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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문제의 현안과 정책적 대응방안(이원웅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0 11:07
조회
1115

출전 : [사회과학논총] 제 5집(2000년 2월) - 관동대 사회과학연구소


<북한 인권문제의 현안과 정책적 대응방안>

이원웅 교수(관동대 북한학과)


I. 서 론 : 왜 북한 인권문제인가

전세계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고 있는 굶주린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 러시아
벌목공들의 열악한 처우,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지고 있는 북한의 정치범
및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침해 실태 등에 대해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1) 국제인권운동 분야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인정받고 있는 국제엠네스티 및
아시아와치(Asia Watch)등 주요한 비정부기구들은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북한내
정치범 문제와 정치적 자유권의 제한, 러시아 벌목공문제 등을 거론하여 왔다.2)
우리나라 정부도 국제사회의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추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
보다 공개적인 접근자세를 취하고 있다.3)

그러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노력과는 달리 국내 북한전문가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조차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인식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형편이다. 지난 94년
민족통일연구원의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북한이미지에 관한 응답결과에 의하면
'귀하는 북한을 생각할 때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까"라는 물음에 대해서
'인권탄압'이라는 응답은 12.5%로 '우상화,세습체제'(43.9%),
'주체사상'(20.1.%)에 이어서 응답순위 3위를 마크하고 있다.4) 한편
현대사회연구소가 1994년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에서 "귀하는 우리나라가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대응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에
대해서 '공개적인 압력을 넣어야 한다'는 응답은 20.7%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26.3%)는 응답이 보다 많이 나타났다. 특히
'비공개적으로 북한에 해결을 촉구하여야 한다'(37.5%)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타나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부분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5) 이러한 국민들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낮은
인식도는 결국 "남한이 북한의 인권을 거론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이 대결과
불신만 초래한다. 인권을 거론하며 대결을 연장시키는 만큼 북한의 실제 인권은
악화될 뿐이다"라는 한 연구서의 주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6)

1997년 8월 21일 제네바에서 개최된 유엔 인권소위원회 제 49차 회의는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표결하였다.7) 이
결의안은 "북한이 세계인권선언 제 13조와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위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제 12조에
각각 규정된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음을 우려"하고 북한당국이
제출의무를 무시하고 있는 정부인권보고서를 조속히 제출하는 등 유엔이 추구하고
있는 국제인권규범에 따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미 유엔 인권소위원회는 1992년 이래 북한의 러시아 벌목공과 정치범의
인권침해 사례에 관해서 비정부기구(NGO)들로부터 탄원을 접수한바 있으며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8) 이번 인권소위원회의 결의안 통과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방식이 한 단계 진전된 것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이번 결의안은 '우회적인 방법'이 아닌 '직접적인
방법'으로 북한내 인권문제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 북한의 경제파탄과 자연재해에
뒤따른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이 행사되고 있는 시점에서 불거져 나온 점,
일반적으로 제 3세계 국가의 인권침해에 대해서 관대한 태도를 보여온 유엔
인권소위원회에서 표결된 점 등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유엔 인권소위원회의 인권문제
제기에 대하여 인권규약 탈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9)
뿐만아니라 그동안 미국과 식량지원을 조건으로 진행해 왔던 미사일회담도
중단한다고 발표하였다. 북한의 이러한 극단적인 행동은 국제인권규약이 제정된
이후 처음 발생한 사건으로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국제사회와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한 것인가? 그러나 국제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스스로 파기한 북한은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을 요구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왜 유엔 인권소위원회에서 북한의 인권문제가 거론되고 있는가? 또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유엔헌장 전문은 유엔의 목적 가운데 하나로
인권보호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으며10) 세계인권선언은 인권문제에 대한 사실상의
국내관할권 원칙의 포기를 명시하고 있다. 북한 스스로 이러한 국제 인권기준을
인정하고 남한, 미국 등 다른나라의 인권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마찬가지 논리로
북한은 국제 인권규범의 보편성을 거부할 수 없다. 북한의 일방적인 탈퇴선언으로
북한의 인권침해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국제인권규약]은 보편적인 인권규범의
최소한의 조건을 명시한 것으로 이미 1948년 세계인권선언과 유엔헌장의 정신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북한이 국제인권규범을 일방적으로 탈퇴하였지만
인류사회의 합의로 형성된 국제 인권규범을 위배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또 국제규약 탈퇴는 유엔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개입을 막을 수 있는
국제법적 면제의 효력을 갖는 것도 아니다.11) 유엔 인권기구를 비롯한 NGO의
개입과 비난은 앞으로 더욱 가중될 것이 틀림없다.

