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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기관 개혁에서 경찰은 '주연'될 수 있을까 (경향신문, 201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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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ights
작성일
2018-01-21 01:12
조회
562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으로 전환’. 1월 14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문재인 정부 권력기관 개혁방안’을 발표하며 밝힌 권력기관 개혁의 기본방침이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국가정보원 등 흔히 ‘3대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기관들이 지니고 있는 막대한 권력을 국민을 위해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이 개혁안이 제시한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또 하나의 기본방침이 바로 뒤에 덧붙었다. ‘상호 견제와 균형에 따라 권력남용 통제’. 그동안 유지됐던 권력기관 간의 힘의 판도가 바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힘자랑을 못하게 서로 견제하게 한다’는 청와대의 이 구상이 실현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구상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내용에서 이미 드러내고 있는 ‘상호 견제와 균형’을 달성하려면 불가피하게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갈등과 논의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권력기관 개혁안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3개 기관은 각각의 조직논리를 바탕으로 어떻게 해야 자기 조직에 유리한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다만 이들 기관과 조직 고유의 이해득실 대신 과도하게 주어진 권력을 분산시켜 국민에게 되돌리는 과정이 복잡한 것이다.


선언적 수준에 그친 자치경찰제 도입


“나도 한 명의 일반 시민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큰 틀에서는 반대할 구석이 없어요. 그런데 경찰이라는 조직의 일원이라는 입장에서는 어떤 입장이냐, 그렇게 물으면…. 일단 경찰도 한 가지 색깔로 통일된 그런 조직이 아니라는 말부터 하고 싶은데….” 서울의 일선 경찰서에서 교통분야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관 ㄱ씨의 말이다. 교통사고가 일어난 경위와 책임 등을 조사하는 ㄱ씨는 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자치경찰제’가 실시되면 각 시·도 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위치에 있다. 국가공무원에서 지방공무원으로 신분이 바뀔 위치에 있으니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과 같은 내용보다 본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가 우선이다. 김씨는 “지금도 경찰한테 ‘치안조무사’라고 욕하는데,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눠지면 자치경찰한테는 또 어떤 식으로 비하하는 말이 나올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이 바뀌고 지자체 소속으로 전환된 이후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 때문에 자치경찰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경찰관들은 불안을 느끼기도 하지만, 자치경찰제 도입은 현재로서는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조국 민정수석은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분리를 강조하며 지방분권법 12조 3항(‘국가는 지방행정과 치안행정의 연계성을 확보하고 지역 특성에 적합한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자치경찰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을 언급했다. 그러나 지방분권법의 해당 조항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자치경찰제를 어떻게 실시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법률은 전혀 없다.


사실 이번 권력기관 개혁안에서 다른 기관보다 경찰에 가장 큰 권한이 집중된 것은 경찰 내부에서도 인정하는 내용이다. 국정원이 갖고 있던 대공수사권이 경찰청 산하에 신설돼 대공수사를 담당하는 안보수사처(가칭)로 이관된다.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한정해 경찰이 1차 수사를 전담하는 원칙을 세워 검찰과의 관계에서도 경찰의 입지가 더욱 높아지게 된다. 게다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설치되기 이전에도 경찰이 검사를 수사할 수 있는 방안이 추진된다.


수사경찰과 일반경찰로 분리


검찰과 국정원의 권한 일부가 경찰에 이관되지만 경찰에는 반대급부도 있다. 사실상 조직이 4개 분야로 쪼개진다는 점이다. 자치경찰은 아예 경찰청 소속에서 분리돼 각 광역지자체 산하가 된다. 신설되는 안보수사처는 국정원에서 해당 임무를 맡던 인력들이 상당수 옮겨올 공산이 커 한동안은 경찰 내부에서 이질적인 집단으로 남을 여지가 많다. 그리고 자치경찰에 대응되는 국가경찰 자체를 수사경찰과 일반(행정)경찰로 분리하는 것도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방안이다. 수사를 전담하는 국가수사본부가 신설되면 경찰청장과 지방경찰청장, 일선 경찰서장 등 일반경찰이 수사 담당자들의 사건 수사를 구체적으로 지휘할 수 없게 되는 구조다.


