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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얼굴 (김아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9-12 17:18
조회
1385

김아현/ 인권연대 연구원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수원과 인천을 떠들썩하게 했고 제주를 놀라게 했다. 최근에는 어린이대공원 초입에서 벌어진 일이 과천을 두려움에 빠뜨렸다. 세상 곳곳, 옛날부터 지금까지,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언제나 있어왔다. 살인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을 죽이는 일과 같은 무거운 범죄도 사람이 사는 곳이면 일어나는 일이지만, 잘 돌아보면 생각만큼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자주 일어나지 않기에 더 요란하게 알려질 뿐이다. 그리고 ‘누가’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알려질 즈음이면 그들은 빠른 속도로 세상과 격리된다. ‘정체가 드러난 살인자’는 구속 수감되어 여러 미디어와 우리 공포 속에서 회자될 뿐, 지금 여기, 우리 곁에 있지 않다.


 발각된 죄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아직 발각되지 않은 죄다. 발각되지 않아 합당한 처벌을 받지도 않았고, 참회와 교정의 기회도 아직 보장받지 못한 상태의 죄다. 그리고 발각되지 않은 죄보다 절망적인 것은, 죄를 쉽게 짓도록 하는 부정적인 외부영향이 고착화된 사회, 그 고착이 내내 개선되지 않는 사회다. 한 사람의 고통과 두려움이 증오와 혐오로 자라도록 방치하면서, 그의 잘못에 대해 처벌만 강화하는 사회다.


 최근 몇 년간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의 관계자라는 오명이 억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남자가 있다. 남겨진 그의 아이들은 아직도 친구들에게 아버지의 이름과 존재를 밝히지 못한다. 실명과 얼굴, 그를 둘러싼 혐의가 모두 알려진 사람의 자식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 이후 일어날 것이라 예상되는 일들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되기 전까지 아마 숨죽여 살, 어린 시절을 지배하는 대부분의 기억이 두려움과 공포일 아이들의 미래는 어떨까. 인간의 모든 범죄는 어린 아이의 방황에서 시작된다(<레 미제라블>에서 인용).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잘못으로 평생 대신 손가락질 당하는 것이 응보이고 정의인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심지어 사회 정의라는 이름으로, ‘피의자의 가족, 범죄자의 아들, 살인자의 어머니, 악인의 아버지’로 호명당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사진 출처 - freepik


 피의자 얼굴 공개를 두고 오랜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과천 어린이대공원 살인사건 피의자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되던 최근에는 분노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시대착오적’이다. 경찰과 우리 사회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 그는 용서받기 힘든 끔찍한 죄를 저질렀고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 않아 당연히 형이 확정되지 않은, 우리가 법적으로 ‘피의자’라 부르기로 한 사람을,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매장시키고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남겨진 그의 가족에게 ‘보복’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경찰은 지난 1년 반 동안의 개혁 논의를 통해 도출한 몇 가지 결론들을 대대적으로 공개하며,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인권침해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국민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침해해온 과오를 반성하고 달라지겠다고 했다. 개혁을 위한 입법 논의도 진행하는 중이다. 좀 떠들썩하다 싶게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시점,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말과 행보를 일치시키는 최소한의 염치는 있었어야 했다.


 경찰이 이러한 사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법적 근거는 2010년 신설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강법) 8조 2항이다. 이후 2011년 개정을 통해 피의자의 얼굴, 나이, 성명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전제조건을 강화했다.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해 공개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밝혀진 살인’이야 말로 재범의 위험이 가장 적은 범죄 가운데 하나다. 살인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해서 예방될 일이라면, 우리 사회의 살인은 통계적으로든 체감으로든 점점 줄어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강호순과 신창원이 검거되던 시점의 얼굴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재범 방지는 물론이고 예방조차 할 수 없다. 피의자 얼굴 공개를 통해 우리가 얻을 이익은 아무 것도 없고 다만 파생되는 고통과 비극의 계보만 있을 뿐이다. 득보다 실이 많다면 바꾸는 게 문명사회다. 특강법 8조 2항에 관한 전면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다. 범죄자의 얼굴과 그의 가족을 궁금해 하는 우리 마음 속 특강법 8조 2항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