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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징병거부권 2001/12/06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0 10:47
조회
533

양심적 거부권


이재승(국민대 법대)

I. 양심이란 무엇인가?

양심은 한자어로 良心, 영어로 conscience, 독일어로는 Gewissen이다. 동양에서는
양심은 '바른 마음' 또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을, 서양에서는
'공통의 지식'을 연상시킨다. 그리하여 양심은 객관적으로 옳은 것, 두루 인정된
지식, 또는 바로 그것을 실현하려는 마음가짐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식으로 내용을 기준으로 양심을 정의하는 입장을 客觀說이라고 할 수 있다.
객관설에서는 객관적으로 옳은 '내용'에 이르지 않는 경우에는 양심을 자의로
판단한다. 헤겔은 법철학에서 '참다운 양심'과 '주관성의 극치로서의 양심'을
대비시키면서 양심을 사적 주체의 열등한 감정 정도로 비하시켰다. 만약 인간의
삶 속에서 객관적으로 보편타당하고 절대적으로 옳은 어떤 내용이 있다고
전제하고, 나아가 그 내용에 대한 판정권을 국가(법)가 보유한다고 가정한다면 그
아래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객관설은 이런 식으로 타락해서 결국
國家標準說이 된다. 이러한 파시즘 체제하에서는 인간의 양심이나 그 자유 따위는
무익하고 해로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는 종교전쟁과 시민혁명을 겪으면서
구식의 격분을 청산하고 대다수 헌법이 왜 종교, 양심, 사상의 자유를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 편입시켰는지조차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적인 양심상의 결정에 대한 판정기준은 양심적 결정의 진리, 즉 일반적인
법원칙, 도덕법칙, 일반적인 윤리적 의식, 추정된 가치질서 등과의 일치 속에서
발견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양심의 개별성, 양심의 자유와 자기법칙성은
부인될 것이다." 당연히 양심은 주관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양심은 곧
'자기양심'이다. 선악에 대한 판단은 결국 각자의 결정에 맡겨진다는 것이 양심에
대한 主觀說이다. 물론 주관설이 양심의 소리를 무제약적으로 관철시키려는 논리
그리하여 법질서의 모든 명령의 효력을 개인의 판정에 맡기는 무정부주의적
교리를 전파하는 것은 아니다.

양심의 자유도 일정한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출발점은
양심의 '내용적 진리'가 아니라 '개인'의 양심이어야 한다. 자유국가의
근본전제에 합당한 것은 주관설에서 말하는 양심뿐이다. 헌법재판소도 이러한
주관설에 따라 양심을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 정의하고, "세계관, 인생관, 주의, 신조 등은 물론 이에 이르지
아니하여도 보다 널리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
윤리적 판단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표면적으로 우리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는 양심개념을 주관설에 입각하여 정의하고 있으나 양심상의 의무와
법적인 의무가 충돌하는 경우마다 법적인 의무에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실제로는
국가표준설에 따르고 있다고 판단된다.


II. 양심적 결정은 다 정당화되는가?

1. 보편화가능성
양심적 결정에 입각한 행위가 정당화되려면 보편화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이
문제는 확신범과 양심수의 구별의 필요성과도 연결된다. 확신범은 기본적으로
앞서 말한 주관설에 입각한 개념이다. 법철학자 라드브루흐는 확신범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확신범개념의 요건은 확신의 존재, 특히 결정적 동기로서
의무확신이다. … 어디에선가 흘러 들어온, 나아가 스스로 심사하지 않는 생각,
누군가의 진지한 최초의 반론 앞에 자신감을 잃고, 제 스스로를 부인하고, 그
결론을 거부하고, 결과를 회피하려는 생각은 결코 확신이 아니다." 확신범은
'종교적, 정치적 또는 도덕적 이유에서 보다 높은 규범에 의무지워져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처벌법규를 위반한 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범을 윤리적으로
나아가 법적으로 정당화한다면, 형법전상의 어떠한 범죄도 양심적 결정에
입각하여 저지를 수 있다는 반론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의무확신의
내용을 전적으로 도외시한다면, 형법전이 금지하는 모든 것을 허용하는
대항형법전도 심정의 마술을 통해서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수한
주관설은 확신범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서는 용납될 수 없게 된다.
양심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각자의 양심이 명하는 바를 따를 의무이다. 그래서
양심상의 의무와 실정법질서가 명하는 법의무가 일치한다면 다행이지만, 타협의
여지없이 충돌할 수도 있다. 또 각개인이 양심의 내용으로 포섭하는 범위와
깊이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의 보장범위를 미리 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인간의 모든 행위를 양심의 자유로 설명하고 양심의 자유를
원용한 경우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법질서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양심적 결정을 이유로 국가를 전복하기 위하여
테러활동에 일삼은 자나 타인을 살해한 자는 양심의 자유를 원용할 수 없다.
여기에서 양심수(Gewissenst ter)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양심수 개념은 양심의
내용, 위반하는 규범의 내용이 보다 중점적으로 고려된다. 정당화이론이 되기
위해서 양심의 진지성뿐만 아니라 객관적 내용적 측면도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법에 위반한 양심수라도 윤리적 자기모순이 없는 경우에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양심의 내용이 윤리적인가, 비폭력적인가, 보편화가능한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보편화가능성이라는 척도는 다수의 지지나 실정법(국가표준)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보편화가능성을 충족시키는 방안은
국가법이 제시하는 단 하나의 가능성으로 한정되지 않고 인간의 삶에서 복수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편화가능성은 다원주의를 의미한다. 이러한 다원주의
입장에 설 때만 양심수는 '열등한 인간'이 아니라 단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정상화된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보편화가능성의 문턱을 전혀 넘을 수
없는 양심적 결정은 양심의 자유에 포섭될 수 없게 된다. 보편화가능한
양심내용에 입각한 행위는 결국 헌법상 양심의 자유권으로 옹호될 수 있을
것이다.

