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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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책’이 쉽게 출간되지 못하고, 출간 된다 해도 독자들을 만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인권 책’이 단 한권이라도 더 출간되고, 단 한명의 독자라도 더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독자들이 보다 자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책’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나눌 만한 책을 소개해주실 각계의 연구자, 선생님, 언론인을 모셨습니다.
‘인권-책 위원회’에는 강대중(서울대 교수), 김상미(너머북스 대표), 김종진(삼인출판사 편집장), 김진규(초등교사), 방효신(초등교사), 서유석(호원대 교수), 손하담(중등교사), 안혜초(중등교사), 은종복(서점 ‘풀무질’), 이광조(CBS 피디), 이제이(방송작가), 장의훈(중등교사), 정상용(초등교사), 주윤아(중등교사), 최보길(중등교사), 홍성수(숙명여대 교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모임 - 방효신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3 15:23
조회
1429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모임, 사계절
오미숙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일 년 넘게 연락이 없었지요. 스승의 날 즈음 연락을 드리려다 못 했어요. 전화를 하려니 가슴이 두방망이질하는 거예요. 잘 살고 있다고 말씀드리기도 부끄럽고, 안 그렇다고 하려니 멋쩍었어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보름이 넘었네요.
같은 학교에서 근무할 때 수업 끝나고 선생님 교실에 찾아가면, 티백 여러 개를 꺼내서 고르라고 하시던 거 생각나요. 차 한 잔 하면서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눈물이 절로 나곤 했어요. 그 눈물을 흘리기 싫어서 몇 달이고 선생님 근처에 안 가기도 했는데, 선생님은 아무 말 없으셨지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거, 사람을 말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도 선생님에게 배웠어요. 제가 20대 중반이 넘어서까지 배운 지식들이 사는 데 별 소용없다는 것을 느낀 것도 선생님 덕분이에요. 이런 말 들으면 낯간지럽다 하실 것 같아요. 편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마치 선생님이 옆에 계신 것처럼 느껴져요.
저처럼 선생님 교실에 차 마시러 가던 미순 씨는 잘 지낼까요? 제가 그 학교에 9월 발령 나서 5, 6학년 과학교과를 가르치게 되자, 미순 씨랑 같은 방을 쓰게 되었잖아요. 좁은 방에 혼자 근무하다가, 초임 교사랑 같이 지내게 되었다는 걸 저의 새 책상이 들어갈 때 알았다더군요. 누구 하나 미리 얘기해주지 않았나 봐요. 과학실험보조사 미순 씨에게 언니라고 불렀다가 미순 씨 얼굴이 빨개지는 걸 봤어요. 남들은 ‘미순이’라고 부르던데, 저는 뭐라고 하면 좋을지 망설이다가 결국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은 당신이라며, 손사래를 치던 미순 씨였는데. 선생님은 저에게는 효신 씨라고, 미순 씨에게는 미순 씨라고 부르셨잖아요. 그 어감이 참 좋았어요.
비정규직으로 10년 이상 일하는 사람이 있고, 그들이 '보조'라고 불린다는 것을 학교에 근무하면서 처음 알았어요. 제가 참 무디죠? 임용 시험 합격하기 전에는 시간강사니까 서럽네, 딴 생각 말고 국가교육과정 달달 외워서 시험만 통과하면 평생 공무원이다, 조금만 견디자, 하는 심정으로 살았어요. 발령 난 뒤 절박했던 감정은 희미해지고, 첫 월급 명세서를 한참 들여다보던 제 모습이 떠올라요. 모니터를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미순 씨가 묻더라고요. "선생님, 방 선생님이니까 여쭤보는 건데... 이런 질문 처음 해보는 건데요, 월급이 얼마예요?" "180만 원이요. 엄청 많죠? 히히." "아, 더 많을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시니까." "그런가? 매년 1호봉씩 오른대요. 그럼 5만 원 더 받고, 수당도 더 붙는다던데!" 신나서 더 떠들려는데, 그 방에 불쑥 제 책상이 들어갈 때처럼 미순 씨가 눈을 내리깔고 웃길래 그만 했어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난처할 때 웃는다는 걸, 몇 초 뒤에서야 알아챘거든요. 이런, 미련 곰퉁이. 미순 씨가 매년 학교와 재계약해야 하는 신분이고, 몇 년을 근무하건 100만 원 남짓한 월급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지요. 학교에 근무하는 많은 사람들이 미순 씨를 갑자기 불러내서 이것저것 잔일을 시킬 때, 과학수업에 필요한 실험 준비와 정리가 본업인 미순 씨가 그런 요구들 때문에 종종걸음치며 바삐 움직일 때, 전화를 받을 때도 마치 앞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여가며 싫은 내색 없이 응대할 때, 저는 옆에서 무엇을 같이 하면 좋을지 몰라서 괜히 일어섰다 앉았다 했어요. 아, 어느 날은 "미순이~ 커피가 땡기네~"하는 전화 한 통에 미순 씨가 믹스 커피를 쟁반에 받쳐 들고 일어서 길래, 제가 대신 나선 적이 있어요. 그 전화 주인공인 어느 선생님께 찾아가니, "방 선생님이 왜 이 커피를 갖다 줘요? 아, 같이 지내지." 라며 나중에는 '전교조에 가입하면 안 된다'는 흰 소리도 들었어요. 미순 씨는 지금도 그 학교에서 일하고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셋이서 차 한 잔 마신 기억이 가물거려요. 처음에 한두 번 쯤 마주 앉았던 것도 같고….