본 연구는 북한 당국이 이해하고 있는 인권에 대한 인식이 국제적 기준과 어떻게
다른지를 제시하고 북한 인권문제의 현안과 그 심각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또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유엔 인권제도를 보다 상세히
알아보고 유엔제도를 통한 북한 인권문제 제기 가능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II. 북한의 인권인식과 문제점

북한은 지난 8월말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일방적으로
탈퇴하였다. 1948년 만장일치로 제정된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기초하여 1966년
완성된 두 개의 국제인권규약은 그동안 인류사회가 역사적으로 체험한 인권침해의
유형과 기준을 제시하고 모든 현대 문명국가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도덕적 원칙을
국가간 합의로 제정한 것이다. 북한은 1981년 두 개의 국제 인권규약에 유보없이
가입한 바 있다.12) 북한은 1983년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최초보고서}에서
북한이 인권규약을 준수하는 모범적인 국가임을 '자랑스럽게' 이사회에
통보한다고 밝힌 바 있다.13) 이 보고서에서 북한은 남한내 인권탄압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이에 대한 인권이사회의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가 합의한 시민적 정치적 인권규범을 거부하고 있지만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인권규범은 받아들이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생각하고 있는 인권에 대한 개념은 어떤 것인가? 여기서는 먼저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적 인권' 개념을 살펴보고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보편적 인권개념과
비교 비판해 보기로 한다.

1. '자주적' 인권개념

북한은 국제적인 인권규범을 거부하고 소위 '자주적' 인권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북한이 국제인권규범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것이 서방세계의 '제국주의적 의도'를
깔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세계적으로
인권문제는 가장 심각하고 절박한 문제로 나서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랭전이 종식되었다고 하는 오늘 세계정치무대에서 중요한 초점의 하나는
인권문제이다...현시대에 와서처럼 인권문제가 가장 첨예하게 정치문제로 전면에
제기된 때는 일찌기 없었다. 국제적으로 인권문제를 공정하게 해결하자면 인권에
대한 옳바른 견해부터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제국주의자들은 저들의
리해관계를 대변한 반동적이며 반인민적인 인권론을...다른 나라들이 일률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해나서고 있다14)

이 신문은 "서방식 인권기준"은 인권에 대한 "우롱"이며 "인민대중이 좋아하는
것"이 인권의 절대적 기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민대중이 좋아하는
'우리식' 인권개념은 무엇인가?

북한의 공식문헌은 인권이란 "사람이 자주적인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권리"라고 규정하고 있다.15)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자주성'이다.
북한에서 말하는 자주성이란 사회정치적 자주성, 경제적 자주성,
사상문화생활에서의 자주성으로 구분되는데 이러한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인류역사의 일정단계에서 발생한 권리가 바로 인권이라는 것이다.16)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사회적 조건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사회와 집단이다.
따라서 북한의 인권개념은 처음부터 개인보다는 집단, 정치적 자유보다는 정치적
자주를 강조하는 입장을 지니게 된다. 북한의 이러한 인권규정은 소위 '자주적
인권'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될 수 있다.

먼저 자주적 인권은 "사람의 삶의 권리", 즉 경제권을 말한다. 북한은 서구적인
인권개념은 개인의 자유권과 평등권,재산권 만을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진정한 인권은 "생활의 제일차적인 권리"여야 한다고 주장한다.17) 북한 문헌에
등장하는 경제권이란 보편적 인권규범에서 말하는 다양한 인권항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성, 즉 인민대중이 '생산수단의 주인'이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북한의 자주적 인권개념은 인민대중이 경제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체제는 사회주의제도 밖에는 없다는 주장으로 귀결되고 있다.18)

두번째 '자주적 인권'개념의 특징은 집단적 '자주권'개념이다. 북한은 개인적
인권개념을 배격하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이라는 집단적 인권개념을 앞세우고
있다. 북한의 인권개념에 있어서 개인의 권리는 처음부터 부정되고 있다. 개인의
권리는 '부루조아의 권리'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자주권은 인민대중이
국가주권의 주인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북한에 있어서 국가주권은 "로동자,
농민, 병사, 근로인테리"로 한정된다.19)

력사와 현실은 인민대중의 인권을 지키자면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견결히
수호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라와 민족이 예속되면 인민대중도 노예의
처지를 면할 수 없고 국권을 잃으면 인민대중도 인권을 유린당하게 된다. 국가의
자주권을 떠난 인권이란 없다.20)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북한의 자주적 인권개념은 보편적인 인권개념과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오직 자국의 체제와 정치엘리뜨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모색되고 있다. 그들은 보편적인 인권개념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계급적 당파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북한에 있어서 세계적 차원에서 논의되는
인권문제란 오직 사회주의적 인권과 그러한 사회주의를 음해하고 전복시키려는
'제국주의적 인권소동' 혹은 부르조아적 인권의 대립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2. 북한의 인권문제 대응논리