2. 양심의 자유는 열린 법치국가의 징표이다.
양심의 자유는 법과 양심이 충돌했을 때 문제된다. 양심에 따른 의무를 이행한
자는 그 처해진 상황과 사유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재국가에 있어서는 체제전복적인 저항권의 문제로, 민주적인 법치국가안에서는
체제보존적인 저항권문제로, 시민불복종의 문제로, 그리고 양심적 거부의 문제로
나타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양심적 거부는 열린 법치국가에서나 용납된다는
사실이다. 열린 법치국가는 헌법상의 기본권, 규범통제구조, 정당화사유,
양형단계, 사면권 등을 통하여 통상의 범죄자와 양심적 이유에 기한 법규위반자를
합리적으로 분별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차원은 스스로를 그저
유일하게 정의로운 체제로 망상하는 국가나 다수자의 민주주의와 그 귀결로서
실정법의 불가침성을 철칙으로 수용하는 닫힌 법치국가에서 전혀 작동되지
않는다. 그래서 양심의 자유가 의의를 가지며 정당화되는 곳은 열린
법치국가뿐이다. 부정의한 법질서는 정당한 정치적, 도덕적 도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가침성의 완화요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차원은
현행법질서의 정의보다 '더 높은' 또는 '다른' 정의의 존재가능성을 승인하는
법질서에서만 비로소 작동하는 차원이다.


III. 양심적 거부

1. 양심의 자유는 국가에게 법적 대안을 요구할 권리다
양심의 자유는 의무의 충돌문제이다. 법적인 의무간의 충돌이 아니라 법적 의무와
양심상의 의무가 충돌하는 영역이다. 때로는 법의 금지와 양심의 명령이
충돌하기도 하고, 법의 명령과 양심의 금지가 충돌하기도 한다. 양심에 입각한
행위는 본질적으로 법의 금지와 명령에 대한 거부행위로 나타난다. 특히 양심적
거부가 문제되는 상황은 양심상의 의무와 실정법상의 고지의무, 범죄자비호금지,
취학의무, 납세의무, 접종의무, 선서의무, 구조의무, 병역의무, 사죄의무 등이
충돌하는 경우이다. 물론 법규위반이 명령의 위반이냐 금지의 위반인가는 법원이
양심의 자유에 우호적일 때에는 중요하지 않겠지만 양심의 자유에 적대적일
때에는 구별할 필요가 생긴다. 똑같이 양심상의 의무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양심은 명령하고, 법이 금지하는 경우"보다 "양심은 금지하고, 법이 명령하는
경우"가 좀더 우호적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최소한 양심에 반하는 작위의무로부터
해방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우리 헌법학설은 병역의무의 문제와 관련하여 법과 양심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양심의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입장에 가깝다. 허영 교수는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무를 규범조화적으로 해석하면 병역거부권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권녕성 교수도 실정법의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병역거부권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 헌법학설은 양심의 자유를 제1단계 양심결정의 자유, 제2단계
침묵의 자유 또는 양심을 지키는 자유, 제3단계 양심실현의 자유로 나누고 있다.
헌법학설은 대체로 3단계의 실현의 자유에 있어서는 내재적 한계나 법률에 의하여
제한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기장만으로 처벌하는 경우,
충성선서, 십자가 밟기와 같은 중세풍의 처벌행태는 양심의 자유에 반하지만, 그
밖의 법명령에 따르지 않는 양심실현행위는 제한된다는 것이다.

만약 법의 명령 안에서만 양심의 자유가 인정된다면, 양심실현의 자유는 합법적
양심에게만 인정되게 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국민의 자유가 인정된다면
헌법에서 말하는 자유는 전혀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양심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언제든지 가능하고 언제나 정당화된다는
논리에 가깝다. 그렇다면 위헌법률이라는 개념도 설명할 길이 없고 헌법도 설명할
길이 없다. 나아가 헌법학설은 양심의 자유가 외부에 실현되는 경우에 그것을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지만 어느 경우에 얼마만큼 제한하는 것이
좋은지,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헌법에 합치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침묵하고 있다.

필자는 우선 3단계 구분법에 따라 실현단계에서는 광범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헌법학설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양심은 국가가 타격할 때마다
실현을 강제당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타격의 강도이다. 인간의 내면에
깊숙이 침투하는 법은 바로 그럼으로써 개인으로 하여금 양심을 작위의 형태이든
부작위의 형태이든 실현을 강요한다. 그래서 양심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항상
제3단계에서만 문제되고 거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思想轉向書를
작성하지 않으면 가혹한 징계를 예정하는 행형규칙이 있다고 치자. 공무원은
전향을 요구할 권리를 보유하게 될 것이다.

이에 반해 관련범죄자가 사상을 유지하고 싶다면 전향서를 작성하지 않을 것이며
그리하여 그는 부작위에 의한 양심실현행위를 한 셈이고 이제 징계를 당해도
마땅한 상태가 된다. 헌법학설이나 판례에 의하면 부작위에 의한 양심실현행위도
실현행위이니 제한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는
헌법학자들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실현행위이냐 아니냐는
아무 의미가 없다. 모든 양심을 실현하도록 법이 강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기준은 양심과 내심에 대한 법의 침해 내지 충돌의 정도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양심의 자유는 본래 양심상의 의무와 법률상의 의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만
문제된다. 실제로 앞의 헌법학설에 따른다면 보호되어야 할 양심은 존재할 수가
없다. 우리가 문제삼는 것은 양심과 충돌하는 법―실제로 모든 법이 양심의
자유와 관련을 맺는 것이지만―이 적절한 가이다. 규범간의 갈등상황에서 어느
일방을 편들거나 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고 해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태도이다. 우리헌법은 열거되지 않는 권리도
국가에게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제10조 2문 및 제37조
제1항).