선생님, 저 지금 학교에서 친목회장 맡고 있어요.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친목회예요. 작년까지는 공무원만 가입하고 회비가 월 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비정규직도 가입할 수 있어요. 영양사, 조리사, 급식조리원, 교무보조, 과학실험보조, 전산보조, 특수교육보조, 사서보조, 원어민보조, 학교보안관, 방과후코디맘, 에듀케어강사, 교무행정지원사 모두 가입하고 회비도 월 오천 원이에요. 근무형태가 많이 다른 학습부진강사, 화장실청소기사, 숙직기사에게는 가입 권유를 못했어요. 서로 경조사도 챙기고 일 년에 두어 번 회식도 하면, 좀 더 가까워지겠죠? 메이데이 하루 전날, '***님, 사람답게 사는 세상, 함께 만들겠습니다'라고 쪽지 써서, 이분들께 빨대 꽂은 커피도 드렸어요. 정규직, 비정규직, 이거 누가 만든 거죠? 사람이 만든 구분은 사람이 없앨 수도 있지 않나요?
선생님, 저 작년부터 인권에 대한 책 틈틈이 마련해서 아이들과 같이 보고 있어요. 이번에 교실에 가져 갈 책은 노동권에 대한 책이에요. 15년 전부터 스물스물 퍼지더니 이제는 둘 중 하나는 비정규직입니다. 남들 놀 때 공부한다고 정규직 되는 거 아니잖아요? 흥분하면 언성 높아지는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효신 씨,"라고 불러주시던 선생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언젠가 꼭 만나요. 편하게 웃어주실 꺼죠?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세요.
나는 정규직, 너는 비정규직
방효신/ 서울 교동초등학교 교사
오미숙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일 년 넘게 연락이 없었지요. 스승의 날 즈음 연락을 드리려다 못 했어요. 전화를 하려니 가슴이 두방망이질하는 거예요. 잘 살고 있다고 말씀드리기도 부끄럽고, 안 그렇다고 하려니 멋쩍었어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보름이 넘었네요.
같은 학교에서 근무할 때 수업 끝나고 선생님 교실에 찾아가면, 티백 여러 개를 꺼내서 고르라고 하시던 거 생각나요. 차 한 잔 하면서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눈물이 절로 나곤 했어요. 그 눈물을 흘리기 싫어서 몇 달이고 선생님 근처에 안 가기도 했는데, 선생님은 아무 말 없으셨지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거, 사람을 말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도 선생님에게 배웠어요. 제가 20대 중반이 넘어서까지 배운 지식들이 사는 데 별 소용없다는 것을 느낀 것도 선생님 덕분이에요. 이런 말 들으면 낯간지럽다 하실 것 같아요. 편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마치 선생님이 옆에 계신 것처럼 느껴져요.
저처럼 선생님 교실에 차 마시러 가던 미순 씨는 잘 지낼까요? 제가 그 학교에 9월 발령 나서 5, 6학년 과학교과를 가르치게 되자, 미순 씨랑 같은 방을 쓰게 되었잖아요. 좁은 방에 혼자 근무하다가, 초임 교사랑 같이 지내게 되었다는 걸 저의 새 책상이 들어갈 때 알았다더군요. 누구 하나 미리 얘기해주지 않았나 봐요. 과학실험보조사 미순 씨에게 언니라고 불렀다가 미순 씨 얼굴이 빨개지는 걸 봤어요. 남들은 ‘미순이’라고 부르던데, 저는 뭐라고 하면 좋을지 망설이다가 결국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은 당신이라며, 손사래를 치던 미순 씨였는데. 선생님은 저에게는 효신 씨라고, 미순 씨에게는 미순 씨라고 부르셨잖아요. 그 어감이 참 좋았어요.
