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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기 싫은 ‘어른이’(홍세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5-06 15:41
조회
717

홍세화/ 대학생


 어느덧 대학교 4학년,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며 느낀 점들이 있다. 확실히 부모님 세대에 비해 지금의 나는 어른이 되지 못했다. 어렸을 땐 하루빨리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성인이 된 이후에는 아니었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어른으로서 지녀야 하는 책임과 의무에 대한 부담감이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성인만 되면 나를 속박하던 제재들은 사라지고 자유만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나를 반긴 것은 자유보다는 이에 따른 책임과 의무이다. 나를 속박하는 것으로 여겼던 제재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나를 보호해줄 울타리 밖으로 나온 지금은 개인적인 일들이나 금전적인 부분에서 온전히 나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일들이 늘어나고 있단 사실에 부담이 생겼다. 때문에 이런 일들이 앞으로 더욱 많이 일어날 텐데 내가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들은 늘어만 갔다. 이러한 고민과 함께 그 옛날 지금의 나보다 두 살 밖에 많지 않던 스물여섯의 엄마는 어떻게 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언니까지 낳으실 수 있었을까 놀라운 마음과 존경심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아직 어른이 되기 싫은 ‘어른’과 ‘어린이’의 중간인 ‘어른이’인 상태이다.



사진 출처 - 구글


 두 번째 이유는 요즘 들어 더 이상 나이 들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인데,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 혼자만 나이 먹는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모든 인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를 먹고 늙어가며 노화가 찾아오는 것이 당연하다. 올해 스물 네 살인 나도 이제는 육체의 성장이 한계에 이르렀고, (나보다도 어른이신 분들이 들으신다면 기가 찰 말이겠지만) 점차 노화가 찾아와 체력이 점점 떨어져 가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의 노화가 시작되었다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앞서 말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지켜주고, 사랑해주셨던, 그리고 여기까지 이와 같은 것들을 베풀어주시는, 나에게 진정 ‘어른’들이라고 생각되는 분들의 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한 인터넷 기사에서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 결과 하나를 보았는데, 인간의 노화는 각각 34세, 60세, 78세를 기점으로 단계별 노화가 가속된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요즘 들어 부쩍 부모님과, 나를 돌봐주셨던 가족들께서 연로해지시고 많이 쇠약해지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마음이 아팠다.


 ‘피터팬’을 보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네버랜드에 가게 된다. 나는 부모님과 같은 소중한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나이를 먹지 않을 수 있는 환상의 나라가 있다면 그곳으로 다 같이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이러한 몽상과 더불어 첫 번째 내용과는 모순되지만, 내 성장 과정 속 많은 어른의 베풂에 보답하기 위해 어서 안정적인 직장에 자리를 잡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이분들을 부양하고 싶은 마음도 생겨나고 있다.


 최근 내가 쓴 ‘칼럼’이라 칭하기엔 민망한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대부분 이 시대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아픔과 설움 등을 주제로 다뤘지만 사실상 그 글을 쓰는 나는 제대로 노력도 해보지 않았고, 그저 징징대는 글들에 가까워 보였다. 이제 와서 읽어보니 일종의 도피성 글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현실을 마주하고 ‘어른이’가 아닌 ‘어른’이 되어야 할 때인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바로 어른으로서 성장하긴 어렵겠지만, 이제는 적어도 내가 받은 것을 돌려줄 수 있는, 성숙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성장할 것을 다짐할 줄 아는 어른이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