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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일본과의 역사문제에만 뜨거운 한국 언론에게(석미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7-21 14:39
조회
690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2015년 7월, 일본 평화박물관 탐방을 다녀왔다. 피스 오사카, 교토 리츠메이칸대학교 국제평화박물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오카마사하루기념 평화자료관을 돌아보며 일본사회가 어떻게 역사를 취사선택하고 있는지 보았고, 또 그러한 역사인식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도 만났다.


 어느 날은 나가사키항에서 배를 타고 하시마섬에 들어갔다. 일명 ‘군함도’라 불리는 그곳은 한때 일본 최초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근대 도시였다. 폐허가 되어 무너져 내린 곳도 있지만, 수영장, 학교 등의 시설이 보였고, 고층 아파트에 사는 일본인들은 꽤 부유한 생활을 한 흔적도 남아 있었다. 여전히 회색 콘크리트 도시의 위용을 만날 수 있는 그곳에서 한쪽은 조선인이 반대쪽은 중국인이 탄광 노동자로 징용을 살았다. 그들이 사는 곳은 지하 공간이라 파도가 들이치는 곳이었다. 탄광에 들어갔다 밖으로 나오면 몸을 제대로 씻을 수도 없었다. 고작 세 개의 통에 순서대로 몸을 담가 검댕을 씻고 매일 갱도로 들어가야 했다.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던 곳, 그들이 ‘근대’라 일컫는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야만’이고 ‘지옥’이었다. 쓸쓸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TV를 켜니 일본 사회가 기쁨에 술렁이고 있었다. 그날은 7월 5일, 하시마섬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날이었다.


 최근 일본 정부가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 산업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시킬 때 강제노동의 역사를 함께 알리고,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도쿄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에 메이지 시대 산업화 성과 위주의 전시만 있고 징용 피해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는 것, 오히려 군함도의 탄광을 소개하면서 징용 피해 자체를 부정하는 증언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는 것이 논란의 발단이었다. 일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 권고를 받아들여 약속한 조치를 성실히 이행해 왔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 언론은 유네스코의 ‘유감’ ‘경고’ 입장을 연일 보도하고, 일본의 태도와 역사 왜곡에 대해 앞 다투어 강경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군함도
사진 출처 - 필자


 하시마섬에서 쓸쓸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돌아선 그때를 생각하면 일본 정부의 태도에 분노가 일어야 마땅하겠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 한국 언론에 대한 분노가 더 앞선다. 유독 일본과의 역사문제에 있어 ‘민족’과 ‘피해’라는 편협한 역사 인식 아래 묻지 마 보도를 일삼는 언론의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비단 ‘군함도’ 뿐만이 아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중심으로 강제동원 피해 문제, 독도 영유권 다툼 등 일본과 엮여 있는 모든 문제들은 대부분 그렇다.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못지않게 한국 사회에 ‘헤이트 재팬’을 조장하는 것은 언론의 책임이다. 단지 ‘갈등’을 조장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를 취사선택하지 않고 올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지난달, 한베평화재단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베트남전쟁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국내 평화기행을 진행했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 주둔지역과 피해 마을을 중심으로 한 ‘베트남 평화기행’과 달리 국내 평화기행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쟁의 기억을 만날 수 있는 곳을 탐방하고 우리 기억의 현주소를 찾아가 보고자 한 기획이었다. 우리가 찾아본 베트남전쟁의 흔적들, 용산 전쟁기념관, 현충원, 화천 월남파병용사만남의 장, 전국 방방곡곡 서 있는 월남참전기념탑은 6.25전쟁과 더불어 한국 사회 ‘안보’ ‘애국’ ‘이념’ ‘발전’이데올로기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회적 성찰과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전쟁 기억은 국가주의와 경제발전이라는 논리 속에 현재의 전쟁과 해외파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이 불러온 수많은 ‘피해’와 ‘희생’을 외면하는 사이 고통은 잊히고 ‘발전’과 ‘기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2018년,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 법정이 열렸다. 이 법정은 대한민국이 베트남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과 명예회복, 진실규명 노력을 할 것과 더불어 용산 전쟁기념관을 포함해 베트남전쟁 한국군 참전을 전시하는 모든 공공시설에 대한민국 군대의 불법행위를 함께 전시할 것을 주문하였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미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2019년 영국 런던에 라이따이한과 어머니를 상징하는 모자상이 세워졌다. 모자상과 같이 한국군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점점 커져가는데 한국 언론에는 관심 밖이다. 몇 군데 국내 언론의 단순 보도만이 있었을 뿐이다. 68년 일어난 퐁니·퐁녓 사건에 대한 한국 참전군인의 양심선언도 크게 관심 받지 못했다.



성미산학교 학생들과 함께 한 전쟁기념관 탐방
사진 출처 - 필자


 굳이 ‘피해’와 ‘가해’의 구도를 인용해본다면, 가해의 기억을 지우기보다 치열하게 접근한 사회는 성찰이라는 윤리성을 통해 보다 시민의식이 강해지고 다른 나라와 믿음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익히 보아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 인식은 어떠한가. 일본의 태도에 대한 분노와 함께 그들의 모습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유독 일본과의 역사문제에만 뜨거운 한국 언론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