양심상의 의무는 실정법의 요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헌법은 왜
양심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법의무와 양심간의 갈등을
최소화하라는 요구이다. 그 최소화의 비용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 귀착되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는 국가로 하여금 양심에 반하지 않는 법적 대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즉 양심의 자유는 결국 양심에 반한
법명령을 대신하여 양심에 중립적인 또는 양심에 합치하는 법적인 대체수단의
요구권을 의미한다. 규범조화적 해석이나 헌법상의 비례원칙을 통해서 대체수단의
요구권을 양심의 자유의 핵심적 원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법의 요구와 양심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이 있을 때에는 그에 따르도록 해야 하지만
대체수단이 없을 때에는 보편화가능한 한에서 당연히 양심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 형벌을 과하는 것은 인간존엄에 대한
침해행위이다.

2. 양심적 거부는 소수자의 인정투쟁(Anerkennungskampf)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양심에 따라 법명령을 이행할 것인지에 대하여 각자가 자유를
누리고 그에 따른 행동이 언제나 정당화된다면 법질서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만연해 있다. 병역거부권이 인정되면 모두가 군대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체험에 반한다. 양심의 자유는 현실적인
의미내용에서 보자면 특정한 사회에서 지배적인 다수자집단의 의무관 또는
윤리관으로부터 유래하는 과도한 동조압박에 직면하여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법률적 차별의 위험에 노출된 소수자의 문제이다. 마치 양심의 자유가 일반대중적
현상을 규율하는 것으로 전제하는 헌법해석은 양심의 자유의 사회적, 심리적
기초를 오해한 것이다.

사실 법질서는 다수자(평균인)의 지배적 도덕관념에 입각한 것이다. 소수자는
언제나 다수자의 지배적 도덕으로부터 압박을 당하는 상태에 있다. 즉 양심상의
의무와 법적 의무, 도덕과 법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과 도덕이, 즉
다수자의 양심(지배도덕)과 소수자의 양심이 충돌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적 의미에서 보자면 양심의 자유는 만인의 양심의 자유라기보다는
소수자가 다수자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유린당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한다.
일생을 다수자의 세계관에서 살아온 사람은 양심적 거부의 문제를 별난 취향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수자인 것이다. 다수자는 이러한 전제 위에서
너그럽게 寬容을 말하지만 소수자에게는 인생 그 자체가 걸린 문제이다. 양심적
거부권은 소수자가 자신의 삶을 법=민주주의=다수자에게 유린당하지 않을 최소한
권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적 거부는 다수자로 하여금 소수자의 생활형식을
인정하도록 하는 투쟁고리인 것이다. 소수자가 거부권을 인정받는 경우에 비로소
그들은 국가시민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고 국가로 통합된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그들은 다수자들만의 국가안에서 자연상태의 인간으로 배제되기에 이른다.


양심적 거부의 문제는 법=민주주의=다수자지배의 절대적 불가침성에 대한 정당한
완화요구이다. "실정법의 무제약적 효력은 실정법적인 진리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갖 실정법적 진리일 뿐, 그래서 아직도 진리는 아니다." "그리하여 모든
실정법이 절대적 효력을 가진다는 것을 각 개인에게 납득시킬 수는 없다. 만일
현실적인 것이 철저하게 가치와 효력을 가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기적일 것이다."
"의무확신들이 투쟁하는 곳에서는 正義가 독선이고자 하지 않는다면, 투쟁하는
자의 입장을 배제하지 않는 현자의 태도가 그 정의에 덧붙여진다." 이것을
포괄적으로 人間性의 이념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결국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의 정답만을 믿는 닫힌 민주주의에서 소수자의 생활형식을 인정하는 열린
법치국가로의 長征이다.

라드브루흐 발언을 다시 한번 원용하자면, "우리나라 헌법의 정신은 두 가지
원칙으로 환원될 수 있다: '다수가 결정한다'는 민주주의적 공식과 '이단자를
존중하라'는 자유주의적 원칙. 이단자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천상의 계시도 없는 세상에서, 천상의 재가가 아니라 고작 다수의 의지에 불과한
인간의 재가만을 원용할 뿐인 그러한 세상에서 이러한 두 원칙은 만인의 동의를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3. 대안적 의무는 평등원칙에 부합해야 한다.
필자는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기본권의 과도한 침해로서 위헌적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국가는 병역거부자에 대해서 좀더 문명적인 대체수단을
마련해야 할 의무를 진다. 물론 양심의 자유와 법명령이 충돌하는 모든 경우에
대안을 제시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온갖 대상이나 상황이 개인적인 양심의
내용에 따라 양심과 연관성을 갖기 때문에 그 모든 경우에 국가가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양심의 자유와 법명령이 진지하게 충돌하는
병역의무와 같은 문제영역에서는 바로 국가의 대안제시의무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입법부는 신속하게 대체복무법을 마련해야 하고, 대체복무법이
없다하더라도 헌법재판소는 병역법에 대하여 일부위헌판결을 내려야 하고,
개별법관은 양심적 거부행위를 헌법상의 기본권행사로 해석하여 합법적인 행위로
판결해야 한다.