북한은 근본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제기되는 인권문제를 정치체제의 계급적
성격에서 파생되는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대한 자본주의국가(혹은 제국주의국가)의 정치적 공세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의
당이론지 {근로자}에 실린 다음 논문은 이러한 입장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세계제패의 야망을 변함없이 추구하고 있는 미제는 오늘 힘의 정책을 계속
견지하면서 사회주의를 안으로부터 와해시키기 위한 이른바 <평화적 이행>전략에
매달리고 있다. 미제는...그 무슨 <인권문제>와 <인권탄압>이 있는듯이 광란적인
거짓선전을 벌리면서 <인권옹호>의 간판밑에 사회주의나라들을 자본주의에로
되돌려 세우려고 획책하고 있다. 미제국주의자들이 떠벌이는 <인권옹호>타령은
사회주의나라들의 반사회주의분자들로 하여금 사회주의제도를 반대하여 나서도록
추동하며 사회주의제도의 고유한 우월성을 훼손시키려고 그 영향력과 견인력을
거세말살시키려는데 주되는 목적이 있다21)

북한에 있어서 국제사회가 제기하는 '인권탄압'의 문제는 바로 '극소수
반혁명분자', 혹은 '적대분자'들에 대한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그러나 북한에 있어서 이러한 '정치적 자유'는 곧 사회주의체제의
집단주의 원칙과 상충하는 원리로 인식된다. 왜냐하면 "원래 사람은 오직 사회와
집단의 힘에 의거함으로써만 자연을 정복하고 사회를 변혁해나갈 수 있으며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고수하고 역할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22) 따라서
"각자가 제멋대로 자기의 리익을 전면에 내세우며 행동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원리"는 참다운 인간의 자유와 권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에 대한 북한의 두 번째 대응방식은 '자주성'과
국가주권에 대한 침해라는 주장이다. 앞서 지적한 바대로 북한의 인권개념은
집단적 자주성이라는 개념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북한에 있어서 인권은
결코 "국경을 넘어선 보편적 가치"가 될 수 없다.

인권은 하늘이 주는 행운도 아니고 더우기 국제기구나 다른 나라가 주는 선사도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인권은 그 어떤 외세의 <압력>이나 <훈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매개 나라가 자기 인민들에게 정치, 경제, 문화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를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물질적으로 담보,
보장해 줄 때 실현된다23)

북한은 이러한 입장에서 국제사회가 제기하는 인권문제를 '내정간섭', 혹은
'주권침해' 논리로 반박하고 있다. 북한은 '인권문제'를 제국주의적 '침략과
약탈'에 비유하고 있으며 인권문제에 대한 강경하고 단호한 대응은 '국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권문제>에 대한 적들의 책동을 단호히 짓부시기 위한 투쟁은 우 리의 제도,
우리의 국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제도, 우리
체제를 털끝만치도 모독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제국주의자들이 우리의 우월한 사회주의 인권을 훼방하면서 신성한 자주권을
유린하려 한다면 우리는 0.01미리미터의 후퇴도 없이 끝까지 강경히 맞서싸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권문제에 관한 우리 당의 의지이다24)

북한은 1989년 6월 중국의 천안문사태를 제국주의 앞잡이들에 의한
'반혁명폭란'으로 규정짓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하고 있다.25) 또한 1989년 5월 미국 부시대통령이 쿠바에 요구한
민주화조치를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길로 돌아서라는' 압력이자
'침략행위'로 인식하고 있다.26)

북한은 북한식 사회주의체제야말로 "모든 인민이 다 좋아하는 공정하고
인민적이며 선진적인" 인권옹호 체제라고 주장하면서27) 오히려 서방세계에
대해서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서방세계에 제기하고 있는
'진정한' 인권문제는 어떤 것들인가?

우선 정치적 인권문제 영역을 살펴보면 남한내 비전향 장기수 문제와
국가보안법문제,광주민주화 항쟁시 진압군의 인권침해 행위, 미국의 선거권
제한문제 및 대표성 문제, 정보기관의 정치적 감시활동, 일본의 여성 참정권
제한문제 등을 들고 있다. 북한은 김인서, 함세환, 김영태 등 남한내 장기수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유린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28)
북한은 미국의 인종적, 성별 대표성의 상대적 불균형 문제를 제기하면서 선거법에
제시된 문맹 등 60여가지 제한조건을 비판하고 있다.29)

두번째로 '생존권' 문제로 주로 자본주의 사회내의 실업과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다.30) 북한은 구체적인 통계수치를 제시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의 실업율, 주택 및 보건복지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노동계급을 비롯한 저소득층의 실태를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남한내 세금제도와
비싼 사교육비 등 학비문제까지도 거론하면서 자본주의적 착취제도로 비판하고
있다.31)

사회적 문화적 인권 분야의 문제로서 북한이 제기하고 있는 것은 미국 등
서방선진국의 마약 및 알콜 중독문제, 높은 범죄율 및 조직폭력문제,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 등이다. 특히 남한의 이민정책과 해외 입양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미제의 주구였던 박정희괴뢰도당은 집권시기에 수많은 남조선인민들을 해외에
팔아먹었다...브라질에 농노로도 팔고 서부독일에 탄부로도 팔았다.
'간호원'이라는 미명하에 남조선녀성들을 기생으로 일본과 여러나라에
팔아먹었으며...어린아이들까지 다른 나라에 팔아먹었다...1962년-1972년기간에
...외국에 종신노예로 팔아넘긴 사람수가 8만 1천 340명에 달한다32)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비판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되고 있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정면에서 반박하고 있는 논리로 정치적인 선전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종군위안부'문제를 비교적 상세히
비판하고 있는 점이다.33)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남한 시민단체들의 활동이나
국제기구에서의 논의 등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있다. 그러면 지금까지 살펴본
북한의 인권개념과 인권문제에 대한 시각을 국제 인권규범의 내용과 비교하며 그
문제점을 지적해보기로 한다.

