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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현실이다 (홍세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6-24 16:29
조회
1287

홍세화/ 회원 칼럼니스트


 내가 다니는 상명대학교의 언덕은 높다. 높은 것도 보통 높은 것이 아니다. 학교 수업을 듣기 위해 언덕을 오를 때면 내가 지금 등굣길에 오른 것인지, 등산길에 오른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서울에서 사는 곳은 연립주택의 반지하이다. 반지하 중에서도 매우 허름한 반지하이다. 해가 중천에 떠도 낮과 밤이 분간이 되지 않는, 밤이면 길고양이도 우리 집을 내려다보는, 우리 집은 그런 곳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화제가 된 영화 ‘기생충’에서는 내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일상을 대한민국 빈부격차에 따른 ‘계급의 수직구조’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영화에서는 시시각각 영상의 구도를 한없이 내려가거나 한없이 올라가는 식으로 극대화하여 촬영해 등장인물들 사이의 수직구조를 보여준다.


 한 번은 동기들과 함께 학교 근처에 위치한 평창동과 부암동, 흔히들 ‘부촌’이라 불리는 곳의 집들은 왜 그렇게 높은 곳에 집을 지었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 끝에 우리는 “그들은 그렇게 살아도 불편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지었다. 그들은 집 앞까지 모셔다 주는 운전기사가 있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장을 봐주는 가정부가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언덕’은 일상생활에 있어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상징으로까지 작용할 수 있다.


출처 - <기생충> 스틸컷 (다음 영화)


 반면, 같은 산비탈에 살지만 앞의 사례와는 정반대로 고단하고 처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달동네’라고 알려진 불량 주택 밀집 지역에는 아직 많은 사람이 집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높은 산비탈을 오르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다.


 기생충에서는 이러한 계급의 간극을 다양한 요소를 통해 표현한다. 부자인 박 사장네 가족은 어린 아들이 폭우가 내리는 와중에도 마당에 미제 텐트를 치고 그 속에서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채 즐겁게 놀지만, 가난한 서민인 기택네 가족은 폭우 아래 빗물과 오물에 집이 모두 잠겨버리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교차하며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 예시이다.


 2015년경 대한민국에는 ‘수저 계급론’이라는 신조어가 떠올랐다. 날 때부터 금수저 혹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은 성장 이후에도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따위보다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는 대한민국 현실에 대한 자조적인 표현이다. 기생충에서 기택은 이러한 한국 사회를 꼬집기라도 하듯 “무계획이 계획이다.”라는 말을 되뇐다. 그들이 어떠한 노력을 바탕으로 계획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더라도 결국 그들의 계급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저 계급론 열풍,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떠할까. 영화 기생충의 끝맺음은 기택의 아들인 기우가 아버지께 쓰는 편지로 끝이 난다. 멀끔한 차림새를 하고 어머니와 함께 자신이 꿈에 그리던 박사장네 저택을 구입한 기우가 아버지 기택과 재회하는 장면을 보며 나는 뻔한 해피엔딩에 ‘역시 영화는 영화로 끝이 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기우의 상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을 때는 씁쓸함과 함께 너무나도 현실적인 영화 내용에 찝찝한 기분마저 남았다.


 빈부격차 문제는 비단 대한민국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세계인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에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빈부격차는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좀처럼 나아지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은 그들이 쥐고 있는 것을 놓으려 하지 않고, 이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는 심화되었으며 중산층은 몰락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더욱 심화된다면 언젠가 모든 서민들이 몰락하여 기득권층에 ‘기생’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홍세화 : 한창 놀고싶은 대학교 3학년 홍세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