다음으로 대체수단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하는가는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흔히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은 특정한 종교집단에 대한 특혜라거나 대다수의 청년이
군에 가는데 양심적 이유로 거부하는 것 자체가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양심적 거부권은 양심상의 의무와 법의 명령간을 피할 수 없는 충돌을
겪는 사람에게만 인정되는 권리이므로 이를 특혜라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든지
그러한 진지한 갈등을 겪는다면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병역거부권을 행사하는 그룹은 소수종파이다. 이들이 형사처벌을
면한 결과 군필자보다 사회적 출세구조에 영합하여 승승장구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혹자는 대체복무기간을 군복무의 2배 정도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양심적 결정의 진지성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는 대체의무가 기본적인
병역의무보다 무거운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이러한 주장은
평등원칙에 반하는 근거없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독일기본법은 대체복무와
관련해서 대체복무는 병역의무보다 장기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기본법
제12조a 제2항 2문). 군복무가 징역살이에 준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도 반드시 개선해야 하겠지만, 대체복무를 징역에 갈음하는 가혹한
내용의 장기간으로 설정하려는 견해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공동체를 위한
봉사는 형벌이나 징계의 의도에서가 아니라 봉사의 의도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의무는 臣民性이 아니라 市民性에 기초해야 한다. 그래서
기간, 업무의 난이도를 고려하여 대체복무는 군복무와 동등한 정도의 부담으로
국한되어야 한다.


IV. 독일에서의 병역거부권과 민간봉사제도

1. 병역거부권의 역사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정치적 권리로 제시한 것은 영국의 수평파가 처음일 것이다.
양심적 반대자에 대한 비무장 대체복무의 인정은 1661년 매사추세츠 그리고
1673년 로드아일랜드에서 시작되었다. 1757년에는 펜실바니아에서 퀘이커교도와
메노나이트파에게 군복무를 면제시키고, 민간봉사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같은
해에 영국의 피트 내각은 병역대행인에 대한 비용대납을 조건으로 퀘이커교도에게
병역을 면제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이와 같이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발생과정에서
보면 종교적 신념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독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도입된 계기도 종교적 이유에서였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메노나이트파에 대한 은전령(恩典令)」이 첫 번째 사례이다. 이 규정은
프로이센에서 일반적인 병역의무를 도입한 병역법(1914)이 시행된 이후에도
원칙적으로 적용되었다. 이후 1867년에 북독일연방에서 병역법이 제정됨에 따라
모든 시민은 병역의무를 지게 되었다. 그러나 1868년의 내각령은 다시
메노나이트파들에게 비전투원으로서 대체복무를 수행하도록 허용하였다.
일차세계대전의 패배 후에 성립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인하여 병역의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할 필요도
없었다. 반면에 1935년 병역법을 통해 개병제를 도입한 나치제국에서는 병역은
독일국민에 대한 신성한 직분으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종교집단, 즉
재세례파(메노나이트파), 여호와의 증인, 퀘이커교도, 형제단, 왈드교도,
나사렛파, 재림파, 침례교도에 대한 박해는 극단적인 양상을 띠었다.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군형법에 의하여 사형이나 징역형에 처해졌으며, 강제수용소와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재산도 몰수당하였다.

나치제국의 패망 이후에 새로운 민주적 법치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우선
주차원에서 병역거부권을 헌법과 법률에 명시하였다. 병역거부권은 당시
반전평화의 분위기 속에서 전쟁방지의 법적 수단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평화주의 정신은 1949년에 제정된 서독의 기본법 제4조 제3항의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제26조의 침략전쟁금지규정 속에 희미하게나마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기본법에 명시된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냉전구도하에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전후에 설립된 북대서양조약기구에 1954년에 뒤늦게 가입한 서독은
동구사회주의 블럭에 대한 옹벽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독은
기본법제정시에 병역의무를 예정해 놓기는 하였지만 1956년 기본법
제7차개정법(제12조)을 통하여 이를 명문화하였고, 동시에 병역법을 도입하였다.
아울러 1960년에는 대체복무의 범위와 역할을 상세하게 규정한 민간봉사법도
마련하였다. 동법의 위헌성문제와 관련하여 연방헌법재판소는 일반적
병역의무뿐만 아니라 민간대체복무도 헌법합치적이라고 선언하였다. 의회는
1968년에 기본법의 17차개정(제12a조)을 통하여 종래 기본법 제12조의 내용을
수용하면서 편제를 정리하였다. 나아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규정한 병역법
제25조를 모태로 하여 1983년에 양심적 병역거부법이라는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병역거부권과 민간봉사제도에 대한 법제를 완비하였다. 현재
병역거부와 민간봉사를 규율하는 법제는 앞서 말한 독일기본법 제4조, 제12조,
제12a조, 병역법, 병역거부법과 민간봉사법이다. 병역거부법은 기본적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병역거부권의 행사절차, 즉 병역거부인정절차를 규정하고 있으며,
민간봉사법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된 자가 이행하게 될 민간봉사의 범위,
활동, 비용 등의 문제를 규율하고 있다.

2. 병역거부권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독일기본법 제4조 제3항―누구든지 양심에 반하여 군복무를
강요당하지 않는다―에서 독자적인 기본권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이는 양심의
자유의 특수한 경우로 이해된다. 기본법이 병역거부권을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권리로 확정해 놓았기 때문에 이러한 권리를 행사하는 데에 독자적인
입법이 필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인 병역의무와 대체복무가 기본법에
도입되고 병역법이 시행되자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보호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심각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다음의 설명은 법원의 입장을 중심으로 간추린
것이다.

