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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대결 넘어선 ‘시민 대 시민’ (경향신문, 2019.10.04)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10-07 13:15
조회
25

‘검찰개혁’ ‘조국 사퇴’ 전례 드문 두 갈래 거리 정치


한국 사회가 조국 법무부 장관을 가운데 두고 대규모 집회로 부딪치고 있다. ‘서초동 촛불집회’와 ‘광화문 집회’가 맞붙은 것이다.


최근 결집과 역결집을 반복해온 두 현장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온 역대 ‘대규모 집회’ 역사와 다른 흐름을 갖고 있다. 정치 실종이 빚어낸 거리의 정치라는 점만 유사할 뿐, 새로운 흐름이 전개되는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념·진영 대결도 뛰어넘었다. 같은 세력이라 해도 한 깃발 아래 한 구호로 뭉쳐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 2019년 10월 ‘조국 대전’으로 촉발된 거대한 두 힘의 충돌은 무엇일까.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시민들이 양극단으로 갈라져 대규모로 대결하는 집회 모습은 60년대 이후 보지 못한 사례”라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시민’과 ‘시민’의 대치전이라 규정할 수 있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대표되는 양측의 충돌은 우선 진영 대결 구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주말 서초동 촛불집회는 검찰개혁이 주요 화두였다. 큰 틀에선 범진보 진영이 뭉친 것으로 보인지만 참석자 규모로 볼 때 단일한 의견으로 결집한 집회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검찰개혁을 촉구하면서도 ‘조 장관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조 장관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다. 범보수 진영이 결집한 것으로 알려진 지난 3일 광화문 집회는 조 장관 사퇴가 일치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다양한 구호가 뒤섞였다. 조 장관 사퇴에 동의하면서도 ‘문재인 정권 퇴진까지 바라지 않는’ 구호와, ‘문재인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가 엉켜 있었다. 양측의 대규모 집회를 단순히 진영 간, 세력 간 대결로 볼 수 없는 측면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다양한 정치 의제가 광장으로 쏟아지면서 대규모 결집이 이뤄졌다는 점도 특징이다.


◆진영 대결 내모는 정치권…대화는 없고 ‘동원된 힘’만 과시


‘검찰개혁’ ‘조국 사퇴’ 전례 드문 두 갈래 거리 정치


1987년 6월 민주항쟁,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당시 광화문 촛불행렬은 각각 ‘호헌철폐 독재타도’ ‘헌정유린 정권 탄핵’이라는 대의명분이 관통한 집회였다. “사회가 유지 발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마지막) 원칙이 무너졌을 때 최대치로 연합하는 힘”이 작동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번엔 서초동 집회만 해도 검찰개혁, 정의, 불평등 해소 등 다양한 이슈가 나왔다. 시대착오적 색깔론을 덧댄 주장도 있었지만 광화문에서도 공정, 민생 등의 외침이 들렸다. 심지어 검찰개혁에 호응하면서도 조 장관 퇴진을 촉구하는 시민들은 서초동과 광화문 모두 찾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광장처럼 보이지만 사실 광장이 아니다. 진영을 초월한 합의점도 없었다”고 말했다. 탄핵이나 호헌 철폐처럼 압도적 여론 지지를 받아 시민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집결한 이슈가 아니라 “여론을 50 대 50으로 가르는 이슈로 대규모 집회가 대결하는 첫 사례”(신진욱 교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이를 ‘촛불의 분화’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시민들 ‘광화문 대 서초동’ 갈라졌지만 진영구도로만 설명 안돼


여야가 되레 편 가르기…정치가 못 푼 숙제, 시민들 목소리 분출


문제는 정치권이 이 같은 ‘강 대 강’ 대치를 동원하고 가열시키면서 스스로를 ‘정치 실종’의 덫에 가두고 있다는 점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분열의 정치, 편 가르기 정치, 선동의 정치가 위험선에 다다랐다”며 “국회가 갈등과 대립을 녹일 수 있는 용광로가 돼도 모자랄 판인데 이를 부추기는 행태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고 한민수 국회 대변인이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광화문 집회에 당력을 총동원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지난 주말 서초동 촛불집회에 국회의원 10여명이 개별 참석했고, 5일 2차 서초동 촛불집회엔 비공식적으로 지지층 참여를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대 정당은 집회 규모를 두고 팽팽한 숫자 싸움을 벌이며 세 대결에 몰두했다. ‘조국 대전’이 남긴 과제를 국회에서 해결하기는커녕 시민들의 움직임에 올라타거나 심지어 동원하려는 태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내년 총선을 고려하면 시민들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원·조장에 치우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검찰개혁은 진영 색깔이 강한 의제가 아님에도 이를 진영 의제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조국 대전’으로 세대 교체론과 사회 불평등론이 대두됐지만 순식간에 검찰개혁 화두가 잠식했다. 신 교수는 “여야는 지금의 대결을 냉각시키고 다시 국가적 의제로 돌아와 정당한 ‘정치 경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간 대규모 집회를 주도해 온 시민사회단체 세력들은 고심에 빠진 모습이다. 이들은 역대 대규모 집회마다 시민 행렬의 맨 앞에서 깃발을 들고 중심에 섰지만 이번엔 보이지 않는다. 되레 일부 진보적 시민단체에선 조 장관 의혹을 비판한 간부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경우도 있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집회 주최 측이 (시민)단체들의 참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 차원의 집회 참석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도 조용하다. 그간 범진보 진영과 연대해 온 민주노총은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에 찬성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쪽 집회에도 공식적으로는 참여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최근의 집회 세 대결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촛불집회의 개혁 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고민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양쪽이 몇 만이 모이든 집회를 하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더라도 검찰개혁이나 사회개혁의 방향성을 두고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동원된 힘만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촛불 이후 핵심 화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노동권 문제나 재벌 문제였다고 생각하는데, 개혁 과제들은 실종되고 개혁을 위한 시기마저 놓치고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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