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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적폐 청산과 언론 개혁의 완수를 위한 제언 (정재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2-07 18:47
조회
1055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2000년대 초반 시베리아 횡단 여행 중 울란-우데라는 생소한 도시에서 잠시 머물 때였다. 당시 유일했던 한국 식당에서 여독을 풀고 있을 때, 그 식당에서 일하시는 고려인 할아버지가 매우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즐거운 대화를 하던 중 그 할아버지는 그 곳에 얼마 전에 촬영 왔던 한국 방송국 기자들 이야기를 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 식당에서 만취해 폭탄주를 만들면서 휴지를 천장으로 던져 나중에 청소하기 너무 어려웠다는 이야기부터 같은 남자라서(?) 이해는 한다만, 너무 노골적으로 성매매 업소를 찾더라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언론인들의 추악한 면모를 보여주는 이야기를 듣다 창피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러한 추악한 면모들은 아주 일상화된 것이라는 걸 직접 깨닫게 된 건 그 후 오래지 않아서였다. 러시아에 나와 있던 각종 언론사 지사장들은 물론 러시아로 취재차 출장 나오는 각급 언론인들의 현지에서의 생활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현지 법 상으로 불법은 물론이고, 부패한 권력과 범죄 집단과의 연계 속에서 영업하던 한인 성매매 업소들에서 공관 직원들, 파견 사원들, 교민 업자 등으로부터 거의 매일 접대를 받았고, 유흥은 심지어 낮에도 벌어졌다.
한국에서 정관계 인사들이 러시아를 방문할 때, 기자들이 함께 오는 경우에는 현지 한국인 성매매 업소들에는 비상이 걸린다. 언론사 지사장들이든 한국에서 오는 언론인들이든 마찬가지다. 손님들 중에 가장 질 낮은 사람들이 바로 언론인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수정당 인사들이 업소를 대거 방문했을 때, 정치인들과 수행원들, 기업인들, 그리고 언론인들은 불법업소 몇 곳을 통째로 빌렸다. 간판도 달지 못한 채, 은밀하게 영업하던 불법업소들이었다. 접대를 위해 현지 공관원들도 총동원되었다. 이런 질펀한 술판에 대해 한 진보 언론사 기자가 폭로를 했다. 하지만 너무 아쉬웠다. 기사의 초점은 공관원들의 접대 때문에, 영사 업무가 완전히 마비되었다는 것에 맞춰져 있을 뿐이었다. 언론인들이 접대 받는 문화와 불법 성매매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러시아에서 한인 성매매 업소들과 싸우고 있을 때, 그 진보 언론사 기자가 다른 건으로 취재차 왔다는 말을 듣고 만나려고 했지만, 그 기자를 담당하는 기업인의 말을 듣고는 만남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그 기자가 먼저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자고 했다는 거다. 러시아 땅에서 벌어지는 한국인들의 성매매에 대해 러시아 사람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의아해한다. 러시아에도 언론이 있지만, 이런 문제는 한국 사람들 사이의 문제이니, 너희 나라 언론인들에게 말해주라는 거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언론인들은 적어도 성매매 문제에서는 공범이었고, 범죄에 대해 침묵했다. 심지어 이런 이야기가 한국에서 보도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하였다.


 이런 범죄와 일탈이 비단 언론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특정 고위층이나 상류층만의 문제도 아니다. 어쩌면 대한민국 다수 남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정치인, 검사, 국가정보원 요원, 군인, 기업인 등 우리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문제는 이런 폐습을 폭로하고 바로 잡아야 할 책무를 지닌 언론인들이 한 술 더 뜬다는 거다.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적폐의 참호를 구축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최근 언론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여러 방송사들의 싸움이 눈물겹게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수없이 외쳤던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에 기반을 둔 감시와 비판 기능의 회복만으로 언론개혁과 적폐청산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한국은 여전히 정권의 향배에 따라 언론의 역할이 크게 달라지는 언론환경 자체가 매우 추악한 나라이다.


 그래서 적폐청산을 위해 싸우는 언론인들이 일상의 삶 속에서도 같은 정신으로 정의롭지 못한 일에 맞서고 있는지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러시아에 취재 왔을 때, 여자 나오는 술집을 찾아다니던 기자 중에는 지금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는 용감한 언론인도 있다. 이 기자와 함께 러시아를 찾은 다른 기자는 해외에서 경험(?)한 숱한 성매매 경험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기도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 기자는 이라크 파병 당시, 반전,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이라크 전장까지 취재하러 왔던 매우 ‘의식 있는’ 기자였다.


 이건 단순히 도덕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일상에서는 언론인 특유의 술 문화와 스트레스 따위를 핑계로, 성매매 업소를 출입하며, 성매매종사 여성을 착취하며, 술값마저 감시해야 할 권력에 기대는 적폐적 관행은 그대로 둔 채, 남들의 적폐만을 청산하자고 외치는 것은 전형적인 모순이다. 적폐 청산은 전방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또 다른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뿐이다. 여성을 단지 수단으로만 여기고, 일상적으로 성매매라는 범죄행위와 단절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언론계에 자리하고 있다면, 그건 새로운 적폐가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