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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익의 인권수업] 검사들만 받는 아주 특별한 대우 (경향신문, 2018.5.1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5-21 14:44
조회
833

민주주의의 한 과정. 문무일 검찰총장은 일선 수사진에 대한 질책을 민주주의라 했다. 검사동일체 원칙이 법률에서 사라진 건 맞지만, 검찰의 동일성은 남다르다. 상명하복, 일사불란은 더하면 더했지, 군대보다 못할 바가 아니다. 상명하복의 정점엔 검찰총장이 있다. 검찰총장은 단순한 조직의 대표가 아니다. 인사권과 징계권을 바탕으로 조직 말단까지 틀어쥔 막강한 자리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이 권성동 의원을 소환하려고 하자, 검찰총장은 직접 수사책임자인 춘천지검장을 불러 호되게 질책했단다. 명백한 수사개입이며, 노골적으로 봐주기 수사를 주문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총장은 “검찰권이 바르고 공정하게 행사되도록 관리·감독하는 것은 총장의 직무”라고 밝혔다.


검찰총장은 수사진을 질책한 것이 “이견을 조화롭게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 했지만, 검찰총장이 질책, 곧 잘못을 꾸짖어 나무라는 것은 그저 무조건 복종을 전제로 한 명령과 지시에 다름 아니다.


나중의 일이지만, 검찰이 권성동 의원을 소환하기는 했다. 그러나 비공개였고, 소환한 날도 모두의 관심이 판문점에 쏠려있던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에 맞췄다. 같은 사건으로 불려간 같은 당의 염동열 의원은 물론 현직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전병헌 전 의원이 공개 소환으로 포토라인에 섰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특혜였다. 검사 출신에 대한 전관예우에다 검찰 관련 업무 전반을 다루는 국회 법사위 위원장이라는 점을 빼곤 설명할 수 없는 특혜다.


어떤 권리를 몇몇 특별한 사람들만 누린다면 특권,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있다면 인권이다. 특권은 헌정질서에 반하는 폐습이지만, 엄연히 우리 사회 곳곳에 살아 있다. 심각한 것은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의 특권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거다. 전·현직을 막론하고 검사들은 그 특권의 정점에 있다.


구속된 피의자도 수사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공범관계도 캐야 하고, 여죄도 추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과 검찰의 수사는 전혀 다르다. 경찰은 구치소를 방문해 접견조사를 하지만, 검찰은 피의자를 검찰청으로 부른다. 구치소 수용자를 검찰청에 보내려면, 매우 번거로운 일을 겪어야 한다. 일단 수용자에게 수갑을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포승까지 채운다. 여럿을 한꺼번에 옮기는 경우라면, 연승이라고 해서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묶는 포승을 채운다. 버스에 태운 다음에는 교도관 여럿이 계호를 하며 검찰청까지 가야 한다.


아직 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사람들인데도 이렇듯 굴비 두름 엮이듯, 묶인 채로 검찰청에 끌려 다니는 것은 피의자 입장에서는 모욕적이고, 교정당국 입장에서는 실무인력을 잔뜩 투입해야 하는 번잡한 일이지만, 매일처럼 반복된다. 그래서 얻는 이익이라곤 그저 바쁜 검사들의 편의를 봐주는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바쁘기로 친다면, 구치소 수용자를 검찰청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하는 교도관들도 마찬가지고, 수사접견을 위해 구치소를 찾는 경찰관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경우라면 다르다. 검찰청과 법원은 격도 다르지만, 공개재판을 받아야 하니, 수고스럽더라도 구치소 피의자가 움직이는 게 맞다. 검찰청을 법원처럼 오가게 하는 것은 검사만을 위한 특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검사의 특권을 위해 쓸데없이 인력과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만 하더라도 조사가 필요하면 검사가 구치소를 찾아간다.


검찰이 이런 특권을 누리는 것은 사법기관도 아니면서, 자기들이 법원과 엇비슷한 ‘준사법기관’이라는 인식, 게다가 검찰이 누리는 막강한 권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42명의 검사장들이 차관급 예우를 받으며 기사 딸린 승용차까지 제공받았던 것은 아무런 법률적 근거도 없는 일이었다. 그저 자기들끼리 만든 내부 보직 규정만으로 국가 예산을 맘껏 썼던 거다. 그런 폐습을 없앤다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중요한 쟁점은 따로 있다.


지방검찰청, 고등검찰청, 대검찰청으로 되어 있는 조직구조만 해도 그렇다. 법원을 본떠 만든 것인데, 법원이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의 조직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재판을 3번하기 때문이다. 지방법원은 1심 재판을, 고등법원은 2심, 대법원은 3심을 각각 나눠 맡는 구조다. 사람의 목숨이나 운명, 재산이나 명예가 걸린 재판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는 취지다. 마치 비슷한 일을 하는 듯, 지방법원 옆엔 지방검찰청이, 고등법원 옆엔 고등검찰청이, 그리고 대법원 옆엔 대검찰청이 있지만, 검찰은 법원과는 위상은 물론 기능도 완전히 다르다. 행정부의 부처 중 하나인 법무부의 외청에 불과한 검찰이 3권 분립을 보장받는 법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도 우습지만, 3번의 재판을 하는 법원과 달리 수사도 한 번, 기소도 한 번만 하는 검찰이 고등검찰청과 대검찰청을 두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고등검찰청과 대검찰청을 둘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건 일종의 망상의 산물이다. 검사도 판사처럼 똑같은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으니, 판사들처럼 대접받고 싶다는 욕구가 이런 일탈을 만들었다. 당장 고등검찰청이나 대검찰청을 없애도 시민들 입장에서는 아무런 손해나 불편은 없다. 그저 고위직 검사들 자리만 잔뜩 만들어내는 이상한 구조를 계속 용납할 까닭이 없다. 국민의 혈세에 기댄 특권을 그냥 둘 이유는 없다.


검사들은 현직에서 누리는 특권 말고도 권성동 전 검사의 경우처럼 퇴직한 다음에도 특권을 안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엄격하게 분리하여, 검찰을 기소전담 기관으로 환골탈태시키는 것이겠지만, 검찰이란 조직과 검사란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 그것도 퇴직한 다음에도 끝없이 이어지는 특권을 없애는 것도 중요한 관건이다. 어떤 것이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년 동안 검찰개혁에 관한 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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