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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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책’이 쉽게 출간되지 못하고, 출간 된다 해도 독자들을 만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인권 책’이 단 한권이라도 더 출간되고, 단 한명의 독자라도 더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독자들이 보다 자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책’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나눌 만한 책을 소개해주실 각계의 연구자, 선생님, 언론인을 모셨습니다.
‘인권-책 위원회’에는 강대중(서울대 교수), 김상미(너머북스 대표), 김종진(삼인출판사 편집장), 김진규(초등교사), 방효신(초등교사), 서유석(호원대 교수), 손하담(중등교사), 안혜초(중등교사), 은종복(서점 ‘풀무질’), 이광조(CBS 피디), 이제이(방송작가), 장의훈(중등교사), 정상용(초등교사), 주윤아(중등교사), 최보길(중등교사), 홍성수(숙명여대 교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카스 R. 선스타인, 박지우/ 송호창 옮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3 14:56
조회
1098
카스 R. 선스타인, 박지우/ 송호창 옮김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2009, 후마니타스)
카스 R. 선스타인, 이기동 옮김 <루머>(2009, 프리뷰)
카스 R. 선스타인, 이정인 옮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2011, 프리뷰)
지난 12월 정봉주 전 의원이 징역 1년형을 받고 수감되었다. 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죄가 죄목이었다. 판결이유에 대한 근거 없는 추론들을 배제하고 나면, 이 문제는 결국 ‘표현의 자유’의 문제이다.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는 허위사실공표를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과 선거에서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한 가운데, 법원은 전자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철학적으로 옹호하는 고전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이론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근래에 출판된 선스타인의 저작들이 눈길을 끈다. 그 중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그리고 “루머”가 바로 표현의 자유의 한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행태경제학의 관점으로 법을 분석하는 독특한 방법론을 선보인 법학자로서,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특히 그는 ‘자유주의적 후견주의’(libertarian paternalism)를 정치철학적 배경에 두고,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로서 국가(법)규제모델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먼저, 선스타인은 여론형성과정에서의 ‘사회적 폭포효과’와 ‘집단극단화 현상’을 경계한다. 사회적 폭포 효과는 자신의 지인들이 어떤 루머를 믿으면 자기도 그 루머를 믿게 되는 경향을 말하고, 집단극단화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더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가장 공격적인 해법은 바로 ‘검열’이다. 국가가 나서서 바람직하지 않은 발언들을 솎아내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취해온 방식이 이에 가깝다. 국가에 위협이 되는 풍자를 한 자(G20 포스터 사건, 박정근 사건 등)나,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한 자(PD수첩 사건, 미네르바 사건 등)를 처벌하고, 심의를 통해 불건전한 정보를 차단(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등)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선스타인은 검열에 찬성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를 규제한다면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조차도 주저하게 만드는 ‘위축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안은 ‘사상의 자유 시장’에 내버려두는 것이다. 사람들이 균형 잡힌 정보를 접하도록 하고,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스스로 수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는 경쟁력 없는 정보가 자연스럽게 퇴출되기 때문에 굳이 국가가 나서서 규제하거나 검열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이러한 방법이야말로 쏠림현상이나 극단주의를 막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우리도 종종 ‘사상의 자유 시장’의 힘을 목도한다. 인터넷에서는 종종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지만,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네티즌들의 검증을 통해 자연스럽게 퇴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른바 인터넷의 ‘자기교정능력’이다. 지난 12월 헌법재판소는 트위터 등을 규제하는 선거법이 한정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인터넷은 개방성 등을 기본으로 하는 사상의 자유 시장에 가장 근접한 매체”, “매체 자체에서 잘못된 정보에 대한 반론과 토론, 교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인터넷 자유시장의 자기교정능력은 이제 ‘국가적 공인’을 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사상의 자유 시장은 ‘절대선’인가? 선스타인은 사상의 자유시장론이 초래하는 위험 또한 경계한다.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루머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기업이나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경우를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루머를 통해 국가에 대한 신뢰가 근거 없이 훼손되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봉주 전 의원의 무분별한 허위사실공표가 공정선거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한 판결은 정당한 것인가? 선스타인의 대안은 진실을 말하려는 자를 위축시키지는 않으면서도,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시키는 자는 어느 정도 위축시키는 적절한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무책임하게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위축’시킬 필요도 있다는 주장이다.
다시 정봉주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 선거법에서, 선스타인이 얘기하는 ‘일정한 수준의 위축효과’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허위사실공표죄를 폐지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그럴 경우 악의로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자를 ‘위축’시킬 효과적 방법 또한 잃게 된다. 그렇다고 (정봉주 사건처럼) 의혹제기 수준의 발언까지 처벌한다면 과도한 위축효과가 우려된다. 그렇다면 허위사실공표죄는 유지하되, 그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 해법일 수 있다. “공표한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었거나 공익을 위한 것이고 공적 여론 형성에 필요한 것일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법조문에 추가하여 허위사실공표죄의 적용을 제한하는 것이다. 일명 ‘정봉주법안’이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고,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라는 이름으로 모인 인권활동가와 연구자들도 그 취지에 대체로 동감한다.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자에 대한 처벌 여지를 남겨두되, 그 남용을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일정한 수준의 위축효과’만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올해는 중요한 선거가 두 번이나 실시되는 해이다. 선거에서 어느 정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이며, 어떤 수준의 규제를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대법원은 정봉주 유죄판결을 통해 ‘규제’ 쪽에 한 발을 걸쳤고, 헌법재판소는 공직선거법 한정위헌 결정을 통해 ‘자유’ 쪽에 힘을 실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도 하루 빨리 이 논의에 뛰어들어야 한다. 새로운 규칙에 입각하여 선거를 치르려면 시간이 많지 않다. 아무리 바빠도 선스타인의 이 세 권의 책부터 후딱 읽고 머리를 맞대보면 어떨까? 다행스럽게도 세 권 모두 술술 읽히는 책들이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생생한 사례들을 쫓다 보면 지루할 틈도 없다. 저자의 수미일관한 논리가 설득력 있는 사유의 틀을 제공한다. 하루가 급한 상황에서, 든든한 조력자를 만난 느낌이다.
