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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익의 인권수첩]혐오범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경향신문,2018.10.05)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0-05 16:35
조회
92
[경향신문]

 

축구해설자 이영표는 아내가 분만할 때 ‘주님이 주신 고통’을 느끼라며 무통주사를 거부했단다. 똑똑해 보이는 사람이 왜 유아적 신앙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르겠다. 성서를 잘못 읽은 탓이고, 전형적인 신앙의 왜곡이다. 그래도 이영표는 아내에게 출산의 고통을 강요하지는 않았단다. 폭력이나 위협도 없었고, 다만 권유했을 뿐이고 아내도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단다. 부부 사이의 일이니 어쩌면 남이 뭐라 할 영역이 아닐 수도 있다. 아내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진짜 심각한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차별을 조장하고 혐오를 선동하는 사람들이다. 극단적 혐오세력의 뿌리가 보수 개신교에 닿아 있다는 최근 보도들은 충격적이다.


‘에스더 기도운동’은 그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공허한 구호에 멈추지 않았다. 북한, 이슬람, 동성애라는 구체적인 적을 상정해놓고, 끊임없는 공격을 감행했다. 차별과 혐오를 일삼았고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공장 역할을 했다. 민주개혁세력에 대한 공격도 빠뜨리지 않았다. 2012년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에 대한 가짜뉴스들을 만들며 박근혜 당선, 문재인 낙선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였다. 정권 창출의 과실을 챙기는 데도 열심이었다. 박근혜가 당선되자 국가정보원에 우파 활동가를 양성하겠다며 43억원의 예산지원을 요구했다. 이들은 인터넷 기사에 댓글 다는 연습을 시키는 ‘미디어 선교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들에게서 예수 정신을 찾아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예수가 제시하는 황금률, 곧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은 “너 자신이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라”는 거다. 누구도 혐오 대상이 되길 바라지 않고, 가짜뉴스에 시달리고 싶은 사람도 없다. 기독교의 기틀을 만든 바오로는 코린트 공동체에 보낸 편지에서 ‘가장 좋은 길’을 제시하겠다며, 그리스도인의 첫째 덕목으로 사랑을 꼽고 있다. 신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더라도, 온갖 신비를 꿰뚫어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이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한다. ‘에스더 기도운동’ 같은 극단적 세력들은 성서 구절 한 글자도 귀히 모신다지만, 이런 황금률에 대해서는 철저한 유체이탈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끼리 예배 보고, 자기들끼리 축복과 은혜를 나누던 이들이 갑자기 인터넷 전사가 되고 거리 집회에 쏟아져 나오는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서울광장에서 개신교도들이 태극기,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기까지 흔들며 통성기도를 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 까닭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바로 불안감이다. 한국은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의 종단들이 종교 활동 인구를 삼분하고 있는데, 어느 종단 할 것 없이 위기를 맞고 있다. 기세 좋은 교세 확장은 옛날 일이 되었다. 종교 인구는 전반적으로 감소했고, 특히 40대 이하의 종교 인구는 급감했다. 한마디로 장사가 안되는 상황이다. 장사는 안되지만 목회자들은 여전히 넘쳐난다. 악명 높은 고문기술자 이근안도 교도소에서 통신 과정만으로 목사가 되었듯, 누구나 약간의 돈만 내면 목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곳도 꽤 많다. 최소한 먹고살 기반은 있어야 하는데, 종교 인구가 줄고, 목사는 늘면서 이게 만만치 않은 일이 되었다. 이럴 때 교회가 살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면 된다. 누가 봐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데, 그 까닭을 찾아보니 그가 예수 믿는 사람이어서 그랬다면 선교는 저절로 된다. 물론 삶을 온전히 걸어야 하는 일이니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선교활동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자기 영역이라도 확고하게 지키고 싶을 게다. 이럴 때 흔히 내세우는 게 ‘적’ 개념이다. 가장 오래된 전략은 반공주의다. 북한괴뢰도당이 언제 남침할지 모른다며 시민들을 윽박지르고 인권침해를 일삼았던 박정희의 모델이다. 무슬림이 들어오면 한국이 모두 이슬람화되고, 여성들은 남성들의 성폭력에 견딜 수 없게 될 거란 가공의 공포를 심어주고 확산시키는 거다. 이런 전술은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적개심도 마찬가지다. 지금 동성애를 ‘치료’해주지 않으면 모두들 에이즈에 걸려 죽어버릴 것이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는 까닭이 여기 있다. 그런데 반공주의는 물론, 일종의 블루오션으로 선택한 반이슬람, 반동성애도 극단적 개신교도들을 더 고립시킬 뿐, 선교는 물론 자기 세력을 지키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면 태극기 들고 반대 시위야 나가겠지만, 남북화해협력시대가 열리면서 북에 대한 극단적 증오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을 거다. 반이슬람도 그렇다. 자기 신자들도 무슬림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해외여행도 다닐 테니, 실제로 무슬림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배려도 잘하는지를 보게 될 터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악담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 또한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알 수 있으니, 곧 멱살 잡은 손이 부끄러워질 게다.


문제는 비록 일부라지만, 이 극단적 광신도들은 대화나 설득,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거다. 헌법의 원칙을 말하는 것도 무망하다. 게다가 이들은 이미 사람을 혐오하고 사람을 파괴하는 범죄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형사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이제는 국가형벌권을 꺼내 들어야 한다. 가짜뉴스를 만들고 조직적으로 유포하는 사람들, 정치적인 결탁을 통해 제 뱃속만 채우는 사람들을 그냥 둘 수는 없다. 누군가를 해치라는 선동, 의도가 뻔한 거짓말을 더 이상 묵과할 수는 없다. 종교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지만, 신성불가침의 성역은 아니다. 그 자유라는 것도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보장할 수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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