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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감호자들의 ‘슬기롭지 않은’ 감빵생활 (한겨레, 2018.01.2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1-28 00:45
조회
889

안녕하세요. 경찰청을 출입하며 이런저런 수사 소식도 전해드리고 경찰 개혁을 감시하고 있는 허재현입니다. 얼마 전 저는 영화 <1987>을 경찰청 간부들과 함께 봤는데요. 수사당국이 국민의 인권을 함부로 여겼던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도록 앞으로도 감시의 고삐를 놓지 않겠습니다. 다만 오늘은 수사당국 이야기는 아니고 교정당국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어 친절한 기자로 등장했습니다. 지난 24일 시민단체 인권연대와 함께 법무부의 협조를 받아 경북 청송교도소 견학을 다녀왔는데, 뜻밖의 경험이 제 가슴을 아주 무겁게 만들었거든요.


재소자들이 실제 생활하고 있는 날것 그대로의 감방에 직접 들어가 살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의 견학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모 방송사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나오는 감방과 현실의 감방은 얼마나 다른지 살펴봤습니다.


“세상에나, 이렇게 좁다니!” 역시 예상은 했지만 티브이에 나오는 감방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실제 청송교도소의 감방은 2평(6.6㎡) 남짓한 공간에서 4~5명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었습니다. 숫자로 말씀드리니 감이 안 온다고요? 잠을 자려고 다 같이 누우면 마치 고기산적이 다닥다닥 붙어 꼬치에 꿰여 있는 것 같은 형태로 잠을 자야 할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라는 말씀입니다. 티브이에 나오는 감방은 실제와 비교하면 여관급의 투숙 공간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날 교도소 쪽도 과밀 수용 현실을 인정하긴 하더군요. 하지만 예산과 지역 주민의 반발 등의 문제로 교도소 증축은 할 수 없고 그저 가석방 규모를 늘리는 쪽으로 과밀 수용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라 설명했습니다.


감방 벽에는 작은 텔레비전이 붙어 있더군요. 애플사의 아이패드 크기만큼 작은 텔레비전이었습니다. 교도관에게 무엇을 틀어주느냐 물으니 “뉴스는 생방송으로 보여주고, 기타 프로그램은 교도소에서 선별한 것들을 방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도 보여줄 의향이 있느냐 물으니 그저 웃기만 하더군요.


감방 견학을 마친 뒤 재소자들이 노동을 하는 작업장으로 옮겼습니다. 재소자들이 하루 종일 감방에만 갇혀 있는 건 아니에요. 때에 따라 작업을 하러 나가기도 합니다. 여기서 뜻밖의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한 작업장에서 갈색 재소복을 입은 사람들이 약봉지 비슷한 것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인권연대 활동가 한분이 “뭐 힘드신 거 있냐”고 재소자들에게 말을 붙이자, 이분들이 교도관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우리 좀 빨리 꺼내주세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형이 만료되는 때 당연히 출소하게 될 건데 대체 뭔 소리인지 의아해하다가 “사실 저는 <한겨레> 기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분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한겨레> 박○○ 기자님을 아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제가 명함을 건네주려 하자 교도관이 제지했습니다. 서로 눈만 마주치며 애타는 감정을 교환했습니다. 분위기가 숙연해졌습니다.


당황스러웠던 의문은 ‘청송보호감호소 수용자들이 형기가 끝난 뒤에도 옥살이를 해 억울하다’며 단식투쟁을 벌인 사실을 보도한 지난해 9월15일치 <한겨레> 기사를 찾아보고서야 풀렸습니다. 제가 맞닥뜨린 분들은 청송교도소 재소자가 아니라, 청송보호감호소 수용자들이었습니다.


‘보호감호’란 말 아시는지요. 선고된 형을 감옥에서 다 치르더라도 재범 가능성 우려 등을 이유로 추가로 감옥에서 ‘보호 조처’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황당하지요? 그 황당함이 인정돼 2005년 보호감호 조항이 들어간 사회보호법은 폐지됐습니다. 그런데 법 폐지 때 기존 보호감호 처분을 받던 분들은 계속 구금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전국적으로 50여명이 아직까지 보호감호 상태에 있습니다. 청송교도소에서 저는 이 50여명 무리의 일부를 만난 것이지요.


이분들의 존재는 잊힌 상태입니다. 청송교도소에서 사실상 보호 아닌 격리 조처를 받고 있는 이분들은 이날 외부인의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다 목구멍 깊숙이 넣어두었던 “꺼내주세요”라는 말을 내뱉었을 겁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보호법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해 폐지했다면, 과거의 감호처분 받던 분들은 즉각 석방돼야 할 것입니다. 기껏해야 50여명밖에 안 돼서 국회는 더 이상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지면을 빌려 하루빨리 법 재개정에 착수해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청송교도소 건물을 나설 때 ‘마음으로 함께 하는 교정, 앞서가는 법질서’라는 표어가 교도소 벽에 붙은 것을 보았습니다. 보호감호라는 이유로 교도소에 여전히 갇혀 사는 분들도 엄연히 주권을 가진 국민입니다. 그분들에게도 앞서가는 법질서가 적용되길 바랍니다.


허재현 사회에디터석 24시팀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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