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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1-전.의경은 경찰봉이 서럽다](한겨레21 200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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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ights
작성일
2017-06-28 16:29
조회
966

<전·의경은 경찰봉이 서럽다>


밤낮 없는 근무에 청춘 시드는 최전선의 공권력… 깐깐한 군기·잡다한 임무 등에 자살·탈영 잇따라


“폭력경찰 물러가라.”


오늘도 어디선가 시위대가 외치고 있다. “너희들은 부모형제도 없냐.” 머리띠를 두른 노동자와 늙은 농민이 울분을 토해낸다. 진압복과 방패, 장봉으로 무장한 채 그들 앞에 서 있는 젊은이들은 말이 없다. 언제고 명령만 떨어지면 시위대를 향해 달려들 준비가 돼 있는 ‘공권력’. 그들의 이름은 대한민국 전·의경이다.


그들은 경찰이 아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경찰복을 입었을 뿐이다. 육·해·공군에 입대한 또래들이 ‘국방부 시계’에서 눈을 떼지 않듯, 그들도 ‘행자부 시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앞면에 ‘육군병장 만기제대’, 뒷면에 ‘OO지방경찰청’이라고 적힌 전역증을 손에 쥘 때까지.


‘폭력경찰’ 대명사, 그 고달픈 딱지
11월 21일 오후 경기 동두천 미2사단 ‘캠프 케이시’ 정문 앞. 미군 궤도차량 여중생 치사사건 재판에서 관제병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진 데 대한 항의시위 과정에서 또다시 낯익은 풍경이 연출됐다. 성난 시위대와 밀고 당기기를 몇 차례 반복하던 경찰병력이 시위대를 향해 방패를 휘두르고, 곤봉을 내질렀다. 시위대 앞쪽에 있던 한 여성은 머리채를 휘어잡힌 채 경찰병력 사이로 끌려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인터넷과 방송을 타고 경찰의 ‘폭력진압’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 언론사와 경찰청 등의 인터넷 게시판은 분노한 시민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사태가 커지자 경찰청은 11월 29일 뒤늦게 해당 지방청·경찰서 경비 담당자와 기동단 전·의경 등 10여명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청의 이런 움직임에도 경찰 폭력에 대한 비판은 그칠 줄 모른다. 특정 사건에 대한 감사 및 책임자 문책이 걸핏하면 반복되는 과잉·폭력 시위진압의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판의 중심에는 시위진압의 최일선으로 내몰린 전·의경 문제가 버티고 있다.


경찰청이 올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각종 집회·시위에 동원된 전·의경은 연인원을 기준으로 △2000년 1만7375개 중대 191만1250명 △2001년 1만1536개 중대 130만1960명에 달했다. 올해도 지난 8월 말 현재까지 모두 5582개 중대 61만4020명이 시위진압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들 집회·시위 진압에 나서는 경찰병력을 ‘전경’이라고 부르지만, 이들의 80%
이상은 기동대나 방범순찰대 소속 의경들이다.


의경 기동대 출신으로 지난 10월 중순 제대한 정아무개(22)씨는 “요즘 제시간에 잠들 수 있다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의경생활 내내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건 불규칙한 생활이었다. “시위 상황이 모두 끝나야 부대로 복귀할 수 있기 때문에 생활이 언제나 유동적이다. 밤샘 근무도 1주일에 1~2차례는 꼭 걸리기 때문에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 시위 상황이 밤늦도록 이어져도 이튿날 미군 관련시설 경비업무가 예정돼 있으면, 서너 시간 눈을 붙인 뒤 새벽녘에 근무지로 이동해야 했다.”


잠들 수 없는 나날, 주말도 없다
미국 관련시설 등에 대한 밤샘 경비근무에 나가 보통 2시간40분씩 3조로 나눠 근무하면 날이 밝는다. 자기 근무시간이 아니면 버스에서 야식도 먹고 선잠을 자기도 한다.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 곁에서 만난 한 의경은 “바깥에서 근무를 마치고 버스 안으로 들어서면 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불규칙한 식사시간에다 불편한 자세로 선잠을 자다 보니 자신들도 모르는 새 위아래로 ‘가스’를 품어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전·의경 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말에 휴식을 취하는 육·해·공군과는 달리 전·의경은 주말에 노동강도가 더욱 높아진다. 각종 집회·시위가 몰려 있는 탓이다. 특히 시위대에 저지선을 뚫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이런 날이면 부대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이른바 ‘엉덩이 떼’(달리는 버스 안에서 좌석에서 엉덩이를 떼고 있는 반쯤 서 있는 자세)를 시작으로 군기를 잡기 위한 그들만의 얼차려가 시작된다.


사실 전·의경 사이에 아직도 구타와 얼차려 등 가혹행위가 남아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해 6월에는 부대 내 상습적인 구타에 못 이겨 탈영했다가 붙잡혀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경기지방경찰청 소속 의경이 부대 복귀를 거부하고 교도소행을 택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또, 올 7월에는 충북 음성경찰서 대소파출소 소속 신아무개(21) 이경 등 충북지역에서만 한달새 전·의경 3명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청이 올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 7월 말까지 부대 부적응 등의 이유로 탈영한 전·의경은 모두 203명에 달한다.
거의 하루에 1명꼴로 탈영자가 생긴 것이다. 이들 가운데 173명은 복무기간 12개월 미만의 신병이었다.