1) 진지한 결정으로서 양심적 결정
양심이란 관련된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작위 또는 부작위의 명령을 부과하는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 또는 의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행위결정에 있어서 그러한
인식이나 의식에 구속되는 사람만이 양심적 이유로 행동하는 것이 된다.
헌법재판소의 견해에 의하면, 기본법 제4조 제3항의 양심적 결정이란 특정한
상황에서 개인이 자기자신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의무로 체험하는 바, '선'과
'악'의 범주를 지향한, 윤리적으로 진지한 결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법원은
양심의 내용적 기준에 대해서는 단념하고 소극적이고 주관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양심은 신과의 관계에서만, 신의 명령 하에서만 또는 특정한 세계관
안에서만 상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중립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서유럽국가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관련하여 종교는 더 이상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비록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일정한 종교집단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점은 분명하지만 특정한 교파의 신자라는 사실은
병역거부권의 행사요건이 아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당연히 일정한 가치관에
절대적으로 구속될 수 있다. 그래서 양심의 의미는 일상언어적으로 이해될
따름이여, 양심의 개념, 본질, 기원에 대한 신학적 철학적 이론과의 고차원적인
논쟁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

양심적 결정의 내용적 기준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병역을 거부하는
개인의 주관적 양심만이 결정적이다. 객관적 척도에 입각하여 양심을 평준화하는
것은 양심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행사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양심적 결정에 어느 정도 관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판례에 의하면 이 경우 법원은 양심적 결정을 어떤 의미에서이든 '오류에
찬 것', '바른 것'과 '그릇된 것'으로 분류하거나 평가할 권한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법원의 심사는 양심적 결정의 배후에 있는 양심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에까지는 확장될 수 없고, 고작해야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진지한 양심적
결정을 내렸는가를 확인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될 뿐이라는 것이다.

2) 전쟁의 절대적 거부
기본법에 포괄적으로 선언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구체화한 구병역법 제25조(현재
병역거부법 제1조)가 독일과 외국 사이에서 발생하는 '온갖' 전쟁을 거부해야
한다고 한정하자 동법률의 위헌논쟁이 촉발되었다.

판례에 의하면 인간생명의 말살에 대한 윤리적 거부로부터 출발하여 전쟁에서
무기로 인간을 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 모든 행위를 거부하는 사람만이
병역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일과 외국사이에서 발생하는
'온갖'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에만 이러한 요건이 충족된다. 거부는
절대적인 거부이어야 하지 '상황에 따른 거부'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한 전쟁(석유를 놓고 싸우는 걸프전쟁, 동족간의 전쟁, 민병대와의 전쟁),
특정한 무기를 사용하는 전쟁(핵전쟁), 특정국가와의 전쟁, 특정한 상황하에서의
전쟁(독재국가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원리적인 거부가
아니므로 병역거부자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판례에 의하면 방어전쟁의
정당성을 시인하거나 방어전쟁에의 참여의사를 지니면서 병역거부를 하는
경우에도 병역거부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정도의 의식,
예컨대 국가간의 분쟁해결수단으로서 전쟁에 대한 일반적인 혐오정도로는 양심적
결정으로 충분하지 않다. 독일군대를 독일이외의 지역에 투입할 가능성만으로
병역거부자로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합헌판결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견해는 모든 전쟁을
거부해야 한다는 규정은 여전히 위헌적이라고 한다. 이들은 상황에 따른 거부도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만이 양심적 결정의 다층성과 개별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병역법 제25조와 헌법재판소의 입장은 양심적
결정의 무제약성을 살인금지명령의 획일적 적용으로 오해한 나머지 오로지
'독단적 평화주의자'만을 보호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양심적 결정이 일관성을
가져야 하는 것은 자명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은 양심의 본성에 반한다고 판단된다. 기본적으로 양심적 결정은 특정한 상황과
관련해서 이루어지고, 상황의 구체적인 차이를 식별해냄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양심을 도야시키게 된다. 그리고 인간생명의 말살을 목표로 하는 전쟁과
병역이라는 심각한 문제영역에서는 그 차별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판례에 의하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되기 위해서 일체의 폭력을 거부해야 할
필요는 없다. 경찰에 의하여 적법하게 행사되는 폭력을 긍정하는 태도도 양심적
근거에 입각한 병역거부와 모순되지 않는다. 또한 긴급상황의 경우나 타인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을 제거할 목적으로 인간에게 사망을 야기할
수도 있는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자세도 양심적 근거에 입각한 병역거부와
모순되지 않는다.

3) 거부대상으로서 병역
독일에서 병역은 크릭스딘스트(Kriegsdienst)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전쟁복무를
의미한다. 의문의 여지없이 전쟁복무는 병역에 포함된다. 한편 평화시의 군복무는
병역에 포함되는지 문제될 수 있다. 그러나 연방헌법재판소는 적절하게 병역은
전쟁복무 뿐만 아니라 평화시의 군복무까지를 포함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기본법 제12a조 제2항도 전쟁복무와 평화시의 군복무를 동일하게 병역으로
취급하고 있다.

