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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은행 5년, 배움과 성장의 시간 (경향신문, 2020.03.1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3-16 11:12
조회
493

2015년 인권연대가 설립한 장발장은행은 경미한 잘못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담보·무이자 대출을 해주어 벌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은행이다. 대출금은 모두 개인 및 (종교)단체의 후원금으로 충당된다. 벌금형을 받은 미성년자, 소년소녀가장, 수급권자, 차상위계층 등에게 6개월 거치, 1년 균등상환 방식으로 최대 300만원을 빌려준다. 지난 9일까지 5년 동안 모두 8098명에게서 11억391만7525원을 후원받아 790명에게 14억1270만7000원을 대출했다.


장발장은행이 설립된 이유는 총액벌금제도의 문제점 때문이다. 총액벌금제란 동일한 범죄행위에 대해 동일한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얼핏 공정할 것 같은 이 제도는 형벌효과의 불평등을 낳는다. 쉽게 말해 경미한 범죄에 대해 선고되는 100만원의 벌금이 부자에게는 가벼운 반면 가난한 사람에게는 매우 무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이 벌금을 납부하지 못해 노역장(교도소)에 수감되는 상황이 닥치면 고통은 몇 배로 커진다.


현재도 형편에 따라 납부를 연기하거나 매월 분납하는 제도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법 현실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대하지 않다. 검찰의 무관심으로 실제 허용되는 대상은 극소수다. 이 때문에 벌금형을 선고받고 제때 납부하지 못해 교도소에 수감되는 사람들이 매해 평균 4만명을 오르내린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나 어린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젊은 부모가 벌금미납으로 교도소에 수감되는 경우 겪는 고통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경제력이 있는 사람은 벌금을 납부해 수감을 면하지만 정작 절박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은 교도소에 들어가 몸으로 벌금을 때우고 있다.


이에 국회가 응답해 형법 제정 64년 만에 벌금형의 집행유예제도가 도입되었다.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선고 시 법원이 피고인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하여 벌금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다시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벌금형의 집행유예 선고 건수가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도가 여전히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총액벌금제가 갖는 형벌불평등의 효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일수벌금제를 도입해야 한다. 일수벌금제란 범죄의 중한 정도에 따라 벌금 일수를 정하고 행위자의 경제적 사정에 따라 하루 벌금액을 정한 뒤 이를 곱하여 벌금액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가벼운 폭행사건이나 교통사고에 대해 벌금 일수가 30일로 정해지고,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 하루 벌금액이 2만원으로 정해지면 총 60만원의 벌금이 부과되는 방식이다. 실례로 2002년 핀란드에서는 차량 과속으로 단속된 대기업 부회장에게 경제력을 고려해 약 1억3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이 제도의 장점은 형벌의 고통이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동등하게 부과되도록 하는 데 있다. 경제력을 고려한 벌금액의 산정은 교도소에 유치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수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필자는 운 좋게도 지난 5년간 장발장은행의 운영에 관여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구체적인 직함은 대출심사위원이다. 장발장은행과 함께한 지난 5년이 나에게는 소중한 성찰과 성장의 시간이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는 벗어나기 힘든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책을 통해서는 알지 못했던 숨겨진 진실, 즉 우리의 법제도가 본래의 취지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 여전히 계급사법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것,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형사법제도를 연구한 지난 30여년보다 장발장은행에서의 5년이 더 많은 깨달음과 배움을 안겨주었다. 필자는 앞으로도 계속 대출창구를 지킬 것이다. 장발장은행의 설립 목표처럼 ‘은행문을 닫는 그날’이 올 때까지.


서보학 |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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