3. '북한식' 인권이론의 문제점

인권이 과연 보편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개념인가 하는 문제는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이후 줄곧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34) 특히 신생독립국과
개발도상국들은 국제인권규범이 서구적인 가치에 대한 편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자국의 실정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을 제기하여 왔다.35)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우리식 인권', 혹은 '자주적 인권'이란 개념도 이러한 비판
가운데 하나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적 상대주의로 대표되는 인권에 대한
다원주의적 입장은 오늘날의 인권이념의 발전과 국제사회 변화의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북한의 인권개념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인권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가 인정하듯이
인권의 가장 기본적인 주체는 개인이다.36) 비록 소유권이 개인적 인권 항목에
포함되는가 아닌가 등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신체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적 인권'이 개인의 주체성과 자유를 의미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37) 그러나 북한의 인권이론은 개인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38) 앞서 살펴보았듯이 북한에 있어서 인권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권리'로 한정되고 있다.39) 북한은 이것을
인권의 당파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인권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계급적 성격을 지닐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보호할 계급의 인권과 보호받지
못할 계급의 인권은 다르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극단적인 집단주의적 입장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주의권의 변화와 현실에도 맞지 않는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는 '집단적 인권'은 독립국가의 대외적인 주권과 원주민의
민족적 정체성을 보호하는 경우 등에 한정되고 있다.40) 내전상태를 겪고 있는
국가들과 인종적 분규가 잦은 국가들에 있어서 방어적인 입장에 처한
정치집단이나 인종집단이 '집단적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분쟁국가의
경우 아직 국제사회는 '집단적 인권'을 확대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북한은 독립국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집단적 인권으로서 국가자결권을 향유한다.
그러나 국가자결권은 인권과 다른 개념이다. 또 집단적 인권과 개인적 인권은
서로 보완적 관계에 놓여 있다.41) 만약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집단적 인권만이
존재하고 개인적 인권은 존재할 수 없다면 그것은 국제인권규범과 양립될 수 없는
'북한식 인권'일 따름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성'이라는 개념도 근본적으로 집단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인권규범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북한의 자주성은 방어적인
의미를 지니며 특히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에 대항하는 개념이라는 의미에서
보편적 인권과 대립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자주성은 극도의 안보적
불안이나 외세에 의한 침략이 상존하는 상태하에서 인정될 수 있다. 즉 '자주적
인권'이란 북한이 인식하는 안보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이 만들어낸 체제방어적인
논리일 뿐이다.

북한의 인권이론이 지니고 있는 두번째 문제점은 정치적 시민적 인권과 경제적 및
사회적 인권간의 관계에 대한 편협한 인식이다. 북한의 인권이론은 근본적으로 이
두 개의 인권범주를 분리하여 고찰하고 있다. 즉 정치적 인권은 '부르죠아계급'의
인권사상이며 경제적 인권은 사회주의인민대중의 인권이라는 계급적
구분도식이다. 북한은 근본적으로 모든 사회를 계급사회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초계급적인 인권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는 입장에 서있다.42) 예를 들면 개인의
사적 소유권과 '자유권' 및 '평등권'에 대한 주장은 "제국주의의 사상적
대변자"들인 플래트맨, 크랜스톤, 로날드 도오킨, 로버트 노직 등에 의해서
제시되는데 그 모두가 "제국주의와 부르죠아의 리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43)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국제사회의 인권이론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다.44)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국가를 포함하여 서구 식민지를 경험한
아프리카, 아시아의 신생국가들도 민주주의와 정치적 시민적 인권의 보편성을
인정하고 있다.45) 현대 인권이념은 정치적 인권과 경제적 인권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가정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다만 사회체제와 문화적
배경아래에서 어떤 인권침해가 보다 문제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우선순위에 대한
가치를 내포할 수 있다.46) 북한의 경우 경제적 인권이 상대적으로 잘 보장되어
있는 체제라면 오히려 정치적 시민적 인권을 실현하고 보호하는 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민주주의체제는
인권실현에 있어서 결코 완벽한 정치체제가 아니다. 많은 선진 자본주의국가들
역시 인권탄압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인권이 자본주의체제
아래에서 완전하게 실현될 수 없다는 비판과 정치적 인권과 경제적 인권이 원래
별개라는 주장은 전혀 다른 것이다. 현대 인권사상은 자본주의체제 어디에서나
정치적 인권 및 경제적 인권이 실현될 수 있고 또 실현되어져야 한다는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체제 아래에서도 개인의 자유와 평등은
실현될 수 있으며 실현되어야 한다.