한편 기본법 제4조 제3항이나 병역거부법 제1조는 거부대상인 병역을 '무기를
휴대한 병역(Kriegsdienst mit der Waffe)'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의
의미는 직접 살상무기를 휴대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으며, 상명하복의 군대조직과
복잡한 현대무기체계의 특징을 감안하여 전체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직접
살상무기를 휴대하지 않고, 직접 살상행위를 목표로 하지는 않지만 기술적 상태에
따라 살상을 야기하는 무기의 투입에 연결되어 있는 활동도 당연히 병역에
해당한다. 후방의 레이더부대에서의 복무가 여기에 해당한다. 나아가 통상적으로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부대, 즉 후송부대나 위생부대가 있다. 이것들도
살상행위를 목표로 하는 군대조직전체의 일부분에 해당하므로 그러한 부대에
근무하는 것도 당연히 병역에 해당한다. 기본법도 대체복무는 연방군대 바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병역을 군대조직과 연결시키고 있다(기본법
제12조a 제2항 3문 및 병역거부법 제1조). 그러므로 직접 총기를 휴대하는 병역은
거부하지만 여타의 군복무는 이행하겠다는 의사는 병역거부로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4) 민간봉사의 거부
독일의 실정법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된 자에게 민간봉사를 이행할 의무를
부과시키고 있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된 자 중에서 아주 드물게
민간봉사까지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사람을 완전거부자 또는
이중거부자라고 하는데, 법원은 독일기본법 제4조 제3항과 병역거부법 제1조의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민간봉사의 거부권까지 포함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완전거부의 문제는 확립된 판례와는 달리 여전히 다투어지고 있다. 제4조
제3항(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목적은 국가적인 봉사의무전체에 대하여 양심의
자유의 효력에 한계를 설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양심의 자유의 효력을
강화시킨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4조 제1항(양심의 자유)과
제3항(양심적 병역거부권)에서 운위되는 양심이 내용상 동일한 것이고,
민간봉사를 거부하는 데에 제4조 제1항을 원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병역거부자에게 민간봉사를 강제하는 것은 기본법 제4조 제1항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현재로서는 병역거부자로 인정된
자가 만약 민간봉사마저 거부하는 경우에는 민간봉사법 제53조(무단이탈죄)에
따라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5) 병역과 민간봉사의 관계
연방헌법재판소는 병역거부권은 병역의무자에게 병역이나 민간봉사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적 이유에 기하여 기본법 제4조
제3항에 보장된 기본권을 행사하려는 병역의무자에게만 인정된다고 판시하였다.
기본법 제12a조 제2항의 규정을 보더라도 병역의무는 일차적인 의무이고,
민간봉사는 양심에 입각한 병역거부라는 특수경우를 대비한 대체근무라는 점이
드러난다. 기본법 제4조 제3항은 추가적으로 일정한 양심적 결정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두 가지 복무방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청인이 단순히 민간봉사를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는 민간봉사자격이
부여되지 않는다. 따라서 민간봉사는 보충적인 의무가 아니고 오히려 이질적인
의무라고 이해된다. 그러나 오늘날 병역의무자의 3분의 1정도가 민간봉사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의식에서는 이미 하나의 선택지로 수용되고 있다.

3. 병역거부자인정절차

병역거부자인정절차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로, 병역미필자에 대해서는
연방민간봉사청이 서면심사절차를 진행한다(병역거부법 제4조 제1항). 둘째로,
예비군, 군인, 입대예정자 또는 재신청인들에 대한 인정절차는
병역거부사안심사위원회에서 이루어진다(동법 제9조 제1항). 위원회에서도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면절차로 결정한다.
흥미로운 것은 연방민간봉사청과 병무청―산하 병역거부사안심사위원회―이
조직상으로 별도의 기관이라는 점이다. 연방민간봉사청의 상위기관은
연방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이며, 병무청의 상위기관은 국방부이다. 그리하여
연방민간봉사청은 순수민간인(병역미필자)의 신청을, 병역거부사안심사위원회는
군인 또는 군인에 준하는 자의 신청을 관할한다. 그러나 병역거부자로 인정되지
못한 자는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관계로 병역거부법은 양기관의 협력관계를
명시하고 있다. 어쨌든 인정절차에 적용되는 원칙은 어느 기관에서나 동일하다.

1) 신청서류
아래 형식요건은 연방민간봉사청의 서면절차에서 특히 필요하다. 왜냐하면
연방민간봉사청은 완비된 신청에 대해서만 결정하기 때문이다(동법 제5조
제1항).

(1) 신청서
병역거부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청서를 지방병무청에 제출해야 한다.
지방병무청은 접수창구역할을 하며 병역미필자의 신청에 대해서는 심사할 권한이
없으므로 연방민간봉사청에 이를 송부한다. 신청서에는 기본법의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원용하는 문구가 들어있어야 한다(동법 제2조 제2항 2문). 그러나
그 형식이 반드시 확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전체적으로 그러한 취지를 담고
있으면 족하다.

(2) 이유서
양심적 결정의 동기에 대한 해명은 인격적이고 상세한 것이어야 한다(동법 제2조
제2항 3문). 이유서의 어휘선택, 제목, 형식 등은 정해져 있지 않다. 신청인은
당연히 양심적 결정을 이미 내리고 있어야 한다. '인격적'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법률은 불변적인 인격체로서 신청인을 염두에 두고 해명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신청인은 스스로 양심적 결정과정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단순히 귀동냥한 것을
반복하거나 일반적인 해명에 그치는 것은 인격적 해명이 아니다. '상세한'이라는
표현도 사실 불확정적이다. 헌법재판소는 신청인의 교육수준을 상세함을 평가하는
데 고려하고 있다. 그래서 대입자격시험을 마친 사람에게 그 이하의 교육을 받은
사람보다 상세함을 더 요구할 수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 보기에 이유서가 너무나
짧은 경우라면 상세한 이유서라고 할 수 없다. '상세한' 그리고 '인격적인'이라는
용어가 너무 막연하고 불확정적이어서 문제되었으나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표현이
법치국가적 명확성의 원칙이나 행정의 합법률성, 권력분립의 원리, 실효적인
권리보장원칙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개별신청인들의 동기는 매우 다를 수 있으며, 종교적, 윤리적 또는 인도적
근거들이 원용되기도 한다. 병역거부사유로서 학교교육, 가정교육, 폭력체험,
친척이나 친구의 사망, 전쟁체험에 대한 가족의 이야기, 유태인강제수용소방문,
영화도 자주 원용된다.

