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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황당한 고향사랑법(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9-19 15:08
조회
1606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들과 얘길 하다가 해외여행 얘기가 나왔다.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다 좋다고 한다. 넌지시 물어봤다. “일본은 어때? 온천 좋아하잖아.” 대답이 걸작이다. “에~이. 이 시국에 일본은 좀 그렇잖아?” 딱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웃고 말았다. 초등학생이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최근 한일관계는 확실히 좋지 않다.


 정밀한 분석을 할 만한 식견은 없지만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국가전략 차원에서 ‘일본판 햇볕정책’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북전략의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질적으로 바꿨듯이 그 대상을 일본으로 바꿔서 대입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일본과 전쟁할 것도 아니고 일본을 통째로 대서양으로 옮길 것도 아니라면 미우나 고우나 이웃으로서 ‘함께’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만든 정책”이라는 걸 최대한 돋보이게 해서라도 반대 여론을 일으키고 싶은 정책이 있다. 많은 이들이 고향사랑기부제, 속칭 고향세를 처음 들어봤을 줄 안다. 하지만 무려 국정개혁 100대과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문재인 정부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법률만 14개나 된다. 그리고 나는, 이 정책을 열렬히 반대한다.


 고향사랑기부제란 ‘개인이 특정 지방자치단체에 일정액을 기부하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부금 일부에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명분은 수도권·대도시와 비수도권·농어촌 지역 간의 재정 격차를 완화하고 농어촌 지자체의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지역균형 발전 대안이라는 이유다.


 이 제도의 원조인 아베 총리는 2008년 총선을 앞두고 ‘고향납세제도’를 발표한다. 자유민주당의 핵심 기반인 농어촌 지자체의 지지표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게 정설이다. 국내에서는 2007년 대선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공약으로 제안했다.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도 2007년 대선과 2010년 지방선거 공약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부작용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중도 폐기했다. 그랬던 걸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에 포함시키면서 수면 위로 올라와 버렸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고향을 사랑하고 고향을 돕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방재정 악화와 격차확대라는 오랜 현안까지 감안하면 고향에 일정액을 기부하고 세액공제 혜택도 받는 고향사랑기부제도는 뭔가 좋은 제도인 듯 보일 법도 하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라는 법은 없다. 결국 정치는 결과로 말하게 돼 있다. (그래서 내가 정치를 바라볼 때 가장 싫어하는 말 두 가지가 ‘진정성’과 ‘아름다운 패배’다.) 그런 면에서 고향세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이 제도에 대해선 이미 많은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이 문제를 취재하면서 지방재정 전문가 십여 명을 인터뷰했다. 찬성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반대 이유는 대체로 일치한다. 정책목표 달성의 불확실성, 세수안정성 훼손 가능성 등이다. 정책목표 달성의 불확실성은 한마디로 이런 거다.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제도를 도입한들 기부금이 쥐꼬리만큼밖에 안된다면 뭐하러 하느냐. 오히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지자체마다 기부금 액수를 늘리려 하면서 과열경쟁과 부정부패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미 일본에서 고향세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기부금에 대한 인센티브 차원에서 지자체가 기부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답례품이다. 일본에선 답례품 제공 비용이 고향납세 수입액의 80~90%에 이르는 곳도 있다. 아예 기부금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답례품 쇼핑몰도 등장했다. 지자체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노트북이나 골프용품, 심지어 부동산(토지)까지 답례품으로 등장해 중앙정부가 규제에 나서는 실정이다. 이미 일본 서점가에는 답례품을 재테크와 절세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 수십 종이나 된다.


 더 암울한 시나리오도 예상할 수 있다. 향우회를 동원한다거나 지자체 공무원을 동원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고향사랑기부금 실적과 답례품을 미끼로 활동하는 브로커가 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기부금 액수보다 관련 공무원 인건비가 더 나올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자신 있게 말하는데, 이 제도 도입하면 몇 년 안에 전국 시군마다 고향사랑기부제도를 담당하는 전담부서가 생기고 승진이나 성과평가와 연계될테다.


 고향사랑기부금 실적을 올리기 위해 답례품과 함께 등장하는 게 세액공제다. 하지만 이는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절세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일본에서 그렇게 됐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지방세 비중 확대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 재정분권 정책의 특성이 압축돼 있다. 대선 공약으로 등장하면서 공론화 과정이 생략됐다. 이제 답은 정해져 있다. 관료들은 그저 직진할 뿐이다. 지방자치단체, 특히 비수도권 농어촌 지자체는 제도 도입에 적극 호응하지만 수도권 지자체는 시큰둥하다. 이게 국가 차원에서 좋은 일일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들은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나에겐 내 고향보다 아들의 고향이 더 중요하니까 나는 서울에 기부하고 싶다. 5000만 인구 중에 서울 등 수도권이 고향인 사람이 못해서 수천만은 될 텐데 그들이 고향사랑 정신으로 ‘고향’에 기부한다고 해보자. 그럼 이 제도는 정책 목표를 달성한 것일까 아닐까. 관련 법률안들은 대부분 기부대상에 수도권 지자체는 빼버렸다. 그럼 이게 무슨 ‘고향사랑’인가. 고향사랑기부금 역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흘러가다가 나중엔 왜 출항했는지도 잊어버리게 생겼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