세번째 문제점은 북한은 인권이념이 내포하고 있는 도덕성과 규범적 가치로서의
측면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근본적으로 인권을 정치적인
계급성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서구에서 시작된 인권이념의 발전과정을
살펴본다면 각 시대에 있어서 지배적인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측면이 부정될 수
없지만 동시에 이상적 체제를 향한 노력과 점진적인 인권개념의 확대와
발전노력도 간과될 수 없다.47) 오늘날 인권이념이 국제사회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도덕성 때문이었다.
인권이념은 매개 사회와 각 시대에 있어서 인간의 사회적 존재조건에 있어서의
위기를 지적하고 각각의 정치체제가 도달해야 할 목표와 가치를 제시하는
도덕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인권은 전적으로 현실 권력관계를
반영하는 권력정치나 실정법적인 실효성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변화와 시정을
촉구하는 도덕적인 차원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이 지적하는
선진자본주의 국가들과 남한의 인권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인권문제'들은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인권탄압적
요소들을 시정하려는 제도적인 노력에 의해서 보완될 수 있다. 오늘날 국제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권규범들의 발전은 인권이념의 보편적 도덕성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48)

북한의 '자주적' 인권이론은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인권개념과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이 본 장의 결론이다. 따라서 북한은 국제사회가 제기하는 인권문제에 대하여
상대방을 납득시킬 수 있는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북한이 선택하고
있는 대응방법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을 외면하고 '자주적 인권'을 고집하며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고립되어 가는 것이다. 적어도 인권문제에 관한한 북한은
개방이나 타협보다 고립과 저항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러한 북한의
'자주적'대응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인권이념과 제도는 더욱 확대
발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을 대표로 하는 국제인권제도와 비정부기구로
대표되는 국제시민사회와 북한은 인권문제를 둘러싸고 더욱 갈등적인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며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실태에 대한 비판과 개입의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면 북한인권문제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갈등적 측면들을 보다
상세히 분석하기로 한다.


III. 북한 인권문제의 특성과 현안

1. 북한 인권문제의 특징

현재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의 인권문제는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인정받고 있는 개인적 기본권의 제한과 극심한 식량난으로 인한 생존권문제 등 두
가지 범주로 정리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인권문제는 모두 북한 체제의 폐쇄성과
모순에서 기인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북한
정치체제가 내재하고 있는 억압적인 성격과 구조적 문제들을 극복하는 문제로
인식할 수 있다.

북한의 정치체제는 극도의 위기의식에 기초한 일종의 방어적 동원체제이다.49)
북한이 당면한 위기는 소위 '유일지도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당내
파벌대립 등 내재적인 모순과 남한의 경제발전과 흡수통일 가능성의 대두,
사회주의권의 몰락, 일본의 재군사화 등 국제사회의 변화된 환경에서 기인한
대외적인 위기로 양분하여 볼 수 있다. 특히 북한 통치엘리뜨는 대내적인 모순과
정치적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외적 긴장을 적절히 조작하여 대중동원에
이용하는 방법을 구사하여 왔다. 북한의 정치체제는 대중적 불안감을 정치적
동원에 이용하고 있는 일종의 '병영체제(兵營體制)'로 볼 수 있다.50) 북한체제의
이러한 방어적, 전투적 특성은 '군정체제(軍政體制)'로 묘사되는 북한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51) 북한의 인권탄압은 바로 이러한
위기인식을 제도화한 억압적 정치체제 아래에서 자행되고 있다.

북한은 대내외적 위기에 대응하여 소위 '우리식 사회주의'를 체제의 모토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식 인권'이란 개념과 마찬가지로 '우리식 사회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인 사회주의와 거리가 먼 수령중심의 '유일체제'를 의미한다.
즉 최고지도자를 의미하는 수령-당-대중을 권력의 핵심구조로 한
계급독재체제이다. 여기서 '대중'은 '노동자, 농민, 근로인텔리,및 근로인민'으로
규정된다.52) 대중 즉 "로동계급은 탁월한 수령과 당의 영도를 받음으로써만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는 자주적인 계급으로서의 참다운
생명을 지니게 된다."53)

북한의 기본권 탄압은 바로 이러한 '인민대중'을 제외한 나머지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북한 당 기관지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북한은 인권보호에 있어서 '당성'
혹은 '계급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즉 핵심계층을 제외한 나머지 계층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된 체제이다. 그러한 감시와 통제는 기본적으로
북한사회주의 혁명의 미숙성으로부터 정당화되고 있다. 즉 북한은 "사회제도는
섰으나 사회주의 건설이 완성되지 못하였으며 착취제도는 청산되었으나 자본주의
복구의 위험이 남아있는"54) 그러한 사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달리말하면
북한 사회주의혁명의 불완전성과 미숙성에서 기인한 '반혁명분자'의 체제
'파괴활동'은 곧 대내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탄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의 인용문은 이러한 입장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사회주의사회에서 반혁명분자들에 대해 말한다면 그자들은 철두철미 인민의
리익을 배반한 반역자, 매국노들이며 인권을 유린한 인간쓰 레기들이다. 이런
자들에게 인권이란 말은 당치않다...우리는 자기의 당성을 숨기지 않는 것처럼
인권문제에서도 계급성을 숨기지 않는다. 로동자, 농민, 지식인을 비롯한 광범한
인민대중에게는 자유와 권리를 주고 인민대중의 인권을 침해하는 소수의 계급적
원쑤들에게는 제재를 가하는 것이 우리의 인권이다55)