(3) 이력서
신청인은 상세한 이력서를 제출해야 한다(동법 제2조 제2항 3문). 이력서는
시간적 공백없이 삶의 중요한 날들을 기록해야 한다. 이력서를 단순히 표로
만들어 제출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병역거부와 관련있는 사항들이 반드시
이력서에 포함되어야 한다.

(4) 신원증명서
병역거부신청서는 관할시청에 신청한 신원조회서를 구비해야 한다(동법 제2조
제2항 3문). 신원조회서는 제출시점에서 3개월 이내의 것이어야 한다.

2) 인정절차
(1) 연방민간봉사청
병역미필자의 신청에 대해서는 연방민간봉사청이 결정한다. 연방민간봉사청은
서면절차에서 신청서가 완비되고, 제시된 동기가 병역거부권의 근거로 합당하고,
신청인의 전체상황이나 연방청에 알려진 여타사실이 신청인의 기재사항의
진실성에 의문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경우에 신청인을 병역거부자로 인정한다(동법
제5조 제1항 3호). 사실에 대한 기재사항에 의문이 있는 경우에는
연방민간봉사청은 신청인에게 이를 보충하거나 입증할 기회를 부여한다. 연방청은
그 이상의 사실규명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동법 제5조 제2항). 의문이 계속 남아
있는 경우에는 연방청이 직접 결정하지 않고 지방병무청으로 송부하며
병역거부사안심사위원회가 이를 결정한다. 연방청은 신청서가 완비되지 못하고,
제시된 동기가 병역거부의 근거로 합당치 않고, 신청인에게 보정을 명한 4주
이내에도 신청서를 보완하지 않는 경우에는 신청을 기각한다(동법 제6조 제1항).


(2) 병역거부사안심사위원회
예비군, 군인, 입대예정자 또는 재신청자의 인정신청에 대해서는 심사위원회가
결정한다(동법 제9조 제1항). 위원회는 위원장 1인과 배석위원 2인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법관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동법 제9조 제2항). 위원회는
병역거부결정이 기본법 제4조 제3항의 양심적 결정에 입각한 것이라는 확신에
이르는 경우에는 병역거부자로 인정한다(동법 제14조 제1항 1문). 위원회는
원칙적으로 서면으로 심사한다. 위원회가 양심적 결정이 존재한다는 점에 대한
확신을 제출된 서류로부터 얻지 못하는 경우에는 위원회는 신청인에 대한 개인적
청문을 개최한다. 위원회가 신청을 기각하는 경우에는 개인적 청문을 거쳐야
한다(동법 제14조 제2항).

(3) 불복절차
연방민간봉사청의 기각결정에 대해서는 이의신청을 할 수 없고(동법 제17조),
이에 대해서는 기각결정 후 1개월 이내에 신청인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뿐이다(동법 제19조). 연방민간봉사청의 인정결정에
대해서는 다툴 수 없다. 병역거부사안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대해서는 결정후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제기해야 하며, 이에 대해서는 병역거부사안심판소가
결정한다(동법 제18조 제1항). 심판소의 결정에 대해서는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동법 제19조).

3) 병역거부자인정실태
징집대상자중에서 병역거부자의 비율은 점차 증가하여 현재에는 전체병역의무자의
30%에 이른다.


병역거부인정신청의 인정결정비율도 매우 높다. 연방민간봉사청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1984년부터 2000년 6월 사이에 총 1,588,283건의 인정신청에 대하여
1,390,359건의 인정결정이 내려졌다. 총신청건수에서 88.76%가 병역거부자로
인정된 것이다. 1984년에는 34,359신청건수에서 23,929건의 인정결정이
이루어지고, 독일통일이후에 신청은 급증하였다. 최근 1999년에는 155,929
신청건에 대하여 133,638건의 인정결정이 내려졌다. 연방민간봉사청의 발표에
따르면 실제 병역거부자 인정비율은 90%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기각결정의
대부분은 형식요건의 미비로 인한 것이다.
예비군, 군인 또는 입대예정자의 신청과 연방민간봉사청이 이송한 신청에
대해서는 병역거부사안심사위원회가 인정절차를 개시한다. 그리고
연방민간봉사청, 병역거부사안심사위원회, 동심판소의 기각결정에 대해서는
행정법원이 관할한다. 이러한 부수적인 절차에서도 80%이상의 신청자가
인정결정을 받는다.

4. 민간봉사제

1) 민간봉사영역
병역거부자로 인정된 자는 민간봉사를 이행할 의무를 진다. 민간봉사법 제1조는
"민간봉사에 있어서 인정된 병역거부자는 우선적으로 사회적 영역에서 공익에
기여하는 업무를 이행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에서 공익은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된다. 사회적 영역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 배려, 보호, 간호 및
원조상황의 배제 또는 예방을 내용으로 하는 인간의 활동영역을 의미한다.
우선적으로 사회적인 영역에서 봉사한다는 규정 때문에 전통적으로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민간봉사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표2 참조).

