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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의 단골질문... "김대중 언제 만났어?" (오마이뉴스, 2017.08.2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8 10:58
조회
423

 '악'으로 점철돼 있는 대공분실의 섬세한 설계... 오늘날 경찰 개혁을 생각하다


 고문하던 수사관이 물었다. 물론 그는 김대중을 만난 적이 없다. 정말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시인하겠건만, 계속되는 부인에, 고문의 강도는 점차 거세져만 갔다. 1985년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간 문용식의 증언이다.


 박종철 열사가 죽고, 김근태가 고문받은 곳, 남영동 대공분실. '김대중을 언제 만났느냐'는 질문은 이곳 남영동의 단골 멘트였단다. 광주항쟁을 하루 앞둔 1980년 5월 17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송건호를 비롯한 언론인들을 검거해 고문한 곳도 바로 이곳 남영동이었다.


 현재는 이곳은 과거를 반성하는 취지에서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남영동 곳곳에는 그 시절의 무서운 흔적들이 남아 당시의 공포를 짐작하게 했다.


 '천재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악'
'천재 건축가'라 불렸던 김수근은 하나의 추상을 온전히 건축에 담는 데 성공했다. 이곳 남영동 대공분실을 온전히 집약하는 한 글자, '악(惡)'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는 끌려온 자의 고통과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7월 17일, 인권연대에서 주최한 청년인권학교에 참가한 나는 오창익 사무국장의 안내에 따라 김수근의 세밀한 설계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 남영동에 끌려온 사람이 맨처음 접하게 되는 것은 입구 정문이다. 지금은 교체됐지만, 과거 대공분실의 정문은 매우 육중한 쇳덩어리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철대문이 여닫칠 때마다 큰 쇳덩어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당시 대공분실에 잡혀왔던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대공분실에 들어설 때 탱크가 굴러가는 소리를 들었고, 이에 큰 공포감을 느꼈다'고 한다. 탱크가 작동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면, 그 소리가 주는 공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문을 지나면 건물 본관에 들어가게 된다. 건물 정면에 큰 출입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잡혀온 이들의 전용 입구는 측면에 따로 마련돼 있다. 검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창문이 없어 한낮임에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했다.


 바깥과의 철저한 단절이 주는 미지의 어둠은 잡혀온 사람들의 공포를 더욱 극대화한다. 입구 정문의 철대문 소리가 잡혀온 이의 청각을 자극한다면, 이곳 건물 내부는 시각을 지배함으로써 심리적 공포를 키운다.


 고문실은 5층에 있다. 5층까지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계단의 구조도 평범하지 않다. 보기 힘든, 나선형 철재 계단이다. 가파른 높이의 단에, 단과 단 사이는 비어있다. 게다가 으레 있는 계단참이 없고 층 표시를 두지 않아, 몇 층인지를 알 수 없게 만들어놨다.


 몇 층인지도 알지 못한 채 계속 이어지는 나선형 구조.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계단. 게다가 철재 계단을 밟을 때마다 울리는 쇳소리, 그리고 수사관의 폭력과 고함. 몸은 벗겨진 채 원형 계단을 돌며 올라가는 사람은 공포와 어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당시 가축 끌려가듯 잡혀서 이 계단을 올라갔던 이들은 자신이 고문 받은 층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예측 불가능함이 주는 긴 공포감 탓에 계단을 8층 높이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고. 그렇게 건물은 사람의 청각·시각에 이어 공간감각까지 공포로 지배하는 것이다.


 5층에는 조사실들이 빼곡하게 있다. 현재는 층 대부분이 리모델링을 마친 후라 당시의 모습이 온전히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박종철 열사가 숨진 509호 조사실만 그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당시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이곳에서 박종철 열사는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다. 좁은 공간, 잡혀있는 동안 이곳에서 모든 것을 해야 했다. 심지어 대소변도 따로 칸막이가 없어 수사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해결해야 했다. 이때 사람들은 신체적 고통, 그 이상의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창문은 겨우 한 뼘 너비다. 고문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투신 자살할 것을 방지하기 위한 건축가의 세밀한 설계다. 조사실 현관문에는 렌즈가 있는데, 이는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닌, 밖에서 안을 보는 구조다. 이 때문에 잡혀온 이들은 한시라도 감시받고 있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밖에도 남영동 대공분실은 신체적·심리적 공포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여러 장치가 세밀하게 배치돼 있었다. 반면, 직원들을 위한 공간은 작은 것까지 편리하게, 또 미적인 요소까지 더해 디자인돼 있었다. 당장에 꽃밭이 일궈진 남영동 정원은 꽤나 아름다웠다. 나는 이와 같은 철저한 분리가 더 무서웠다.


 남영동이 남긴 메시지, '경찰 개혁'


 남영동 대공분실에는 현재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가 들어섰다. 그러나 아직도 전국에는 많은 '대공분실'이 '보안분실'로 이름을 바꾼 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것도 외부에서는 알 수 없도록 'OO산업' 'OO상사' 같은 간판으로 위장한 채. 이러한 위장 아래, 오늘날에도 보안분실의 보안수사대는 국가보안법 수사를 전담 중이라고 한다.


 게다가 지난 7월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정권 말기인 2015년부터 경찰이 이같은 보안수사 조직과 인력을 4배 가까이 늘리고 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인권침해와 정치탄압의 수단이 되었던 경찰 보안부서를 축소해야 한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시대를 거스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독재와 고문, 매카시즘과 반인권의 상징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 지금은 인권보호센터로 탈바꿈해, 대공분실의 기능은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곳에서 고문 받았던 박종철과 김근태, 수사관의 '단골 질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제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남영동의 인권보호센터로의 변신을 마냥 기뻐하기에는, 박종철, 김근태, 김대중 그분들이 떠난 빈자리를 그저 추모로만 채우기에는, 아직도 남아있는 전국의 대공분실 수만큼이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섣부른 안도와 추모에 앞서, 다시는 그분들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분들의 희생을 현재와의 연장에서 기억하고, 또한 그 정신을 실질적인 고민과 실천을 통해 계승하는 일을 선행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개혁을 표명한 새 정부 출범에 따라, 경찰도 내부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그 일환으로,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경찰개혁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러나 마냥 경찰에게만 내부 개혁을 떠맡긴 채 방관할 수는 없다.


 의미 있는 개혁을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남영동의 희생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과감하고 의미 있는 경찰 개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신영수 기자 namubul108@ohmynews.com


 원문 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5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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