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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지역화폐 가맹점 기준에 대하여(이재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9-16 16:58
조회
818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올 한해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지역화폐’의 급속한 확산이 있다. 전국 지자체 중 아직 도입하지 않은 곳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도입 시군이 늘어났다.


 불과 2년 전만해도 60여 곳에 불과했던 지역화폐는 지난해부터 골목상권 살리기 차원에서 정부의 지원이 늘며 탄력을 받은 후 코로나19 1차 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로 지급하면서 확산의 정점을 찍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장세다.


 이렇게 급속히 성장하다보면 항상 논란이 따르게 마련이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역화폐가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소비쿠폰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화폐의 목적은 먼저 지역 내 소비의 역외유출을 막아 역내소비를 늘리는데 있다. 또 이렇게 늘어난 역내소비가 골목상권에 최대한 골고루 나눠져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여기까지는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번성하고 있는 경제활성화형 지역화폐의 목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지역화폐는 현실 화폐경제의 폐해를 극복하며 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한 대안화폐를 말한다.


 경제 활성화만을 목적으로 한 지역화폐는 공허하다. ‘왜 지역화폐로 경제 활성화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경제가 거기 있으니까’라고 답할 순 없지 않은가. 경제 활성화는 중간목표다. 지역화폐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로 인해 공동체를 강화하고 발전시켜 사회적 자본을 육성하기 위함이라고 정립해야 한다.


 다시 경제 활성화 목적의 지역화폐로 돌아와서, 소비의 역외유출을 막고 역내소비의 균등한 배분을 목적에 둔다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지역화폐 사용처(가맹점)의 기준이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현재 전국 지자체에서 가장 많이 적용하고 있는 가맹점 기준은 ‘업종 구분’이다. 쉽게 말해 안 되는 업종과 업체를 정하는 것인데 주로 유통산업발전법 상 대규모점포(대형마트 등), 준대규모점포(SSM 등), 이에 준하는 계열사(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을 기본으로 사행성 업체, 유흥주점 및 지역 특성을 감안한 제한 기준이 적용된다.


 두 번째는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경기도 다수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매출 구분’이다. 룰은 간단하다. 전년도 카드매출 10억 원 이하면 모두 가맹점이며 사행성 업체, 유흥주점 등은 제외이다.


 업종 구분의 장점과 단점은 이렇다. 장점은 우선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을 통해 발생하는 역외유출을 사전에 차단하고 업종 내 시장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에서 쓸 수 없다보니 쏠림현상 없이 지역화폐가 골고루 쓰여지게 된다는 점이다. 단점은 지역특성에 맞춰 업종 및 업체를 구분해야 하다 보니 행정력의 손길이 많이 가고 피곤하다는 것이다.


 매출 구분의 장점과 단점은 이렇다. 장점은 우선 일일이 대상 업체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단시간에 가맹점을 확보할 수 있어서 행정력의 역량투입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기준 이하이면 대기업 프랜차이즈점 등에서도 쓸 수 있어 같은 업종 내에서 소비의 쏠림 현상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매년 매출 기준을 확인하는 것도 일이다.


 두 방식은 충분히 병행할 수 있다. 업종 구분 내에서 매출상한 기준을 도입하거나 매출 구분 내에서 업종기준을 디테일하게 정하면 된다. 다만 중요한 것은, 누누이 강조하지만, 지역의 특성에 맞춰야 한다는 점, 다시 말해 지자체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다.


 가맹점 기준을 일률적으로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에 맞추는 것은 지역화폐라는 이름이 매우 아까운 일이다. 다행히 지난 5월에 제정된 ‘지역사랑상품권 활성화 법률’은 가맹점 등록에 있어 지자체의 권한을 최대한 보장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자체의 자율성이 아무리 강조된다 해도 ‘웬만하면 다 쓸 수 있도록 하지 뭐’라고 한다면 매우 곤란해진다. 웬만하면 다 쓸 수 있는데 정부의 인센티브 지원이 끊어지면 소비자가 ‘웬만하면 그냥 혜택 많은 카드 쓰지’라는 선택지로 선회해도 할 말이 없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지 뭐’라고 치부해도 지역화폐 소비의 쏠림현상, 가맹점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지역화폐 운영에 있어 가맹점 기준은 정말 중요하다. 문제의 정의를 잘 내려야 과정과 결과가 모두 좋게 나온다. 이를 잊지 않는다면 지역화폐의 목적에 맞는 가맹점 기준 확립은 어렵지 않다. 항시 그렇지만 ‘성과’가 문제다. 덧붙이자면 과도한 ‘정치’의 개입이 있다. 이 둘은 또한 동전의 앞뒷면 같아서 항상 붙어 다니곤 한다.


 하긴 좋게 출발했지만 손이 타면서 흐지부지 사그라지거나 오히려 해악이 되는 정책이 어디 한 두 개이던가. 어쨌건 지역화폐는 소비쿠폰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