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벌금형과 형집행장 발부, 그리고 마샬(이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6-08 17:55
조회
1313

이윤/ 경찰관


 1993년 개봉한 영화 ‘도망자’에서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주인공은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유죄판결을 받아 호송되던 중 차가 전복되는 바람에 도주하였다. 나는 이 영화에서 끝까지 탈주자를 검거하려 뒤쫓는 역할을 한 토미 리 존스가 경찰이 아니고 마샬(U. S. Marshals)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이 마샬은 탈주자가 진범인지 여부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검거라는 자신의 임무에만 충실할 뿐인 현대판 자베르 같은 사람이었다.


 미국의 마샬은 무려 1789년에 설립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법집행기관으로, 미국 법무부 소속이며 미 연방법원 집행부서로서 종사한다. 마샬의 임무는 탈주자 및 수배자 검거, 연방 죄수 호송, 범죄 취득 자산 관리, 연방 증인 보호 프로그램 수행 등이다(위키피디아 참조).


 한국도 마샬 같은 조직이 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호송 중이거나 수감 중인 사람이 도주할 경우 검거는 경찰이 해 왔다. 그런데 재판을 마친 사람에 대한 형집행은 원래 법무부와 검사의 업무다. 따라서 형집행 중 도주하여 집행이 완료되지 못했다면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실효성있는 집행이 되도록 하는 것도 법무부와 검사의 일이다.



사진 출처 - 구글


 물론 경찰이 이 일에 손을 대지 않을 수는 없다. 탈주범이 도주 중에 국민들에게 가할 위해를 방지해야 하고, 전국적 조직망을 활용하여 검거 지원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책임의 주된 주체는 경찰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탈주범이 발생했을 때 수사본부를 설치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검거 시까지 비상근무를 하는 것은 주로 경찰이었다. 그리고 도주 후 며칠이 지나도 잡지 못하면 ‘얼빠진’, ‘넋 나간’과 같은 모멸적인 수식어로 비난을 받는 것도 경찰이었고, 천신만고 끝에 검거하더라도 기자들이 도주 행적을 파헤치며 더 빨리 잡을 수 있었는데 놓쳤다면서 칭찬은 고사하고 수사력을 의심받는 것도 경찰이었다. 놓친 사람과 검거 책임자는 숨죽이고 앉아있고, 실컷 고생하고도 빨리 검거하지 못한다고 욕먹는 사람은 따로 있다면, 이건 불공정하고 억울해서 속 터질 일이다. 게다가 경찰은 공안직보다 봉급도 덜 받는데 말이다.


 1999년 어느 날 밤 시골 경찰서에서 당직을 하던 중이었는데, 형집행장 발부자가 검거되어 상황실에서 대기시켰다. 지방검찰청은 전주에 있었는데, 경찰관들이 전주까지 호송하여 데려다주거나, 검거자로 하여금 벌금을 납부하도록 한 후 석방해야 했다. 검찰 직원들은 자신들이 수배한 사람임에도 데리러 오지도 않았다. 아마 경찰관이 호송하여 데려다주어도 그 저녁에는 데리고 있을 데가 없어 받아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은 늦은 밤에 가족이 벌금을 납부하였고, 경찰서에서는 그 사실을 확인한 후에 귀가 조처하였다. 이 사례에서 형집행장은 벌금형 선고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벌금을 납부하도록 협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고, 경찰은 검사 대신 협박을 실행하는 악역을 맡았던 것이다.


 형집행 업무는 수사가 아니다. 그런데도 검사에게 수사지휘권이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형집행 사무는 피고인 구속업무 조항을 준용한다는 형사소송법 조문을 근거로 경찰에게 형집행을 위한 검거와 호송업무까지 지휘하여 시켰었다. 만일 위 사례의 사람이 벌금을 납부하지 않은 상태로 몰래 도주하였다면 그 비난과 책임은 또 오롯이 경찰에게 쏟아졌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검찰의 벌금형 선고자에 대한 형집행장 발부는 적법하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검찰징수사무규칙에 의하면 벌과금 징수절차는 ①징수금의 조정→②납부명령→③납부독촉→④강제집행→⑤노역장유치집행 순으로 진행된다. 노역장유치를 위한 형집행장 발부를 위해서는 소환불능/도망·도망 염려/소재불명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형집행장 발부는 강제집행 등 다른 수단을 모두 사용하였지만 벌금을 징수하지 못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검찰은 독촉, 소환, 강제집행 절차를 생략·무시하고 형집행장을 발부하는 규칙위반 관행을 계속하고 있다(내일신문 참조).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로 볼 수 있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벌과금징수절차를 위반하여 형집행장을 발부한 것이 헌법 제12조의 적법절차 원칙을 위반하여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면서 재발방지를 주문했다. 그러나 검찰은 10년 넘게 이를 무시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에서 벌금형 집행률은 노역장유치가 57%, 현금납부 14% 수준이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 중 반 이상이 실제로는 징역형과 같은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30% 정도는 제대로 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것 역시 공평의 문제다.


 누군가에겐 얼마 되지도 않는 벌금인데, 그것을 납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노역장에 가야 하는 현대판 장발장을 줄이기 위해서는 적법한 절차를 지키는 벌과금 징수업무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소위 재산비례 벌금제를 시행하게 되면 소득과 자산 규모에 따라 벌금이 수억, 수십억 원에 이르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형벌 효과를 위해서 벌금형은 제대로 집행되어야 한다. 세금도 집에 숨기고 내지 않는 요즘 누가 그 벌금을 찾아내고 징수할 것인가? 지금까지처럼 형집행장을 발부하여 경찰에 검거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형벌 실효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 더 이상 경찰이 벌금 징수를 위한 위협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


 이제는 한국판 마샬 도입을 고려할 때가 되었다. 경찰에게만 모든 것을 맡기려 하지 말고, 중요 수배자 및 탈주자 검거와 호송, 벌금형 징수 및 형집행장 집행, 범죄수익 몰수 및 추징, 증인 보호 프로그램 등을 시행할 전문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형집행장 발부를 남발하지 말고 규정대로 절차를 지켜서 벌금을 징수하도록 해야 한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은 업무가 폭증하는데 검사들은 야근이 줄어들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업무는 조정되었는데 아직도 남아도는 검찰 인력과 예산은 경찰에 이관되지 않았다. 만약 검찰의 잉여인력을 경찰에 전환시키지 않을 것이라면 그 인력을 활용하여 한국형 마샬을 검찰이나 법무부에 설치하길 바란다. 자기 일 남 시키는 것도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