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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익의 인권수첩]살아남은 사람들의 몫 (경향신문, 2018.12.2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1-02 17:54
조회
684

세밑에 이목이 쏠린 곳은 국회였다. 유치원 3법은 어찌되는지, 김용균씨의 참담한 죽음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있을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호소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기준을 확립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여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하고 증진하자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세계 최악의 산업재해 국가가 거듭날 계기를 만들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만약 이 법이 개정되어 산업재해 사망이 줄어든다면, 그건 온전히 김용균과 어머니 덕분이다.


그동안 산업재해를 줄이려는 노력은 그저 무의미한 구호에만 그치곤 했다. 노동자가 알아서 조심하라는 투였다. 안전모를 꼭 쓰고 각종 안전장비도 잘 챙겨서 산업재해를 피해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을 하청·재하청 업체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만 돌리는 위험의 외주화가 만연한 상황에서 각자 알아서 주의만 기울인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산업안전을 위해 주의를 당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구조를 바로잡지 않고 주의만 당부하는 건 산업재해의 원인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노동자에게 전가하고픈 자본의 고약한 심보가 반영된 것이다.


교과서는 자아실현 운운하지만, 누구에게나 노동은 먹고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누구도 일에 목숨을 걸지는 않는다. 하나뿐인 목숨을 걸 정도로 무모한 사람도 없다. 노동자가 주의를 기울이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목숨 부지하기 어려운 고약한 산업현장의 구조다.


12월10일 밤. 김용균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참변을 당했다. 그날은 마침 세계인권선언 제70주년 기념일이기도 했다. 인권의 생일날, 인권은 저 깊숙한 탄가루 속에 처박혔다.


태안화력발전소는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공기업이다. 여기에도 낙하산이 잔뜩 내려앉았다. 상임감사와 비상임이사는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행정관이 맡고 있다. 비상임이사는 한 달에 한 번 회의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연간 3000만원을 받는다. 김용균이 기본급 165만원에다 연장, 휴일, 야간 수당을 다 합해서 받은 돈은 월 211만원이었다.


김용균의 죽음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고맙게도 경향, 서울, 한겨레가 1면에 보도했다. 그렇게라도 젊은 넋을 달래고 싶었던 게다. 조선, 동아가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것과 크게 달랐다. 역시 신문이라고 다 같은 신문은 아니다.


그리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가족들이 싸움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싸움의 선두엔 어머니가 있었다. 김용균씨의 어머니는 자기 자식은 그렇게 보냈지만, 다른 자식들의 목숨은 지켜야 한다며 싸움에 나섰다. 어머니는 빈소를 지키면서도 집회나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도 했고, 언론에 출연하기도 했다. 국회를 찾아 농성 아닌 농성도 했다. 어머니의 피눈물 덕에 세상은 아주 조금 움직이려 한다.


돌이켜보면 매번 이런 식이다. 어디선가 문제가 터진다. 문제가 터진다고 매번 여론의 주목을 받는 건 아니다. 심지어 누군가 죽었고 어머니가 통곡한다고 관심을 기울이는 세상도 아니다. 젊은이의 죽음, 어머니의 절규, 그리고 언론보도 등 몇 가지 극적요소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면, 참혹한 죽음마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 채 묻히고 만다.


세월호의 참극이 마라도 해상에서 침몰한 선박의 전원 구조로 이어진 건 고마운 일이지만, 매번 이런 극단에만 기댈 수는 없는 일이다. 1인당 소득 3만달러와 세계 10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나라가 이런저런 변수에 기대어 공동체의 진로를 가늠할 수는 없다.


방법이 없을까. 당연히 있다. 가장 확실한 대안은 노동조합에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아주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여전히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겨우 10% 남짓, 복지국가들의 90%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노동조합이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 산업재해나 노동조건에 있어 노동조합만큼 확실한 안전장치는 없다. 노동조합이 활성화되고 노동조합이 힘을 갖는다면, 그만큼 산업재해는 줄어든다. 노동자 입장에서 노동조합은 가성비 좋은 안전장치가 된다. 조합비를 내고 노조의 이런저런 교육이나 행사에도 참여해야 하지만, 그런 약간의 비용과 수고의 결과는 엄청나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느냐, 아니 한국적 현실에서는 사느냐 죽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도 협동조합이나 협회 등을 통해 자기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혼자서만 잘산다는 것은 사회구조가 엄연한 사회에서는 허망한 일일 뿐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주거비, 교육비, 통신비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구조 때문이다. 이 구조를 깨뜨리고 살 만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조직된 시민의 힘밖에는 없다. 깨어 있는 시민이, 조직된 시민이 세상을 바꾼다. 아니 세상을 바꿀 유일한 근거는 깨어 있는 시민, 조직된 시민이다.


시민사회단체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더 많은 시민들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활동가들의 처우는 개선되어야 한다. 문제도 있고, 사실 답도 다 나와 있다. 문제는 그 문제를 지혜롭게 푸느냐 아니냐에 있다. 더 이상 극단적인 사건사고에 기대고, 어쩌다 주어진 비상한 상황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세상을 밝게 만드는 것이 누군가의 참혹한 죽음이어선 더더욱 곤란하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몫이 있다면,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일 게다. 이건 우리의 삶을 지탱해줄 튼튼한 진지를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게 기본이고, 여기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곧 새해다. 모두들 뭔가 다른 새해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변화는 대통령의 위대한 결단이나, 정치인들의 훌륭한 리더십 같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참여하는 시민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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