9단계 위계서열… ‘요인’이 뭐길래
지난 5월 전역한 의경 출신 박재웅(23)씨가 만든 인터넷사이트(http://user.chollian.net/~jwpark99/)에 소개된 9단계에 이르는 전·의경 사이의 촘촘한 위계서열은 그들 사이에 굳어진 ‘군기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처음 전·의경 부대에 배치되면 ‘바닥기수’ 생활을 해야 한다. 말 그대로 걸레 들고 내무반 바닥을 청소하는 시기다. 부대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군화에 광내는 ‘단화기수’와 기동복이나 근무복을 다리는 ‘다리미기수’를 차례로 거친다. 전·의경 생활 1년여가 넘어가면 ‘식판기수’ 또는 ‘챙기는 기수’로 불린다. 이들의 우두머리를 흔히 ‘식판짱’(혹은 챙짱)이라고 한다. 그 위로 근무표나 휴가일정을 잡는 ‘삼석’(또는 서무), 무전병인 ‘전령’이 있다. 전·의경 부대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것은 “중대장 바로 밑”으로 불리는 ‘기율경’이며, 제대가 얼마 남지 않으면 ‘왕고’(최고 고참)의 단계를 거쳐 ‘열고’(열외 고참)의 반열에 오른다.


시위진압 전담부대인 기동대에 배치된 전·의경의 가장 큰 고역은 상·하반기로 나눠 1년에 두차례씩 실시되는 검열이다. 중대검열을 시작으로 기동단, 지방청, 본청 등 모두 네 차례 실시되는 검열 준비를 위해 전·의경들은 약 2달 동안 강도 높은 진압훈련을 한다. 올 7월 말 현재 전국적으로 543명의 전·의경이 업무와 관련해 부상을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시위진압 때문에 다친 전·의경은 64명에 불과한 반면, 일반근무 과정에서 다친 전·의경은 무려 390명에 달한다. 의경 기동대 출신으로 최근 전역한 이아무개(23)씨는 “이들 대부분이 훈련 과정에서 다친 인원일 것”이라고 말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근무지시도 전·의경을 고달프게 한다. 지난 2월 부시 미 대통령 방한 반대시위 등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부근에서 각종 기습시위가 이어지자 경찰은 동상 앞에 아예 ‘콤비’ 미니버스를 세워놓고 의경 8명을 24시간 배치해두고 있다. 한 경찰 간부는 “이곳 근무자는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교대도 하지 않는다. 특히 밤 근무자들은 과속하는 차량 때문에 밖으로 나오기 어려워서 아예 소변용으로 페트병을 들고 들어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를 두고 ‘가혹행위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잘라말했다.


‘요인경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전·의경의 임무다. 지난 여름 서울 삼청동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 부근에서 북파공작원들이 1인시위를 벌인 뒤 의경 10명이 두달여 동안 매일 박지원 비서실장의 출근시간에 맞춰 경계근무를 섰다. 비서실장 공관 인근 금융연수원 경비실 직원은 “8월 말께 교대로 1인시위를 벌이던 중 누군가 옷을 벗어서 비서실장이 탄 차에다 집어던졌다. 그날 이후로 매일 아침 의경들이 나와 ‘벌’을 서더라”고 말했다. 매일 오전 6시부터 7시까지 1시간여
동안 근무를 서던 이들은 <한겨레21>이 취재를 시작한 뒤 최근 순찰차 요원들로 대체됐다.


경찰청은 11월28일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의 가해 미군들에게 무죄평결이 내려진 뒤 미국 관련 시설 경비를 대폭 강화했다. 서울 미8군 주변에는 경비인력을 평소 3개 중대에서 7개 중대로, 주한 미 대사관에는 2개 중대를 4개 중대로 늘렸다. 또 경기 의정부 미2사단,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저, 서울 을지로 미 공병단 등에도 1~2개 중대씩 경비인력을 증강했다. 지난 11월 26일 전국의 미국 관련시설에 배치된 전·의경은 현재 모두 40개 중대 4400여명에 이른다는 것이 경찰청의 설명이다.


권총 찬 헌병 앞에서 봉 들고 지키라고
지난 8월23일 인터넷매체 ‘민중의 소리’(www.voiceofpeople.org) 자유게시판에서 현직 경찰 간부라고 자신을 밝힌 한 네티즌은 이런 현실을 매섭게 질타했다. “…미 대사관이나 미8군을 두겹 세겹으로 에워싸고 담에 낙서하는 거 막고, 담 너머로 돌이나 화염병 던지는 거 막고, 두터운 담을 뚫고 지나가거나 권총으로 무장한 헌병이 지키는 군부대 입구를 진입하려는 시위대를 차단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시위대를 맞이하기 위해서 무작정 밤새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담에 낙서 좀 하면 어떻습니까 더한 말로 담 너머로 돌이나 화염병 기습적으로 던지면 어떻습니까 군부대 좀 진입하면 어떤가요 백번 양보해서 그게 법적으로 저촉되면 검거해서 정식 절차 밟아 처벌하면 되지 않습니까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소지한 헌병이 지키는 군부대 입구를 경찰이 봉 들고 지킨다고 하면 아마 개들도 웃을 겁니다….”


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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