카스 R. 선스타인, 이기동 옮김 <루머>(2009, 프리뷰)
카스 R. 선스타인, 이정인 옮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2011, 프리뷰)
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지난 12월 정봉주 전 의원이 징역 1년형을 받고 수감되었다. 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죄가 죄목이었다. 판결이유에 대한 근거 없는 추론들을 배제하고 나면, 이 문제는 결국 ‘표현의 자유’의 문제이다.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는 허위사실공표를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과 선거에서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한 가운데, 법원은 전자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철학적으로 옹호하는 고전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이론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근래에 출판된 선스타인의 저작들이 눈길을 끈다. 그 중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그리고 “루머”가 바로 표현의 자유의 한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행태경제학의 관점으로 법을 분석하는 독특한 방법론을 선보인 법학자로서,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특히 그는 ‘자유주의적 후견주의’(libertarian paternalism)를 정치철학적 배경에 두고,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로서 국가(법)규제모델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먼저, 선스타인은 여론형성과정에서의 ‘사회적 폭포효과’와 ‘집단극단화 현상’을 경계한다. 사회적 폭포 효과는 자신의 지인들이 어떤 루머를 믿으면 자기도 그 루머를 믿게 되는 경향을 말하고, 집단극단화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더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가장 공격적인 해법은 바로 ‘검열’이다. 국가가 나서서 바람직하지 않은 발언들을 솎아내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취해온 방식이 이에 가깝다. 국가에 위협이 되는 풍자를 한 자(G20 포스터 사건, 박정근 사건 등)나,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한 자(PD수첩 사건, 미네르바 사건 등)를 처벌하고, 심의를 통해 불건전한 정보를 차단(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등)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선스타인은 검열에 찬성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를 규제한다면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조차도 주저하게 만드는 ‘위축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안은 ‘사상의 자유 시장’에 내버려두는 것이다. 사람들이 균형 잡힌 정보를 접하도록 하고,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스스로 수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는 경쟁력 없는 정보가 자연스럽게 퇴출되기 때문에 굳이 국가가 나서서 규제하거나 검열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이러한 방법이야말로 쏠림현상이나 극단주의를 막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우리도 종종 ‘사상의 자유 시장’의 힘을 목도한다. 인터넷에서는 종종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지만,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네티즌들의 검증을 통해 자연스럽게 퇴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른바 인터넷의 ‘자기교정능력’이다. 지난 12월 헌법재판소는 트위터 등을 규제하는 선거법이 한정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인터넷은 개방성 등을 기본으로 하는 사상의 자유 시장에 가장 근접한 매체”, “매체 자체에서 잘못된 정보에 대한 반론과 토론, 교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인터넷 자유시장의 자기교정능력은 이제 ‘국가적 공인’을 받게 된 것이다.
사진 출처 - 예스24
그렇다면 사상의 자유 시장은 ‘절대선’인가? 선스타인은 사상의 자유시장론이 초래하는 위험 또한 경계한다.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루머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기업이나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경우를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루머를 통해 국가에 대한 신뢰가 근거 없이 훼손되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봉주 전 의원의 무분별한 허위사실공표가 공정선거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한 판결은 정당한 것인가? 선스타인의 대안은 진실을 말하려는 자를 위축시키지는 않으면서도,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시키는 자는 어느 정도 위축시키는 적절한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무책임하게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위축’시킬 필요도 있다는 주장이다.
다시 정봉주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 선거법에서, 선스타인이 얘기하는 ‘일정한 수준의 위축효과’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허위사실공표죄를 폐지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그럴 경우 악의로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자를 ‘위축’시킬 효과적 방법 또한 잃게 된다. 그렇다고 (정봉주 사건처럼) 의혹제기 수준의 발언까지 처벌한다면 과도한 위축효과가 우려된다. 그렇다면 허위사실공표죄는 유지하되, 그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 해법일 수 있다. “공표한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었거나 공익을 위한 것이고 공적 여론 형성에 필요한 것일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법조문에 추가하여 허위사실공표죄의 적용을 제한하는 것이다. 일명 ‘정봉주법안’이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고,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라는 이름으로 모인 인권활동가와 연구자들도 그 취지에 대체로 동감한다.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자에 대한 처벌 여지를 남겨두되, 그 남용을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일정한 수준의 위축효과’만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올해는 중요한 선거가 두 번이나 실시되는 해이다. 선거에서 어느 정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이며, 어떤 수준의 규제를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대법원은 정봉주 유죄판결을 통해 ‘규제’ 쪽에 한 발을 걸쳤고, 헌법재판소는 공직선거법 한정위헌 결정을 통해 ‘자유’ 쪽에 힘을 실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도 하루 빨리 이 논의에 뛰어들어야 한다. 새로운 규칙에 입각하여 선거를 치르려면 시간이 많지 않다. 아무리 바빠도 선스타인의 이 세 권의 책부터 후딱 읽고 머리를 맞대보면 어떨까? 다행스럽게도 세 권 모두 술술 읽히는 책들이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생생한 사례들을 쫓다 보면 지루할 틈도 없다. 저자의 수미일관한 논리가 설득력 있는 사유의 틀을 제공한다. 하루가 급한 상황에서, 든든한 조력자를 만난 느낌이다.
사진 출처 - 예스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