민간봉사자는 인정받은 민간봉사자고용기관 또는 민간봉사단체에서 민간봉사를
이행한다(민간봉사법 제3조). 민간봉사자고용기관은 국가의 공공행정을 시행하는
것이므로 연방민간봉사청의 인정결정을 받은 경우에 한한다(민간봉사법 제4조).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권리주체로 있는 영조물(시립병원,
대학병원, 환경보호소)이나 공법상 법인인 종교단체가 권리주체로 있는 영조물은
자신의 기관이 공익에 이바지한다는 점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사법상의 영조물도
민간봉사자고용기관으로 인정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세법상의 공익성 내지
공익법인으로서 성격이 중요하다. 나아가 민간봉사의 대체수단으로 민방위와
재난구호활동(동법 제14조 제4항), 개발봉사(동법 제14a조 제3항),
해외평화봉사(동법 제14b조)를 이행할 수 있다. 이 경우 모두 민간봉사보다
장기간의 봉사를 요한다. 민간봉사가 병역거부자의 의무라는 점 그리고
병역거부자로 인정된 자는 국가가 지정한 곳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점은 이 제도의
강제적 성격을 드러낸다. 그래서 드물지만 병역거부자로 인정된 자 중에서
민간봉사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민간봉사법은 완전거부자를 위하여 1969년에
'자발적 근로제'를 도입하여 스스로 적절한 봉사활동을 선택하여 수행하도록
하였다. 이 경우 자발적 근로기간은 민간봉사보다 1년 이상 장기간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규정의 도입목적은 여호와의 증인의 민간봉사거부사태를
규율하려는 것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일반적인 규정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민간봉사에 종사하는 자의 수가 90년 들어 폭증하고 있으나
민간봉사일자리의 숫자도 항상 민간봉사자의 숫자를 상회하고 있다. 90년 들어와
매년 15만 명 정도의 민간봉사자가 있었고, 18만 개 정도의 민간봉사자의
일자리가 제공되고 있다. 그리고 민간봉사자의 활동의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전국각지에 민간봉사학교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2) 민간봉사기간
기본법은 민간봉사기간이 군복무기간보다 길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기본법 제12a조 제2항 2문). 그러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군복무기간은
10개월이며, 민간봉사기간은 11개월이다. 2002년부터 군복무기간은 9개월로,
민간봉사기간은 10개월로 단축될 예정이다. 군복무는 제대 후에도 소집가능성이
있으나 민간봉사는 일회의 근무로 소집이 면제되므로 1개월 정도 긴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민간봉사와 군복무의 부담을
비교하여 입법자가 민간봉사기간을 장기로 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민간봉사제를 도입하고 있는 유럽국가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민간봉사기간이
군복무기간보다 장기간이다.

표3. 유럽각국의 군복무기간과 대체복무기간의 비교
*국가명 다음 (종)은 종교적 사유만을 거부근거로 인정하는 국가임


3. 민간봉사비용
민간봉사법 제35조 제1항은 별도의 규정이 없는 한 군복무자에 대한 규정을
민간봉사자에게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민간봉사자에 대한 급료, 비용, 비품은
민간봉사자고용기관이 직접 지급한다. 민간봉사자고용기관은 지출액 중에서
상당부분을 국가로부터 환급받는다(동법 제4조). 근무월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개략 월평균 40만원 정도의 급여, 제대시에 90만원 정도의 퇴직수당을 받고 있다.
2000년도 한해동안 독일정부가 민간봉사활동과 관련하여 지출한 예산은 27억888만
8천 마르크(약 1조4천억원에 해당)에 이른다.


V. 맺음말

병역거부의 문제야말로 양심과 국가이성이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사례일 것이다.
법과 민주적 다수결원칙은 소수자의 근본적 권리에 대해서는 자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적 다수결원칙과 소수자의 근본적 권리간의 갈등을 인정하는
나라에서는 이 문제를 헌법상의 기본권의 문제로 고민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 나라는 이를 간단히 형벌의 문제로 처리한다. 사실 한계영역은 이질성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영역이다. 세상의 모든 한계영역을 거부하는 조직이나 국가는
거대한 사교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히틀러 제국은 아마 그 전형적인 경우일
것이다. 50여 년 간의 우리 법치국가 역시 이러한 한계영역을 들락거리며 그 모든
권력을 심정테러 위에서 수립했다는 사실을 그 누가 깨끗이 부인할 수 있을까.
자유의 나라였다면 법정에서 병역을 거부하기 위해서라면 30년이라도 감옥에
있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이 어찌 있을까.

병역거부는 평화주의적 확신에 입각한 것으로 스스로 의문에 싸이지 않고서는 그
정당성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영구평화를 보장하는
국가연합이나 세계국가가 등장하지 않는 한에서는 국가이성의 견지에서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갈등이 야기되는 곳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매우 판이할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분단상황, 전쟁체험,
쓰라린 군대체험, 위법적인 병역기피사례들, 마지막으로 애국심이 처절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영국은 1차세계대전의 와중에 병역거부법을 제정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나라가 병역거부권으로
인하여 무방비상태로 전락해서 패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병역거부권의 인정은 국가가 수호해야 할 가치를 재충전하고 공동체를 강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여러 차례 감옥 대신에 대안적 복무제도를 도입하라고
촉구하였다. 병역거부권이 인정되면 남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되는데
이것은 부수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병역거부자에게는 여전히 동등한 부담을
지우기 때문이며, 병역거부권이 인정되어도 여전히 양심적 결정에 의하여 병역을
이행할 사람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를 보면
대체복무의 비용과 급여를 국가가 부담하고, 나아가 간단한 절차에 따라 신청자의
90%를 병역거부자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70%의 다수는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필자는 독일사람들이 더 애국심이 강하고 정부정책에 더 동조적인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문제는 병역거부권의 남용으로
인하여 야기될법한 국방력의 공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 더구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의 양심을 도대체 인정하지 않으려는 국가이데올로기 자체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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