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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익의 인권수첩] 소년원의 존재 이유는 ‘소년 보호’ (경향신문, 2018.02.22)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2-23 11:16
조회
575

대장암에 걸렸지만 왜 아픈지 알 수 없었다. 고통은 심했고 몸무게는 40㎏이나 빠졌지만,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아파서 견딜 수 없었기에 소년원 의무과를 서른한 번이나 찾았다. 갈 때마다 고통을 호소했지만 의무과에선 으레 하는 소리만 반복할 뿐이었다. 처방이라곤 변비약이 전부였다. 항문에서 피가 나온다고 호소하면 항문이 찢어져서 그런 거라는 말뿐이었다. 소년원은 병을 키우는 곳이었다. 병은 악화되었고 소년원을 나올 때까지 그렇게 아픈 까닭이 뭔지 알 수 없었다.


소년원 당국자들은 꾀병을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소년원생들이 거짓말을 잘하고, 꾀병도 심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을 수도 있다. 아무리 마음이 굳게 닫혀도 그렇지, 청소년을 이런 식으로 죽음으로 내몰면 안 된다. 설령 꾀병이라도, 서른한 번이나 찾아간 성의를 봐서라도 아프다는 호소에 한번만이라도 귀 기울였어야 했다. 춘천소년원은 그러지 않았다.


춘천소년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주소년원에서도 같은 이유로 청소년이 실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소년원 당국은 외부 진료 요청을 번번이 묵살했다.


문제는 심각하지만, 그 문제를 어떻게 푸는가에 따라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잘못이나 실수가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거다. 대장암 걸린 청소년을 방치했다는 언론보도에도 꿈쩍하지 않던 법무부는 실명 사태까지 불거지고, 여론의 질타가 쏟아진 다음에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늦은 대응이었다.


법무부 대응의 핵심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불시’에 소년원을 방문해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책을 지시했다는 거였다. 장관의 소년원 방문 자체가 이례적이라 그 자체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불시’는 거짓말이었다. 장관의 방문은 오후였는데, 법무부는 오전에 보도자료를 내고 ‘불시’를 강조했다. 장관의 소년원 방문 모습은 텔레비전 뉴스에 방영되기도 했다.


게다가 불시에 방문했다는 곳은 탈이 난 춘천이나 전주가 아닌, 안양소년원이었다. 장관님 오가시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서 가까운 곳을 골랐던 것이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장관은 소년원을 방문해 의료시스템 현황을 보고받고, 생활관, 진료실, 관제시스템 등 시설을 ‘세심하게’ 점검했단다. 소년원생들을 만나서는 “중한 질병이 의심되는 때는 참거나 숨기지 말고, 담당교사, 의무과장 등에게 즉시 알려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단다. 의무과에만 서른한 번이나 찾아갔던 소년원생들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마치 중한 질병에 걸렸는데도 제대로 알리지 않아서 병을 키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은 소년원 관계자들에게는 “수용 중인 학생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려, 학생들이 소년원에서 병을 키우는 일이 없도록 다각적인 의료시스템 개선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라”고 했단다. 아울러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법무부 장관이 소년보호기관들을 직접 방문하여, 의료서비스 전반을 점검하고 전문 의료인들의 자원봉사를 통해 의료시스템을 보완하는 등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수립·실행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계획을 어떻게 수립할지 모르지만, 법무부가 제시한 대안은 단 하나, 의료인들의 자원봉사로 시스템을 보완하겠다는 거다. 피해당사자는 물론, 시민들을 우습게 보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장관을 비롯해 여러 주요 보직을 탈검찰화하고, 인권 주무부서로 거듭나겠다는 법무부가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를 통해 적폐청산과 개혁을 다짐하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하긴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여태껏 검찰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것도 제대로 된 검찰개혁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검사들이 불편해하지 않을 수준에서만 맴돌고 있을 뿐이다. 법무부가 책임지는 출입국, 범죄예방, 소년보호, 인권 등은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럴 거였다면, 차라리 위원회 이름을 그냥 ‘검찰개혁위원회’라고 붙였어야 했다. 아 참, 같은 이름의 위원회는 대검찰청이 따로 운영하고 있다. 희한한 일이다. 법무부와 검찰이 한 몸인데, 검찰개혁을 다루는 위원회는 두 개나 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더니, 두 위원회 모두 막상막하다.


소년원의 가장 큰 존재이유는 소년 보호에 있다. 범죄 청소년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기능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재범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하는 거다.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청소년들에게만 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 어떤 환경에 놓였나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미성년자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청소년 범죄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어야 한다. 아이는 마을이 함께 키우기에 아이의 잘못은 마을 전체의 책임이어야 한다. 그래서 처벌이 능사는 아니고, 법률이 정해 둔 것처럼 보호가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의 소년원에서 구금 이상의 기능은 찾아보기 힘들다. 간판은 무슨 학교라고 근사하게 붙여놓았지만, 번듯한 건 이름뿐이다. 옛날 군대식 내무반처럼 수십 명이 한꺼번에 부대껴야 하는 좁은 곳에서 교육활동이라고 제대로 할 리 없다. 그저 가둬놓고 혼내주며 질서를 잡는 게 전부다. 언젠가 소년원을 찾았을 때, 열흘 전 내린 눈에도 운동장엔 발자국 하나 없는 걸 보았다.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으로 달려가 농구라도 한판 뛰어야 하는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을 운동장조차 밟지 못하게 통제한 까닭이다. 생활실이라 부르는 좁은 감방에 가둬놓는 게 일상이다. 적절한 진료도 해주지 않고 외부 진료도 보내주지 않아서 대장암을 키우고, 실명까지 이르게 한 것은 어쩌면 하나의 신호일 뿐이다. 몸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소년원이 총체적으로 인생을 망가트리는 곳이어선 곤란하다. 소년원에 다녀왔다는 게 비행을 일삼는 청소년들에겐 훈장이 되고, 착실하게 살려는 경우엔 낙인이 되는 수준에서 멈추면 안 된다. 무거운 책임이 법무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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