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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쩨쩨한 육군훈련소 (경향신문, 2020.10.0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0-12 11:37
조회
1128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병역 문제가 한동안 쟁점이었다. 숱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만, 쟁점은 “소설 쓰시네”였나 싶을 정도였다. 병사의 휴가 연장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지, 왜 정쟁거리가 되는지 모르겠다. 군 관련 기사는 쏟아졌지만, 군대 문제의 본질에 가닿은 기사는 없었다. 어차피 관심은 군대나 군인이 아니라, 상대를 궁지로 모는 게 전부인 진영 다툼이었을 뿐이다.


최근 육군훈련소 홈페이지에 새로운 공고가 떴다. 다음주 월요일(12일)부터 훈련병에게 보내는 인터넷 편지쓰기를 중단하겠단다. 표현만 ‘변경’일 뿐, 실상은 중단이고 금지였다. 앞으로는 140자 이내의 ‘응원 메시지’만 전해주겠단다. 휴대전화도 없는 훈련병들에게 인터넷 편지쓰기는 밖에 있는 사람들과 자신을 이어주는 생명줄 같은 구실을 한다. 훈련소는 낯설고 힘든 곳이다. 단기간에 장정을 군인으로 바꾸는 곳이니 뭐 하나 만만한 게 없다. 그러니 밖에 두고 온 사람들은 모두 그립다. 부모, 형제, 친구 등이 보내준 편지는 낯선 훈련소 생활에서 숨통 같은 역할을 한다. 육군훈련소는 이런 숨통을 끊어버리겠다는 거다.


이유가 기가 막히다. “각 부대에서는 1일 평균 2시간 이상을 편지 출력과 개인별 전달에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많은 인쇄용지가 사용되고 있”으니, “훈련병의 안전한 교육훈련과 훈육 등에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을 집중하기 위해” 중단한다는 거다.


부대가 매일 2시간 이상을 편지 출력과 전달에 매달린다는 과장도 이상하지만, ‘많은 인쇄용지’가 그렇게 큰 부담인지 모르겠다. 국방비 지출 세계 6위인 대한민국이 복사용지 가격 부담 때문에 편지도 못 쓰게 막겠다는 건가.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나 훈련병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쩨쩨한 태도다. ‘제복 입은 시민’ 대접은 고사하고 조금만 번거로워도 가족과의 편지마저 봉쇄할 수 있다는 발상이 두렵기까지 하다. 이런 사람들에게 장정들을 맡겨야 한다는 게 답답하다.


사실 군대에는 이처럼 당장 바로잡을 게 너무 많다. 특히 의무복무군인들이 받는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고통들이 그렇다. 익숙한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직업군인들은 부대를 비우고 퇴근하는데, 왜 의무복무군인들만 부대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지부터 국가와 군대의 답변을 듣고 싶은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권한이 크고 책임이 무거운 사람들은 일과가 끝나면 자유롭게 지내는데, 아무런 권한도 책임도 없는 병사들은 왜 내무생활을 강요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태껏 없었다. 직업군인들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급여에다 아주 특별한 연금, 그리고 10년만 근속해도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자격을 갖는다. 그러나 의무복무자는 최저임금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용돈’ 수준의 월급만 받는다.


중요한 시기에 생업과 학업을 접어두고 군대에 왔다. 원치 않는 임무도 수행하며 때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도 따르지만, 적절한 보상은 없다. 월급, 연금, 국립묘지 등은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왜 제복을 입어야 하는지, 머리는 왜 그렇게 짧게 잘라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머리카락 길이가 전투력과 비례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어설픈 일제강점기 식의 구습일 뿐이다. 무엇보다 복무기간도 살펴봐야 한다. 각종 전략무기가 핵심전력이 된 세상에서 전쟁 수행이나 평화 유지를 위해 병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각개전투를 하며 고지를 점령하는 식의 전쟁은 진작 끝났다. 육군 기준 18개월 복무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동시에 했던 공약을 이제야 이행하고 있을 뿐이다. 합리적인 복무기간은 얼마일지, 기간을 더 줄일 수 없는지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의무복무 중인 젊은이들의 고생이 많다. 면회, 외출, 외박, 휴가 등이 여의치 않으니 너무 힘들단다. 무척 힘들겠지만, 군인들의 영내 집단 거주를 생각하면 부대 밖 출입이 코로나19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니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당장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뭐든 답을 찾아주어야 한다. 휴가 등에서 손해를 보면 그만큼 복무기간을 줄여주는 등의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외출 두 번 못하면 하루 일찍 제대한다는 식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무엇보다 복사용지도 아깝다며 인터넷 편지쓰기마저 막아버리는 일부터 당장 그만둬야 한다. 직업군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무복무군인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의무복무 중인 젊은이들에게 지고 있는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