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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서 인권을 말하고 실천하기] 유네스코 교사연수 강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0 10:58
조회
543

우리사회에서 인권을 말하고 실천하기

- 현장에서 겪은 인권문제, 그리고 벽 -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김대중정권 출범이후에 '인권'이란 말이 범람하고 있다. 인권이란 말은
이곳저곳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우선 대통령이 '인권대통령'을 자임하고 있고,
언론이나 지식인사회에서도 유행처럼 '인권'운운하고 있다. 인권운동가로서
인권이란 말이 널리 쓰이는 것을 굳이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저 지금의 유행
속에는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구체적인 진전을 위한 진지한 노력이 담겨져
있는 것 같지는 않아 씁쓸할 뿐이다.

인권이란 말이 범람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정권교체에 있다. 과거 인권운동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대표적인 인권피해자임은 분명한 김대중씨는 집권하자마자
국가 인권위원회 설립을 자기 정부가 추진할 100대 과제로 선정하였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권을 주요한 국정지표로 삼겠다고 강조해왔다. 김대중 정권은
양심수 석방을 하면서도 그 이유를 '인권'때문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혔고, 기타
다른 비슷한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인권을 내세웠다. 야당에 의해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갖고 있다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오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이
인권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인권을 주요한 국정지표로까지 끌어올린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지만, 최근 들어 구체적인 진전없이 '인권'이란 말만
범람하게 된 책임 역시 김대중정부에게 물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는 그저 인권을 이야기하기 좋은 아이템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경우 인권이 무엇인지, 인권의 진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구호를 외치는 것에 불과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금 범람하는 인권이란 말은 너무 모호하게 쓰이고 있다. 인권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가치라는 것은 대충 반영하지만,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렇다면
인권이란 무엇인가. 또 인권의 진전을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인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조건일 뿐이다. 인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높은 차원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상태는
오히려 해방이니 구원이니 하는 말로 불려야 할 것이다. 인권은 다만 기본적인
조건만을 뜻한다. "당연하다. 기본적이다. 원칙이다." 이런 말들이 인권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권은 당연히 사람이기에 누릴
권리이다. 그렇지만 인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특정한 공동체가 처한
고유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근대시민혁명과정에서 도출된 개념으로서의 인권은
당시에는 자산을 가지고 일정액 이상의 세금을 내는 부르주아만을 위한 것이었고,
재산권, 생명권등 자유권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인권이 사람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된 것은 불과 지난
세기에 들어선 다음부터이고, 이를 구체화 한 것은 인류역사상 가장 쓸만한
문건으로 평가받고 있는 [세계인권선언]을 통해서였다. 1948년 인류는 유엔
총회를 통해 세계인권선언을 공포하는데, [선언]은 전문과 본문 30개조를 통해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있다. [선언]의 구체적 내용은 내일 김녕교수의 발제때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이 시간은 발제자 중에서 유일한 현장활동가에게 할애된
시간인 만큼, 개념에 대해서보다는 현장의 느낌과 체험을 소개하는 것이 알맞을
것이다.

우선 인권에 대해 갖고 있는 몇 가지 편견과 오해를 극복하는데서 시작했으면
한다.

우선, 인권하면 그저 국가보안법이나 양심수석방만을 뜻하는 것처럼 여기는
정치주의적 편견이다. 물론 한국처럼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인권문제를 푸는데 있어, 정치라는 화두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지만,
인권문제란 꼭 국가권력과 힘없는 개인간의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인(私人)간의 인권문제들이 보다 곤혹스러운 경우가 많다. 이런
정치주의적 발상은 매우 자주 운동권중심주의와 짝하곤 하는데, 이를테면
감옥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7만명에 달하는 일반재소자(잡범, 범털)들이 더
가혹한 인권현실에 놓여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는 것은 늘 일부
시국사범들의 인권문제이다. 이건 평등하지 않다. 조폭과 더불어 가장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시국사범들의 문제만 조명한다는 것은 불평등한 태도이다.

두번째는 '크기'에 대한 편견이다. 어떤 단체가 '작은 권리 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작은 권리가 지니는 의미는 아마 정치적이지 않은 어떤 권리,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닌 어떤 권리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체험한 결론은 '작은 권리'란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전세금 문제로 피해를 입었다 치자. 그는 탐욕스런 가옥주 때문에 평생을 모은
전세금을 몽땅 날리게 되었다. 이런 경우 통상의 '작은 권리'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왕따 문제도 그렇다. 인권문제를 바라볼 때, 유형화시켜서 크기로
견주어서는 안된다. 인권에 '크기'는 없다.