사진 출처 - yes24
비정규직으로 10년 이상 일하는 사람이 있고, 그들이 '보조'라고 불린다는 것을 학교에 근무하면서 처음 알았어요. 제가 참 무디죠? 임용 시험 합격하기 전에는 시간강사니까 서럽네, 딴 생각 말고 국가교육과정 달달 외워서 시험만 통과하면 평생 공무원이다, 조금만 견디자, 하는 심정으로 살았어요. 발령 난 뒤 절박했던 감정은 희미해지고, 첫 월급 명세서를 한참 들여다보던 제 모습이 떠올라요. 모니터를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미순 씨가 묻더라고요. "선생님, 방 선생님이니까 여쭤보는 건데... 이런 질문 처음 해보는 건데요, 월급이 얼마예요?" "180만 원이요. 엄청 많죠? 히히." "아, 더 많을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시니까." "그런가? 매년 1호봉씩 오른대요. 그럼 5만 원 더 받고, 수당도 더 붙는다던데!" 신나서 더 떠들려는데, 그 방에 불쑥 제 책상이 들어갈 때처럼 미순 씨가 눈을 내리깔고 웃길래 그만 했어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난처할 때 웃는다는 걸, 몇 초 뒤에서야 알아챘거든요. 이런, 미련 곰퉁이. 미순 씨가 매년 학교와 재계약해야 하는 신분이고, 몇 년을 근무하건 100만 원 남짓한 월급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지요. 학교에 근무하는 많은 사람들이 미순 씨를 갑자기 불러내서 이것저것 잔일을 시킬 때, 과학수업에 필요한 실험 준비와 정리가 본업인 미순 씨가 그런 요구들 때문에 종종걸음치며 바삐 움직일 때, 전화를 받을 때도 마치 앞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여가며 싫은 내색 없이 응대할 때, 저는 옆에서 무엇을 같이 하면 좋을지 몰라서 괜히 일어섰다 앉았다 했어요. 아, 어느 날은 "미순이~ 커피가 땡기네~"하는 전화 한 통에 미순 씨가 믹스 커피를 쟁반에 받쳐 들고 일어서 길래, 제가 대신 나선 적이 있어요. 그 전화 주인공인 어느 선생님께 찾아가니, "방 선생님이 왜 이 커피를 갖다 줘요? 아, 같이 지내지." 라며 나중에는 '전교조에 가입하면 안 된다'는 흰 소리도 들었어요. 미순 씨는 지금도 그 학교에서 일하고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셋이서 차 한 잔 마신 기억이 가물거려요. 처음에 한두 번 쯤 마주 앉았던 것도 같고….
선생님, 저 지금 학교에서 친목회장 맡고 있어요.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친목회예요. 작년까지는 공무원만 가입하고 회비가 월 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비정규직도 가입할 수 있어요. 영양사, 조리사, 급식조리원, 교무보조, 과학실험보조, 전산보조, 특수교육보조, 사서보조, 원어민보조, 학교보안관, 방과후코디맘, 에듀케어강사, 교무행정지원사 모두 가입하고 회비도 월 오천 원이에요. 근무형태가 많이 다른 학습부진강사, 화장실청소기사, 숙직기사에게는 가입 권유를 못했어요. 서로 경조사도 챙기고 일 년에 두어 번 회식도 하면, 좀 더 가까워지겠죠? 메이데이 하루 전날, '***님, 사람답게 사는 세상, 함께 만들겠습니다'라고 쪽지 써서, 이분들께 빨대 꽂은 커피도 드렸어요. 정규직, 비정규직, 이거 누가 만든 거죠? 사람이 만든 구분은 사람이 없앨 수도 있지 않나요?
사람이 가게 진열대 위에 있는 물건처럼 사용 기한, 유통 기한, 가격 따위를 새긴 채 사갈 사람을 기다리는 꼴이 되어 버린 겁니다. 정말 그래도 될까요? -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 중에서
선생님, 저 작년부터 인권에 대한 책 틈틈이 마련해서 아이들과 같이 보고 있어요. 이번에 교실에 가져 갈 책은 노동권에 대한 책이에요. 15년 전부터 스물스물 퍼지더니 이제는 둘 중 하나는 비정규직입니다. 남들 놀 때 공부한다고 정규직 되는 거 아니잖아요? 흥분하면 언성 높아지는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효신 씨,"라고 불러주시던 선생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언젠가 꼭 만나요. 편하게 웃어주실 꺼죠?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세요.
2014년 6월 4일
선생님이 보고 싶은 방효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