이러한 '병영체제'의 논리는 북한내에 상당수의 정치범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또 그들에게 상당한 정도의 인권탄압이 제도적으로, 광범위하게 가해지고
있음을 시사해준다.56) 북한의 형법체계나 절차는 외부세계에 아직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정치적 견해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체제적 특징과
'반혁명분자'에 대한 인권탄압을 정당화하는 북한의 논리를 볼 때 고문과 구타,
불공정한 재판절차, 즉결처형, 불법구금 및 강제노동이 자행되고 있다는
국제인권단체들의 보고는 상당한 신빙성을 가지고 있다.57)

북한이 개인적 인권탄압에 동원하는 또 다른 논리는 '미제국주의'로 대변되는
대외적 위기의식이다.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주한미군의 존재와 남한내 핵무기
배치설 등을 끊임없이 주입하여 왔다. 또 남한의 방어적 군사훈련을 이용한
대중적 위기감 조성과 대외선전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과장된
대외위기감은 물론 한국전쟁의 경험과 미국의 우월한 전략적 지위에 기인한
측면도 있으나 대내적 통제를 위하여 교묘하게 이용되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은 대내적으로 마치 전시 비상사태와 같은 심리적 조건을 불러일으켜 기본권
탄압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에 대해서 이를
'내정간섭'이나 제국주의적 음모로 몰아부치고 있다.

북한 인권문제의 두 번째 범주는 최근 심각한 상황에 처한 북한의 식량난과
기아사태이다. 특히 북한사회의 기층민중계급이 아닌 소위 '동요계층'이나
'적대계층'사람들, 어린이나 노약자층에 있어서 식량사정은 매우 절박한 상황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식량난과 기아문제를 홍수와 가뭄 등
자연적 재해에 기인한 것으로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관찰자들이 지적하듯이
그것은 북한체제의 비효율성과 폐쇄성에서 기인한 문제이다.58)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의 식량난은 단순한 식량부족 문제가 아니라 '생존권'의 문제, 혹은 경제적
인권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경제문제 역시 북한의 체제적 특성에서 기인한다.59) 북한의 '유일체제'사상은
경제에 있어서 혁명적 열의를 강조하는 '대중주의' 원칙과 자립경제 노선으로
특징지워진다.60) 인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소위 '사람중심'의 주체사상을 경제에
적용시킨 결과 기술과 자본이라는 물적요소의 발전을 등한시했고 극단적인
'자주성'의 강조는 북한경제에 필수적인 대외무역과 상호의존성의 발전을 저해할
수 밖에 없었다. 북한의 경제문제는 이처럼 체제적인 모순에 기인한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북한경제의 저성장과 퇴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존권'의
차원에서 허덕이고 있는 수많은 북한주민들의 권리보호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북한 인권문제의 본질은 대내외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북한체제의 보수성과 폐쇄성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면 최근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들을 중심으로 북한 인권문제의 성격과 특성을 살피기로 한다.


2. 북한 인권문제의 현안들

재러시아 및 재중국 탈북자문제

현재 북한을 탈출하여 러시아나 중국에 소재하는 북한 사람들은 대략 1,500여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탈북자'로 불리우는 이들은 아직까지
국제적인 난민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1996년 발표된 국제엠네스티의
보고서는 단지 세 사람의 탈북자에게만 난민지위가 부여되었다고 밝히고 있다.61)
이들은 러시아 벌목공에 대한 국내외적인 관심이 촉구된 1992년 엘친대통령의
특별한 명령에 의해서 난민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었다. 한국정부는 러시아정부,
중국정부와의 외교적 관계를 고려하여 이들을 일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북한과의 국경협정에 의거하여 이들을 체포하는대로
북한당국에 인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국제적으로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서 국제엠네스티를 비롯한
비정부기구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국내 NGO인 {북한동포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시민연합}은 최근 북한 탈북자 보호를 주요목표로 설정하고 활발한
보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한국지부 개설,
국내에 [북한난민법]제정, 유엔인권위원회 옵서버 자격획득 등 3개 행동목표를
설정하고 탈북자문제 해결에 전력하고 있다.62)

