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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경찰 아저씨, 폭력과 학대에 좀 더 민감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김형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1-25 17:27
조회
681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폭력 학대 신고로 일이 많고 욕을 많이 먹어 힘들다는 경찰 아저씨 당신께 .
 먼저 피신고자에게 욕을 먹고 과한 업무에 시달리는 당신께.
 직급 낮은 다른 직원의 근무 환경도 챙기셔야 하고 상사의 위신도 챙겨야 하는 당신께.


 '요즘 일이 너무 많아 고생이 심하십니다. 욕을 너무 들어 자존감이 많이 상하셨군요'라고 위로와 감정 읽기를 미처 못 해 드려 죄송합니다. 그건 당신이 지적한 대로 제가 현장을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얼마나 힘드셨으면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어 학교에서 부모교육을 강제할 방법이라도 없느냐는 어느 교사의 교육청 문의에 제가 학대 정황이 보이는 대로 족족 신고하는 방법이 첫 번째 라고 말하는 순간, 제 말을 자르고 역정을 내셨습니까?


 논쟁하는 자리도 아닌 교육청의 장애인 학생의 인권지원단 논의 자리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한 제 말을 그렇게 역정 내듯 자를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 사회 50대 팀장급 남성이 가지고 있는 '발화 권력'이랍니다.


 평소에 가해자를 보고도 그렇게 노려보지 않는데 저는 정말 분을 삭이지 못해 20초 이상 칸막이 너머로 죽일 듯이 노려보기만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좀 더 매너있게 정리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쓰기 권력'이 있답니다. 쓰기 권력은 당신처럼 일방적이고 폭력적이지 않아요. 독자들이 선택하고 해석할 수 있거든요.


 당신의 말을 들을 때 너무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서 모두를 정확하게 듣지 못해서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렇게 신고가 들어온 집을 찾아가서 조사해도 많은 경우 '무혐의이거나 오해일 경우가 너무 많다. 신중한 신고가 필요하다. 현장 경찰이 너무 힘들다.' 이런 취지의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사실이라 하더라도, 가정폭력과 장애인 학대에 대하여 '신중한 신고', '무혐의', '오해'라는 단어를 인권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당신의 그 '공권력'에 매우 화가 났습니다.



사진 출처 - SBS


 우리가 당신의 지위와 직무에 공권력이란 힘을 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피해자나 개인이 함부로 가해자나 다른 개인을 조사하거나 수사하거나 검거하거나 구속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적 합의에 따라 대신 부여한 막강한 권력입니다.


 그런 공권력을 부여 받은 당신이 공적인 자리에서 '가해자' 입에서나 나올 수 있는 변명을 하다니요. 그렇게 바로 말씀하실 수 있었던 건 아마 저를 제외하면 인권 단체 활동가는 아무도 없었고 죄다 경찰 관계자들 분들밖에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경찰의 입장을 더욱 대변해 주어야겠다는 의무감과 인원수가 '발화의 힘'을 주었겠지요.


 물론 당신이 그렇게 하소연하기 전에 행자부와 국회에 경찰 인력을 늘리라고, 근무조건을 개선하라고 요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혹시나 대통령을 만나거나 국회의원들을 만나면 꼭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현장을 잘 아시고 실무 경험이 많으시면, 격무에 시달린다 하시더라도 ‘언제든지 신고해 주셔라, 사전에 교육청에 문의하지도 말고, 관리자 눈치 보지도 말고 즉시 신고자의 의무를 다하시라, 나라도 부모에게 전화 한 통 해서 인권교육 받으라고 하겠다’고 해야 수사 경력 몇 십 년에 걸맞은 전문성이 발휘되는게 아닐런지요?


 가정폭력과 장애인 학대 신고의 본질 취지가 가해자를 벌하는 겁니까?
 당신의 실적과 위신을 위해서입니까?
 어떤 경우에도 피해자를 살리기 위함이 아닙니까?
 학대와 폭력을 우리가 미리 막을 수 없다니요? 당신을 출동시키는 신고가, 가해자를 한번이라도 더 만나는 것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당신들의 권력이자 직무입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초인종 소리 한 번에도 가해자의 폭력을 잠시나마 멈춰, 피해자가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피해자에게 있어 가정 폭력이란, 가해자가 피해자를 제 맘대로 대할 때 사람들이 너를 도울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것은, 신호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신호란, '당장 학대를 멈춰라!', '우리가 너를 항상 감시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해자에게 늘 당신 주위에, 바로 뒤에 공권력인 경찰이 당신의 편에 있다고 격려하고, 연대해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며 폭력과 학대에 대항할 힘을 주기 위해 당신은 신고를 받고 가해자를 만나는 겁니다.


 미국드라마에 나오는 경찰처럼 우연히 방문한 집에서 피해자가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발견하고 신고 할 것을 종용하고 또 종용하다가 결국 폭력을 막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며 반성하는 모습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적어도, 회의에서 말뿐이라도 한 번 더 방문하고 한 번 더 가해자를 압박하고, 피해자의 미세한 시그널을 읽어 내겠다. 장애인 학생을 한 번 더 살피겠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고를 망설이는 교사들에게 ‘의심만 들어도, 정황만 보여도, 사진을 찍어서 나에게 보내라. 초기 진술을 반드시 녹음하고 피해자를 씻기거나 옷을 갈아입히지 마라. 보건 교사라도 불러서 확인하고 같이 신고 하셔라.’고 해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떤 신고자라도 비밀 보장하겠다고 말씀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키우다 보면 가르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는 당신의 그 무혐의와 오해라는 표현이 폭력을 더욱 증폭시키고 전염시킵니다. 가해자에게 권력을 줍니다. 죄책감도 사라지게 합니다.


 법을 집행하는 당신이라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이란 이름으로, 치료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그 어떠한 폭력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정 폭력과 학대의 가해자는 언제나 자신의 가해를 인정하지 않으며 늘 피해자는 피해를 공개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폭력과 학대의 특수성을 현장 근무가 풍부한 당신께서 모르지는 않으시겠지요?


 당신의 발언 저 밑에 직무의 공권력을 부여하는 우리의 '신고'를 짜증과 비하와 무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 어감을 느낀 것은 저뿐일까요? 그 발언은 오히려 당신의 바람과 다르게 당신의 허세를 부풀리고 자존을 더욱 약화시킬 뿐입니다.


 저는 매 강의 때마다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소방 훈련처럼 훈련을 요구하고 연습을 시켜서 숙련되게 할 것입니다. 화재신고를 신중하게, 오해일지도 모른다고 머뭇거린다면 걷잡을 수 없는 큰 불이 되듯이 폭력과 학대 신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나 스페인처럼 가정 폭력과 학대를 알리는 피해자를 위한 신호를 만들자고 운동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좀 더 폭력과 학대에 민감했으면 합니다. 신고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거의 습관처럼 이루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의 폭력과 학대에 대하여서는 '장애인 권익 옹호기관'에도 신고할 수 있도록 현행법이 있습니다. 당신처럼 수사권이 있거나 예산이 많지는 않지만 그들도 신고로 부여 받은 조사권이라는 공권력이 생겼으니 누구보다 열심히 할 것입니다.


 경찰 아저씨. 당신의 능력을, 가치를, 의미를, 전문성을, 당신의 직무로 보여 주기를 바랍니다.


2020년 11월 24일 장애인 인권 활동가 김형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