세번째는 보편성에 대한 편견이다. 물론 [선언]은 보편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선언]의 각조는 "사람은 누구나" "인류의 모든 구성원은"이라고 시작되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인권의 크기는 다르다. 그건 계급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형편이 어렵더라도 자기 돈을 내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보험가입자와 그렇지
못한 의료보호대상자를 똑같이 처우할 수는 없는 거다. 학교란 공간을 굳이
계급의 잣대로 들여다보지 않아도 교사와 학생의 권력의 크기도 엄연히 다르다.
거의 모든 직장이 그렇고, 거의 모든 사회적 활동이 그렇다. 더구나 온갖 종류의
패거리가 횡행하며, 온갖 종류의 차별이 판치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보편성'만 강조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에 다름 아니다. 보편성은
'기본적 요소'로서 강조해야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인권운동'이려면 약자를
구체적으로 편들어야 한다. 한양대 이사장도 인권운동을 한다고 하고, 대통령도
인권운동가라고 우기고 있는 상황이니 굳이 구별을 한다면 약자를 구체적으로
편드는 인권운동을 나는 '진보적 인권운동'이라 부르고 싶다.

네번째 편견은 인권운동이 소수 운동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기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곳 한국에 인권운동가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스스로 인권운동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조차도 내가 아는 인권운동가를 들라면
겨우 몇 명의 이름을 대고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너는
이래서 안되고, 너는 저래서 안되고 하며 빼 버릴 때 남는 것은 얼마 없다.
인권의 진전을 위해서는 누구나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인권운동은 그저 기본을 만들자는 것에 불과하다. 아직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이 기본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 기본을 만들어가는 작업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또한 누구나 전업 활동가가 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전업활동가는 아닐지라도 누구나 인권운동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인권운동은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진입장벽따위도 없다. 기본을
만들자는데, 기본에 대한 원칙만 갖고 있으면 되지, 무슨 전문적인 식견 따위가
필요하겠는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째는 인권이 그저 권리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태도이다. 이건 참으로
대단한 오해이다. [선언]도 그 말미에 '권리'를 위한 '책임'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인권은 그저 권리나 향유하자는 것이 아니다. 권리를 위한 공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한, 인권은 늘 구호일 뿐이다. 많은 교사들이 요즘 '아이들'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 아이들이 권리만 주장하지 책임에 대해서는
(영악하게도) 회피하고 있다는 거다. 물론 맞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나는
교사들이 어떻게 책임을 지고 있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요즘 들어 제기되고
있는 교원노조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은 그렇다치고, 구체적인 학교현장에서 또
학교 밖에서 교사들이 나와 이웃의 인권을 위해, 그 진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현장을 뛰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 부랑인시설에 쳐들어간 적도 있었다. 100건이
넘는 군의문사도 다뤄봤다. 탈북자 문제도 해봤고, 뭐 하여튼 하루도 그냥 지나간
날이 없었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가장 힘든 것이 무언인가?" 물론 뭐 하나
만만한 것은 없다. 먹고 사는 것도 쉽지 않고, 단체를 꾸려가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가장 힘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반인권적인 의식이었다. 내가 아는 한 세계에서 가장 인종차별, 인종적 편견이
심한 곳이 한국이다. 절망적이리만큼 심각한 곳이다. 패거리주의도 굉장하다.
동갑(同甲), 동향(同鄕), 동기(同期), 동료(同僚), 심지어 동지(同志)에
이르기까지 같을 동(同)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눈알이라도 빼줄 것처럼
잘하지만 남 타(他)자나 다를 이(異)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정말이지 남으로
다르게 대접한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가 팽배해있다. 이런
문제는 나와 당신이 다르지 않다. 적당한 이기심에 나고 자라면서 배운 것들을
성실하게 실천하는 탓이다.

진짜로 인권을 가르쳤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권을 가르쳐야 할 사람들부터
인권에 대해 배웠으면 좋겠다. 배움은 이런 워크숍 한번으로 족하다. 더 많은 것,
또는 기법 같은 것을 배워도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다는 평범한 원칙, 힘없는 사람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평범한 원칙, 사람은
저 혼자 잘먹고 잘 살 수는 없다는 평범한 원칙을 깨닫고, 그 원칙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원칙을 삶 속에서 관철하는 것이 문제이다.

인권이란 말은 범람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처한 현실은 그리 녹녹해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인권교육을 통해서 학교를 새롭게 하고, 또한 그 힘으로 세상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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