정치범 및 정치범 수용소문제

북한사회에서 정치범의 존재와 그들에 대한 조직적인 탄압은 오래전부터
국제사회에 알려져왔다. 러시아의 북한문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박사는
북한의 사상범 탄압의 기원은 1957년 5월 3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 상임위원회가
채택한 "반동분자들과의 투쟁을 전인민적이고 전당적인 운동으로 전개할데
대하여"(1957.5.30)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63) 그는
북한 주민과의 직접적인 인터뷰를 근거로 정식재판 절차 없이 집단수용한 일종의
강제노동수용소와 같은 형태의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를 밝히고 있다. 여기에는
'149호 대상지역', '독재대상 특별구역', '49호 교화소' 등 여러 형태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수용소의 운영은 북한의 정치경찰인 국가보위부64)가
관장하는데 이곳의 죄수들은 정식 재판절차 없이 정부의 행정적 절차만으로
수용이 결정된다.65) 수용기간은 한정되어 있지 않고 "석방은 전적으로
당지도부의 결정에 달려있다."66)

'양심수(prisoners of conscience)'는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표현한 죄로 수감된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국제엠네스티는
특히 이들에 대한 전면적인 사면, 혹은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67) 또 비록 폭력을
사용한 정치범의 경우에도 이들에 대한 합당한 기일내의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고
있다. 1994년 국제엠네스티 보고서는 49명의 북한 정치범 명단을 공개하고 이들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68)

한편 북한 당국은 정치범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69) 그러나
국제엠네스티 보고서는 북한내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전체주의 국가에서 정치범에 대한 광범위한
탄압이 자행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의 개방화와 주민에 대한
통제체제의 이완에 따라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정보들이 서방세계로 전달될 것이
분명하다.70)

북송 재일교포 및 일본인처 귀국문제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재북조선인 귀국'운동은 일본정부의 암묵적인 지원하에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대략 10만여명에 이르는 재일동포들이 북한으로
돌아갔으며 이 가운데 일본인은 6,637명이며 일본국적을 가진 배우자들도 약
1,800여명 정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애초 북송현상에서 약속한 이들의 본국
방문이나 가족들과의 재회는 북한당국의 방해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974년
일본에서는 [일본인처 자유왕래 실현운동회]가 결성되고 일본의회에 탄원하여
의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낸 바 있다.71)

한편 이 문제에 대하여 북한당국은 여러차례 해결을 언급하여 왔다. 최근
일본정부는 북한당국에 대한 식량지원협상 과정에서 연내에 15-20명의 일본인
처의 일본 방문을 타결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상징적인 협상에 불과할
뿐이며 '성분'이 우수한 일본인 가운데 선별적으로 일본 입국 대상자가 선발될
것이 분명하다.72)

일본인처 귀국문제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며 국제인권규약에 명시된 '거주이전의
권리'에 대한 위반으로 중대한 인권침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문제를 국제적인 인권문제로 제기하기 보다 북한과의 단독 외교협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정부는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발을 빼는
입장이다. 소련의 유대인 송환협상이 중대한 인권문제로 제기된 사안을 참조할 때
일본인처 귀국문제에 대한 우리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이 아쉬운 실정이다.

대북 식량지원 문제

북한의 식량위기는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을 비롯 전세계
NGO가 북한 식량지원 문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국내 사회단체 및 NGO들이
가장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도 북한 식량지원
문제는 인도적 원칙에 입각하여 처리한다는 방침 하에 1995년 15만톤의 양곡을
무상으로 원조한 이후 수차례에 걸쳐 식량 및 구호품을 직접 전달한 바 있다.
민간단체들도 별도의 식량 및 구호품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과 일본정부도 각각 별도의 통로로 북한에 상당량의 식량을 지원한
바 있다.73)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고
동북아시아의 지역안보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정책적 주도아래 진행되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북한이 거부하고 있는 보편적 인권, 즉 경제적 사회적
인권보장을 위한 국제 시민사회의 자발적 지원이라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국내에도 민간차원에서 북한을 돕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북지원단체들 사이에는 대북 식량지원 문제는 북한의 체제적 모순에서 비롯된
'경제적 인권'문제라는 인식이 아직 정립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물론 언론,
지원단체들은 이 문제를 '동포애', 혹은 '인도주의' 라는 명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북한 또한 이 문제를 정치적 협상에 대한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문제의
핵심적인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북한의 식량지원 문제는 경제적 인권문제의 범주로 인식되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은 북한 정부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경제적 인권을 침해 당하고
있는 '북한주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이라는 분명한 개념 정립이 시급하다.
식량지원을 유도하려는 북한 당국은 이 문제를 정치적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이용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식량문제는 정부간
정치협상의 대상이 아니며 국제사회에서 제기된 경제적 인권문제라는 사실을
분명히 주지시키고 식량지원 문제와 정치적 협상을 개념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 및 가족방문 문제

