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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익의 인권수첩] 여군의 자리는 어디인가? (경향신문,2018.09.06)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9-12 17:43
조회
1029

2015년 7월. 경북 영천역에서 여성의 치마 속을 불법촬영하던 남성이 붙잡혔다. 현행범이었다. 범인은 육군 대위, 육군 3사관학교에서 사관생도들을 가르치는 교수다. 한국 육사에다 미국 육사까지 나온 ‘인재’였다. 이런 경우 일벌백계가 답이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평등 교육,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을 강화했어야 했다. 하지만 3사관학교는 거꾸로 움직였다. 조직, 더 정확하게는 조직의 책임자인 지휘관의 앞날을 걱정했다. 이들에게 급선무는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피해자와의 합의가 중요했다. 사건을 감추고 파장을 줄이는 게 관심의 전부였다.


일을 도맡은 사람은 범죄자 대위의 직속상관인 대령이었다. 피해자와의 합의가 급한데, 이런 일에는 여성이 나서는 게 제격이라며 소령 계급의 여성 장교에게 이 일을 맡겼다. 가해자의 친누나 행세를 하면서 피해자와 합의하라는 거다. 상관의 명령에는 절대 복종해야 하는 군대지만, 그건 전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목숨을 걸 때의 이야기이고, 그 명령이 정당했을 때나 통하는 이야기다. 부당한 지시, 범죄를 은폐하는 모략까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친누나를 사칭해 대신 합의에 나서라는 지시까지 따를 수는 없었다. 그냥 군인도 아닌, 장교를 양성하는 교수들이 이럴 수는 없었다. 3사관학교의 교훈처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올바르게 사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관이라고 사관생도들에게 가르쳤던 교수의 선택은 분명했다. 고심 끝에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다. 육군 소령 차성복. 육군 3사관학교 프랑스어학과 교수의 고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대령의 ‘지시’를 거부한 이후, 차성복은 당연한 것처럼 조직적 왕따를 당했다. 대리 합의를 종용하던 대령은 남자 같으면 때렸을 거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때리는 대신 다양한 보복이 뒤따랐다.


상급자의 보복은 가혹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근무평정을 낮게 주는 것이다. 대령은 차성복에게 ‘열등’ 평정을 했다. 이 때문에 현역 복무 부적합 심의까지 받게 되었다. 심의 결과는 복무 적합으로 나왔지만, 심의를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강의를 빼앗아 버렸다. 갑자기 차성복이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킨다는 문제제기가 쏟아졌다. 평소 품위가 없고, 언행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남성을 성추행했다는 혐의까지 받았다. 부대 회식 자리에서 옆자리에 앉은 남성 소령의 허벅지를 만졌다는 거다. 부대 안 회관에서의 회식은 문제의 대령이 주관한 회식이었다. 차성복이 대령 바로 앞자리에 앉아서 남성 소령을 성추행했다는 거다. 피해자라 자처한 소령은 차성복의 뒤를 이어 학과장이 된 사람이었다. 성추행에 대한 논란이 거듭되자, 남성 소령은 허벅지를 몇 번 툭툭 쳤다고 진술을 바꾸기도 했다. 성추행을 했다든지, 언행이 성차별적이라든지 하는 고발들이 이어졌다. 모두 대령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다음의 일이었다.


강제로 전역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학과장 자리에서 쫓겨났고, 강의도 빼앗겼다. 사무실도 아무도 없는 빈방으로, 때론 휴가 간 사병의 자리로 강제로 옮겨 다녀야 했다. 그게 싫으면 나가라는 뜻이다.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절차를 밟아 억울함을 호소했다. 차성복의 호소에 대한 육군본부와 국방부의 반응은 기대와는 너무 달랐다. 문제의 대령에게 취한 조치는 ‘서면 경고’가 전부였다. 대리 합의를 지시하면서 폭언이나 협박을 하지 않았고, 합의를 종용한 것도 학교의 위신 추락을 막기 위한 의도로 인정된다는 이유였다. 군대라는 조직에서 대령이 소령에게 뭔가를 지시할 때, 폭언이나 협박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부드러운 말투로 상의하듯 말해도 된다. 가장 분명한 위계 조직에서 ‘부대를 위해 하는 일’에 폭언이나 협박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다. 차성복은 감봉 2개월 징계를 받았다. 마치 덫에 걸린 것 같았다. 차성복이 받은 감봉 2개월 징계는 터무니없는 것이다. 성추행이야 혐의를 벗었고, 나머지 징계 사유도 평소 언행에 품위가 없다는 주장뿐이었다. 이건 애초 사건의 발단이었던 불법촬영 범죄자에 대한 처리와 비교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그 성범죄자에 대한 군 검찰의 처분은 기소유예였다. 범죄 혐의는 인정되나 정황을 참작해 기소하지 않겠다는 거다. 국민을 지키라는 신성한 임무를 부여받은 현역 장교가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하는 범죄를 저질렀는데, 어떤 참작할 만한 정황이 있는지 모르겠다. 군대가 경찰, 검찰, 법원 조직을 따로 운영하는 까닭이 바로 이런 것일 게다. 기소하지 않았으니, 어떤 형사적 처벌도 없었다. 물론 징계를 받기는 했다. 처분은 감봉 3개월. 차성복과는 딱 한 달 차이다. 이쯤 되면 그냥 대놓고 봐주겠다는 거다. 게다가 범죄자는 3사관학교를 떠나 소속 부대를 옮겼다. 그가 옮겨간 곳은 남들이 그토록 선망한다는 한미연합사령부다. 그 범죄자도 군을 떠나면 보국훈장을 받아 국가유공자가 되고, 죽으면 국립묘지에 묻힐 것이다.


희한한 것은 성범죄자 대위, 대리 합의를 지시한 대령, 그리고 그 대령의 뒷배가 되었던 장군까지 모두 육사 출신이라는 거다. 우연의 일치일까.


차성복의 고난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군대에서 여성은 어떤 존재일까? 차성복은 현역군인 신분으로 프랑스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실력자지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범죄를 무마하는 데 호출되었고,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가혹한 보복을 당하고 있다.


지난 6일은 마침 여군 창설 제68주년 기념일이었다. 국방부는 ‘여군 역량 발휘를 위한 제반 여건 보장’과 ‘여군의 양적·질적 성장 기반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앞으로는 GOP나 해안 초소 등에 대한 여군 보직 제한 규정도 폐지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생도를 교육하는 일, 프랑스어학을 강의하는 교수마저 여성이 할 수 없다면, 도대체 여군의 자리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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