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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내로남불 vs 조국의 내로남불(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3-25 16:01
조회
9953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갱스터 무비의 고전 <대부> 시리즈부터 지난해 개봉한 <아이리시맨>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폭 영화에는 지극한 가족주의와 비정한 폭력의 세계가 공존한다.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던 깡패가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아빠가 되고,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차별한 복수의 화신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캐릭터가 동시에 시연하는 극단적인 심리와 행동에 관객들은 모순된 정서를 경험하지만, 위화감을 크게 느끼지는 않는다. 등장인물에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 모순된 정서가 지금 여기서는 ‘내로남불’이라는 진부한 조어로 불린다. 사실 대부분의 관객은 등장인물의 행동에서 모순이나 괴리를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내로남불은 이기적 유전자라는 인간의 원형질과 관련이 있는, 존재의 숙명 같은 행동양식이기 때문이다. 팔은 안으로 굽고, 모든 인간과 인간이 만든 조직은 내로남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 세계의 부조리함은 제도와 시스템으로 줄일 수는 있지만 근절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제도가 상호 견제와 감시를 전제로 짜여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오늘 내로남불에도 질량의 차이가 있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질량의 눈금에 따라 사회적 처분과 평가가 합당하게 이뤄져야 이성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장모 사건의 패턴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가 연루된 것으로 보도된 네 가지 사건은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다. 모두 단독 사업이 아닌 ‘동업’이며, 동업자와 ‘반드시’ 송사가 생기고, 소송 결과 ‘장모만’ 처벌을 면한다는 것이다. 우연치고는 매우 확률이 높은 우연이다. 엄청난 자산가라고 알려진 윤 총장 부인과 장모의 재산이 예의 동업을 통해서 형성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동업자들이 감옥에 가는 등 만신창이가 되는 동안 윤 총장 식구와 재산은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윤석열과 조국의 내로남불을 직접 비교하는 게 가능하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전자는 아직 의혹 수준이고, 후자는 상당 부분 사실이 드러나 있다는 반론 말이다. 내가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은 지점이 바로 그 대목이다. 윤석열 검찰이 ‘아직 의혹 수준’에 불과했던 조국 일가의 스캔들에 어떻게 대응했는지가 ‘윤석열 내로남불’의 핵심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비판의 대상을 법으로


 윤석열 검찰은 법무부 장관 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수사에 뛰어들어 정치적 개입을 했고(국민의 선택권 방해), 사문서위조 공소시효 만료 직전 피의자 소환도 없이 전격 기소를 강행했으며(형사 절차 무시), 전국 70여 곳에 이르는 전방위 압수수색을 통해 한 가족을 탈탈 털었다(수사 비례성·상당성 원칙 위반). 이밖에 무리한 별건 수사와 무차별한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여론전 등 과도하다고 적시할 수 있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렇게 막대한 수사력을 쏟아 부었는데도 조 전 장관의 권력형 비리는 딱히 드러난 게 없다. 부부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자녀 교육에 이용한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었고, 지탄 받아 마땅했지만, 어디까지나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지 법으로 단죄할 대상은 아니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 정도가 아니라, 꺼내지 말아야 할 칼을 꺼낸 것이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개 버릇 남 못 주는 검찰


 이에 반해 윤석열 처가 의혹에 대한 검찰의 대응은 어떤가. 최근 상황만 보면, 의정부지검은 350억 원대 잔고증명서 위조 의혹 사건을 지난해 10월 넘겨받고도 뭉개고 있다가 언론보도가 나가자 뒤늦게 수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달 말로 알려진 공소시효가 지나면 ‘공소시효 도과로 공소권 없음’ 처리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잔고증명 위조에 윤 총장 부인 김건희(개명 전 김명신)씨가 직접 관여한 사실은 이미 재판을 통해 밝혀진 상태다. 같은 사문서위조 의혹 사건을 공소시효 직전 피의자 소환도 없이 전격 기소했던 검찰의 패기를 이번에도 볼 수 있을까. 검찰은 또 다른 사건인 서울 송파 스포츠센터 채권 사기 의혹 사건도 서울중앙지검에서 의정부지검으로 최근 이첩했다. 김기현 울산시장 관련 건은 울산에서 서울로 가져와서 청와대까지 압수수색 하더니, 윤 총장 가족이 연루된 사건은 수사 인력도 부족한 의정부에 내려 보냈다. 신물 나게 보아온 검찰의 제 식구 봐주기가 재연되는 것 같은 분위기다.


