모를 리 없는데도 문제시하다니 말입니다.

보도자료에 나온 의원님 견해 가운데, 대통령 기록의 생산현황 보고, 대통령 기록물의 지정 절차, 대통령기록전문위원회의 기능, 청와대 기록물 이관의 책임과 절차 등에 대한 오류는 일일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기록원을 떠난 지 오래되어 잊으셨구나 생각하겠습니다. 그보다 저는 의원님의 다른 언급에 주목합니다. 그 언급에서 역설적으로 의원님이 이번 ‘박근혜 전 대통령 기록물의 캐비닛 방치 및 미이관 사건’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고 계시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의원님은 ‘이렇게 대량으로 전임 정부의 대통령 기록이 다음 정부 대통령비서실에 (무단으로) 남아 있는 이 사태는 대통령 기록 관리라는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정말 참극이고 대형 사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 참극이 왜 생겼는지 밝히고, 어떻게 해야 앞으로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을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의원님이 가장 먼저 하실 일입니다. 그래야 의원님의 말씀대로 ‘정치적인 이유로 대통령 기록을 악용하는 사례를 막고’, ‘대통령 기록이 멸실되거나 훼손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다 아시면서 다른 말을 하시는지, 어찌 의아하지 않겠습니까.

안타깝습니다. 의원님이 법규를 부정확하게 이해한 채 사안을 판단해서만도, 정파적 입장에 따라 사안을 곡해했기 때문만도, 논리의 비약이나 부당한 추론으로 사안을 왜곡했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의원님의 발언이 국가기록원장 시절의 나랏일 하는 보람을 근원적으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마셨으면 합니다. 보람 있는 곳에서 멀어지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하여, 거듭 청합니다. 부디 아는 대로만 말씀하십시오. 그리하여 의정활동의 앞날에도 보람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오항녕 운영위원/ 전주대 교수·한국기록학회 이사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3672.html#csidx506c01556d1f752803d0b278a49cd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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