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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익의 인권수첩] 검경 수사권 조정, 인권보호에 필수 (경향신문, 2017. 10. 2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7 11:06
조회
316

  “검경 수사권 조정은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경찰의날 기념식에서 했던 말이지만, 대선공약도 그리 발표한 터이니 단순한 덕담은 아닐 게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동안 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 사이의 권한 다툼으로만 여겨졌지만, 대통령은 인권보호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오금을 박았다. 그렇다. 뭔가 조정이 필요하다면, 그건 오로지 시민의 인권보호를 위해서여야 한다.


백남기 선생을 죽였고, 어금니 아빠 사건에서 보듯, 꽃 같은 중학생의 생명을 지키는 데 한없이 무능하고 무성의했던 경찰에 새로운 권한을 줘야 한다는 걸 뜨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이 필요한 까닭은 경찰이 아니라, 검찰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 검찰의 권한은 막강하다. 수사권과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기소와 공소유지권에다 형집행권까지 갖고 있다. 수사의 시작부터 끝, 기소와 재판, 그리고 재판 결과에 대한 집행까지, 형사사법에 대한 권한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다. 권한의 집중은 필연적으로 부패와 비리, 권한 남용으로 이어진다. 이런 게 쌓인 게 바로 ‘적폐’다.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면서도 어떤 견제도 받지 않는다.


얼핏 보면 법원의 통제를 받는 것 같지만, 형사사법의 주도권은 법원이 아니라 검찰이 쥐고 있다. 죄 없는 사람도 법정에 세울 수 있고, 죄 많은 사람도 짐짓 모른 척할 수 있다. 형사재판을 하는 중이라도 기소 내용을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 공소를 취소하면 재판은 그냥 막을 내리게 된다. 법원이 아무리 무거운 형을 선고해도, 검찰이 형집행정지 등을 통해 풀어주면 그만이다. 그러니 형사사법은 그냥 검찰사법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이런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검찰이 그동안 저질렀던 범죄목록은 차고 넘친다.


권한이 한곳에 집중되면, 그래서 어떤 기관이 독주하거나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게 되면, 반드시 일탈이 따르기 마련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검찰 문제는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권한이 집중된 데서 오는 문제다. 그러니 해결책은 집중된 권한을 쪼개는 것밖에는 없다. 민주주의 일반 원리도 그렇다. 민주주의 원리는 대충 이렇다. 모든 권한은 시민이 위임해 준 것이기에 오로지 시민만을 위해서 쓰여야 한다. 이를 위한 핵심적 관건은 각 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이를 담보할 분권이다.


검찰이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으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검사들을 수사하며 일탈을 경계하고, 검찰이 지닌 수사권은 경찰에 넘겨주는 거다. 수사권을 넘겨받은 경찰이 비대해질 게 걱정되면, 경찰관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맡는 식으로 서로 물고 물리도록 하자는 거다. 경찰 수사에 대한 우려는 검찰이 가진 기소권과 보완수사권으로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 이렇게 견제와 균형을 잡아보자는 게 수사권 조정의 핵심이다.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검찰개혁은 매번 시대적 과제요 시민적 요구였지만, 검찰은 그 막강한 힘으로 번번이 개혁을 좌초시켰다. 이번엔 다를까? 검찰 입장에서 보면, 적폐청산 국면은 그동안 악화되었던 여론을 반전시키며 검찰의 힘을 다시금 비축할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꼭 해야 할 수사를 하면서도 마치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양, 생색을 내며 기득권을 지키려 애쓸 것이 뻔하다. 검찰이 가장 깨끗하다는 오만, 고졸 출신 대통령에게 부러 학번을 묻는 흉악한 오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을 수용할 리가 없다.


그래서 수사권 조정을 두고 검찰과 경찰의 자율적인 합의를 도모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가능하다면 그러면 좋겠다는 수사일 게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둘 다 중요한 국가기관인데, 한쪽 편만 들거나 한쪽을 몰아붙여서는 안될 거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의 권한을 놓고 이해당사자들끼리 논의할 때의 결론은 너무도 뻔하다. 접점조차 없다. 대통령이 요구하면 시늉은 내겠지만, 자율적인 합의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러니 핵심은 “중립적인 기구를 통해 결론을 내겠다”는 데 있을 거다. 하지만, 이도 쉽지 않다. 노무현 정부 때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각계 인사들로 검경 수사권 조정 자문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이 위원회는 검찰이 절반, 경찰이 절반을 위촉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대립만 일삼다 끝나버렸다.


위원장을 뽑는 것조차 어려웠다. 가나다순으로 하자면 이쪽이 반발하고, 연장자로 하려면 저쪽이 반발하는 식이어서 사회통념에 기댈 수도 없었다. 결국 동전을 던져 위원장을 정했다. 그만큼 합리적인 대안을 찾지 못했던 거다. 이런 실패를 반복할 수는 없다.


그래서 대통령이 구상하는 중립적인 기구가 사뭇 궁금하다. 신고리 5·6호기 문제처럼 시민참여단을 구성해 집단지성을 좇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자칫하면 그저 브리핑을 잘하는 쪽이 높은 점수를 받는 식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문제가 어려울수록 원칙에서 답을 찾으면 된다. 그건 문 대통령의 공약에서 출발하는 거다. 당연히 공약은 지켜야 한다. 선거 과정에서 후보가 시민의 선택을 받겠다며 공적으로 했던 약속이니, 천지개벽처럼 불가항력적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공약을 지켜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공적 책임을 부여받은 공직자에게는 그게 최소한의 책무다.


그러니 대통령이 직접 수사권 조정방안을 마련하고, 그걸 국회에 제출하여 심의하도록 하는 게 제일 좋다. 굳이 중립적인 기구를 마련해야 한다면, 그 기구는 대통령의 공약, 곧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을 전제로, 그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기구여야 한다. 자칫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 때를 놓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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