어떤 내로남불이 더 나쁜가


 대충 둘 다 나쁘다는 양비론을 펼치거나, 엘리트들끼리의 정치적 다툼에 불과하며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하는 소외된 이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비겁한 회피라고 생각한다. 질문을 바꿔보자.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검찰이 수사권을 발동해야 할 대상은 둘 중 어느 쪽인가.


 만약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검사 사위의 권세를 이용한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이전에는 정치권력 자체가 조폭이었고, 군부와 정보기관, 경찰과 검찰은 그 손발에 불과했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법보다 주먹이 먼저이던 시대가 가고, 법이 곧 주먹이 된 사회에서, 법을 집행하는 검찰이 법 위에 존재하게 됐다. 치외법권 지대가 된 검찰은 법을 어겨도 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피의자를 봐주는 대가로 성관계를 하고, 친구에게 수천억 원의 주식도 증여받고, 김광준 검사처럼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로부터 받은 돈으로 주식 투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경찰이 신청한 김광준 검사의 계좌추적 영장을 기각한 게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윤석열이다. 가장 심각한 내로남불 조직은 검찰이다.


검찰은 늘 정치를 해왔다


 윤석열 총장 취임 이후 두드러진 현상은 검찰이 수사를 수단으로 정치의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검찰 개혁 저지를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조국 수사 당시 검찰이 정치를 하고 있다고 어떤 정치인이 일갈했지만, 사실 검찰은 늘 정치를 해왔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정권(청와대 민정수석실)과 행동을 같이했기 때문에 검찰의 정치 행위가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참사 초기 수사를 유병언과 구원파 잡기로 변질시켜 청와대를 (물론 일시적이었지만) 구조 책임론에서 자유롭게 해줬고, ‘십상시 문건’이 폭로됐을 때는 문건 유출자 색출 수사로 방향을 틀어 국민의 관심을 문건 내용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이런 프레임 전환이 검찰의 주특기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혼미한 사이, 김학의라는 10년 묵은 검찰의 숙변을 해결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폭행(특수강간치상)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는 사실이 지난 3월 10일 보도된 것이다. 무혐의 결론은 지난 1월 이미 내려놓았다고 한다. 욕을 덜 먹을 수 있는 때를 기다린 것이다. 검찰이 뒤가 구리거나 뭔가 켕기는 사건을 비 오는 날 폐수 버리듯 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런 식의 여론 조작(이건 조작 축에도 끼지 못할 테지만)은 검찰로선 식은 죽 먹기다. 대검의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분들이 밥 먹고 하는 일이 이런 식의 정무적 판단이다. 이들은 무엇이 검찰 조직에 유리한지, 어떻게 난관을 돌파할 것인지, 혹은 어떻게 프레임을 바꿀 것인지를 토론하고 실행하는 달인들이다. 지금 당장에라도 정치인 누구 하나 날리겠다고 마음먹으면 묵혀뒀던 파일 하나 꺼내 간단히 해치울 수 있다. 뉴스에 목마른 언론이 가세하면 정세나 여론 바꾸는 건 일도 아니다.


개혁 저항하는 검찰은 민주주의의 적


 깡패에게 조직은 확장된 가족이다. 미국 갱들의 패밀리, 한국 조폭이 식구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이들은 같이 벌어 같이 먹고 사는 이익공동체이며, 함께 살고 함께 죽는 운명공동체다. 조폭들도 나름의 정의감과 사랑이 있지만, 선한 감정은 패밀리의 담장을 넘지 않는다.


 개명한 한국 사회에서 조폭에 비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은 검찰이다. 전국적 조직을 갖고 있으며, 두목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전관예우라는 공통의 먹거리로 연결된 이익공동체이며,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되면 밥그릇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믿는 운명공동체다.


 아직 검찰 개혁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검찰에 힘이 쏠린 이유 중 하나인 구속 위주의 사법 관행 혁파, ‘유전무죄’ 사법 불평등의 다른 이름인 전관예우 타파, 검찰 전관예우의 밑바탕인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기소 대배심 도입 등 사법 민주화, 피의자 권리의 대폭 강화 등 중대한 개혁 과제가 남아 있다. 검찰 개혁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과 동의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 저항하는 검찰은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와 총선으로 어지러운 시국에 말을 보태는 이유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