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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익의 인권수첩]오늘도 조용한 국가인권위원회 (경향신문, 2018.08.0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8-14 11:26
조회
816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시민참여형 개혁기구는 경찰청이 만든 경찰개혁위원회였다. 새 정부 출범부터 경찰개혁위원회 출범까지 달포밖에 걸리지 않았다. 구성도 남달랐다. 위원들은 모두 외부 인사였다. 경찰관이나 전직 경찰관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고위직 경찰관들은 갑자기 낯빛을 바꿔 개혁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처구니없고 속은 쓰렸지만, 그것도 촛불의 성과라 여기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개혁성과였다. 경찰개혁위원회는 모두 30건의 개혁안을 발표했는데, 다행히 어지간한 개혁안은 두루 담아냈다. 2005년 남영동 보안분실(예전의 대공분실) 폐쇄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던 전국 각지의 보안분실들이 모두 폐쇄된다. 서울만 해도 홍제동, 옥인동, 신정동, 장안동, 신촌 등지에 보안분실이 있다. 정권 차원에서 눈여겨보는 시국사범들이 경찰서가 아닌 분위기부터 살벌한 보안분실에서 잔뜩 위축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이상한 일은 앞으론 없게 되었다. 정보분실도 사라진다. 의경들의 노동시간은 최대 주당 45시간을 넘지 않아야 하고,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휴식 기회를 보장받고, 일주일에 한 번씩 외출도 가능하게 된다. 영창제도는 이미 사라졌다.


경찰관들도 더디지만,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기 시작한다. 당장 노동조합을 설립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마땅하나, 일단은 직장협의회부터 시작한다. 남성 위주의 조직인 경찰청에서 적극적인 성평등 정책도 실현한다. 당장 성평등정책관부터 외부 인사를 채용했고, 적극적인 여성 우대 정책을 인사에서부터 펼치고 있다. 여러 경찰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검찰, 군대, 국정원, 감옥 등 인권침해와 관련한 논란이 많은 곳에서도 다양한 개혁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생각처럼 속도가 나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지만, 전체적으로는 환영할 만하다. 인권분야에서 구체적인 진전이 있다면 그보다 반가운 일은 없다.


경찰개혁위원회가 낸 개혁방안 중에 ‘시민에 의한 민주적 외부 통제기구 신설’이라는 게 있다. 만약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어 경찰이 실질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훨씬 힘센 경찰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의 부작용과 우려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영국(잉글랜드, 웨일스)의 IPCC(Independent Police Complaint Commission, 독립적 경찰 비리민원조사위원회)를 모델로 시민적·민주적 통제기관을 만들자는 거다. 명칭은 ‘경찰 인권·감찰 옴부즈맨(또는 위원회)’이라고 붙였다. 1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오로지 경찰만 감시하는 기구다. 경찰관의 법령 준수 여부를 감찰하고, 위법 부당한 행위가 드러나면 경찰청에 징계를 권고하거나 경찰관의 범죄사실을 직접 수사할 수도 있다.


영국의 IPCC는 법률 개정으로 IOPC(Independent Office for Police Conduct)로 바뀌고 위상과 업무도 예전보다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경찰과 전혀 다른 독립적 조직이 경찰을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경찰의 잘못을 시정한다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아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구가 이미 존재한다는 거다.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다. 인권위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별도의 전담 감시기구가 필요하다는 건 그만큼 인권위에 대한 기대가 적다는 거다.


인권위의 위상은 어디가 바닥인지 모를 지경으로 추락해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대통령 특별보고를 부활시키고, 정부 부처에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높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는데도 인권위 위상이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인권위 설립은 그 자체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50년 만의 정권교체로 탄생한 김대중 정부는 국가인권기구 설립이라는 그동안의 염원을 현실화했다. 입법, 사법, 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 인권기구는 김대중의 대선 공약이었고, 그 공약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이행되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설립과 동시에 조직의 기반을 닦은 인권위는 노무현 정부 때 여러 가지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 파병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등 인권위가 주도한 쟁점이 많았다. 한마디로 시끌벅적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인권위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명박 정권은 위상을 추락시킬 방도를 고민했다. 법 개정이 여의치 않자, 위원장 등 지도부를 바꿔 위원회 성격을 변화시켜갔다. 정권의 의도대로 인권위의 위상은 추락했고 누구도 인권위를 자신의 인권을 지켜줄 호민관으로 여기지 않았다.


가장 큰 잘못은 2009년 7월부터 2015년 8월까지 6년 동안 인권위원장을 맡은 현병철이 저질렀지만, 지금 위원장인 이성호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꼭 현병철과 이성호만의 잘못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 즉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그리고 사무처 직원들도 공범의 혐의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현병철 체제에 저항한 일부가 있었지만, 임기가 다 끝나갈 때쯤 사임한다든가 진정성을 믿기 어려운 대목도 많았다. 그렇게 인권위는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혀져 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인권위가 바뀌었는지 뭘 어떻게 고쳤다는 건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지난 정권과 달리 비교적 민감한 인권의제에 대해 의견을 내는 일도 간혹 있지만, 그건 이미 쟁점화된 사안들에 대한 뒷북이었을 뿐이다. 인권위가 의제를 설정하고 논의를 주도하는 일은 없었다. 설립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공염불만 외우며 진정사건 처리 때문에 힘들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온갖 인권문제가 터져 나오는 지금도 인권위는 조용하기만 하다. 그래서 인권위는 지금 악플조차 별로 없는 무플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관료들에겐 무플이 훨씬 좋을 게다. 월급이야 꼬박꼬박 나오는데, 굳이 논란에 휩싸여 일감을 늘릴 일도 감정을 상할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오늘도 인권위는 조용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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