다른 분야에 비해 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수사관들에게서는 독립성이 강화된 이번 개혁안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경찰의 오랜 숙원이라 불리는 영장청구권이나 수사종결권 등을 가져오는 데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경찰대 출신 고위간부들의 입김과 실적 요구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기 때문이다. 경찰대 출신이면서도 수사본부 독립을 적극 지지하는 경찰관 ㄴ씨는 “2012년 대선에서 서울청장이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에 수사개입한 걸로 밝혀졌던 그런 전례는 줄일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고위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극소수의 간부 때문에 일선에서 일하는 수사관들까지 대외 홍보거리 찾느라 골머리 썩히는 식으로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수사경찰과 일반경찰을 분리해 경찰위원회가 인사권을 행사하는 방안이 도입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경우 차관급의 개방직 국가수사본부장이 수사를 총괄하기 때문에 경찰 수사의 정치적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경찰 조직개편안을 두고 명확한 밑그림이 그려진 것이 아니어서 여전히 더 큰 권력의 눈치를 보는 또 하나의 고위직이 탄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이어져온 경찰 조직의 특성이 바탕에 자리잡고 있다.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경찰은 다른 기관에서 비슷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임제 성향이 강한 곳”이라고 말했다. 다른 행정기관이나 부처와의 협의 없이 단독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독임제의 특성이 경찰에서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찰 조직 구조 아래에선 12만명에 육박하는 경찰 인력이 경찰청장 1인의 지휘와 강한 위계질서에 따라 움직인다. 비록 경찰 조직의 위에 행정안전부가 있지만 사실상 청와대가 0.5%에 해당하는 총경 이상 인사를 좌우한다. 이들 고위간부를 제외한 99%의 경찰관들은 자신의 바로 위 인사권을 갖고 있는 직속상관의 지시에 따라 직무를 수행한다. 때문에 전보다 권한이 강화된 경찰 조직이 기존 골격을 유지하면 더 큰 권위주의적 행태가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장신중 경찰인권센터 소장도 자신이 쓴 책 <경찰의 민낯>에서 현재의 경찰 조직 하에서 “모든 경찰의 관심사는 계급이라는 개인적 분야에 머문다. 직무수행과 관련한 모든 것이 국민이 아닌 인사권자의 뜻을 살펴 정해진다”며 현실을 꼬집은 바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는 점에서도 장 소장은 이번 개혁안의 자치경찰제 등을 통해 ‘정치경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도 했다.


권력기관 개혁에서 경찰은 '주연'될 수 있을까


국회 입법과정에서도 다양한 변수


장 소장은 “경찰 수뇌부에 대한 임명권과 보직 부여권을 모두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다 보니 정권에 아부하는 잘못된 관행이 있었는데, 이런 정치경찰 문제는 자치경찰제로 해소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권력기관 개혁안이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에서 검찰의 특수수사 기능을 남겨두는 등 직접 수사를 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아 수사범위를 나누는 지점에서의 모호함은 그대로 남아있다. 검찰이 청와대의 이번 개혁안 발표 이후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권한 축소에 큰 불만을 표현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경찰 일각에서 주장하던 ‘수사와 기소의 분리’까지 가지 않고 여전히 검찰에 수사기능이 남겨져 있기 때문에 검찰이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그동안 발휘하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며 “오히려 경찰이 명목상으로는 상당한 권한을 가져가므로 앞으로의 수사권 조정 문제에서는 검찰이 유리한 지점에 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의 한 경찰 간부도 “경찰이 영장을 신청해도 검찰이 영장 청구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로 권력기관 논의가 마무리돼 버리면 경찰 수사권 독립은 다음에는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은 상태에서 지금 당장은 경찰이 주인공 역할을 맡는 듯 보이지만 구체적인 양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여지가 있다. 국정원에서 경찰로 대공수사권이 넘어갔지만 청와대도 국가보안법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국가보안법의 오·남용 사례가 재발할 수 있다는 시민사회의 지적도 있다. 그러나 국보법 개정 또는 폐지가 청와대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결국 향후의 논의는 국회에 집중될 전망이다. 마찬가지로 권력기관 개혁안이 관철되기까지 경찰법과 형사소송법, 국정원법 등을 국회에서 입법하는 과정에서도 다양한 변수가 나타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과 관련된 법안들이 계류돼 있는 것을 비롯해, 국정원을 내·외부적으로 견제하는 방안과 함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내용 등이 담긴 국정원 개혁법안도 아직 계류 중이다. 여기에는 국정원 특수활동비 세부자료를 국회에 제출하게 해 집행내역을 보다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내용의 개정안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에 비해 경찰 조직을 국가·자치경찰로 분리하는 등의 조직개편이 담긴 경찰법·경찰공무원법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명확한 개정안을 내놓지 않아 더욱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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