비공식적인 통계로 1,000만에 달하는 남북 이산가족은 오늘날 분단으로 인한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이자 인권침해의 피해자 가운데 하나이다. 적십자사를 통한
이산가족 상호방문 및 상호 연락문제 협상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89년 이후 97년 8월까지 제 3국을 통하여 가족상봉을 이룬 사례는 단지
128건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북한은 이 문제를 정치적협상의제 가운데 하나로
취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은 남북대화라는 제도적 틀 속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다른 의제들과 함께 일괄타결한다는 원칙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산가족 재회 및 가족방문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인권현안이다. 우리 정부는
남북대화가 재개되면 이산가족 문제를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최우선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74)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남북한 정부
당국자 모두의 노력과 협조가 필요하다. 특히 대외적인 개방을 꺼리고 있는
북한당국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국내외 NGO들도 이 문제를 위한 행동지침을
만들어 국제적인 이슈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유엔인권소위원회에서
제기된 북한 인권실태에 대한 결의문에서 '거주이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중요한 인권문제로 지적된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현재 답보상태에 빠져 있는 남북정치협상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적인 노력이 보다 실효성을 지닐 것으로 판단된다. 즉 이
문제를 국제화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이 문제를
남북대화나 '적십자회담'이라는 제도적 구도 속에서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
적십자사의 대화채널인 북한적십자사가 사실상 북한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문제해결의 적절한 절차가 될 수 없다.75) 또 '판문점
면회소' 설치방안도 현실성이 거의 없는 방안이다. 인권문제 해결은 결국
북한정부의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 국제적 압력을 동반할 때라야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종교의 자유 문제

종교의 자유는 국제인권규약에 명시되어 있는 인권항목일 뿐만아니라 세계적으로
종교탄압은 가장 야만적인 인권침해 행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는
종교가 없다. 다만 소수의 지하 종교단체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76) 북한은 1992년 신헌법에 '반종교활동의 자유'조항을 폐지하여 일단
종교에 대한 보다 개방적인 자세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외세와 결탁한
종교행위에 대한 처벌'을 명시함으로써 사실상 종교탄압의 구실을 만들어 놓았다.
특히 이러한 조항은 기독교, 천주교 등 서구적인 기원을 갖는 종교에 대한
경계심을 표명한 것이다. 반면 북한은 천도교 등 민족종교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에 존재하는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장충성당 등 종교시설은 외국인 관광객과 대외선전을 위한 위장시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종교에 대한 입장은 명백한 인권탄압으로 규정할 수 있다. 특히
북한 당국이 시인한 바 있는77) 종교인 탄압에 대한 명백한 진상규명과 이에 대한
전세계 종교단체의 규탄이 제기되어야 한다. 종교인들의 북한문제에 대한
관심도는 매우 높다. 특히 북한의 붕괴를 기정사실화한 우리나라 종교인들은
새로운 포교의 대상지로 북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마치 경쟁적으로 대북
종교활동을 강화시키고 있는 듯한 인상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종교단체별 개별적인 접근이나 '선심'을 동원하여 북한 당국의 관용을 추구하는
태도는 경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주요 종교단체는 모두 자체내에 인권기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들 인권단체들은 북한의 종교탄압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식량지원이나 개별적인 당국자 접촉을
통해서 북한당국의 태도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법이 과연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IV. 유엔 인권보호 제도와 절차

그러면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방안은 무엇일까?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 수단은 우선 남북대화라는 제도적 틀을 이용한 대북 직접협상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이 방안은 대북 식량지원, '판문점 면회소' 안등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정책적 수단들이다. 또 다른 방안으로 국제기구, 특히
유엔의 인권제도를 통한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외 NGO를
통한 인권문제 제기와 대북 압력수단이 제시될 수 있다. 여기서는 두 번째 방안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해 보고자 한다. 먼저 유엔 인권제도의 구조와 실행방법들을
중심으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수단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1. 유엔 인권제도

전 세계 인류에게 형언하기 어려운 피해를 가져왔던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연합국의 많은 지식인과 정치지도자들은 전쟁 과정에서 나타난 인간
존엄성에 대한 파괴와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서 분노하고 인종학살을 비롯한
이러한 집단적 인권유린 행위를 막을 수 있는 국제적인 인권규범을 창설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일치하게 된다.78) 원래 프랑스등 몇몇 국가들은 "인간의
필수적인 권리선언"을 유엔헌장에 첨가하려 했으나 관련국가들의 합의를 이루지
못해 단지 유엔헌장에 유엔의 목적이 "세계평화 유지, 국가 간 우호관계의 증진
및 분쟁의 평화적 해결,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신장"에 있다는 사실을
적시함으로서 인권이 세계평화의 기본적 요소임을 천명하였다.79)

이후 1946년 6월 고(故)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엘리노어
루즈벨트(Eleanor Roosevelt)여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총 18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유엔인권위원회(Commission on Human Rights)가 경제사회이사회 산하에
설치되었다.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유엔인권위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마침내
1948년 12월 10일 찬성 48, 반대 0, 기권 8의 표결로 역사적인 {세계인권선언}이
유엔총회를 통해 선포되었다.

선언을 기초한 각국이 전문가들은 처음부터 비교적 신속하고 쉽게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선언}형식의 합의문을 만드는 방안과 국제적 의무를 명시하는
{조약}형태의 규범창출안,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이행절차를 만드는 방안 등
세가지 방안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이해를 달리하는 많은 관련국가들의 합의를
도출하는 작업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특히 이 문제를 주도하는 미국의 입장이
처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정부는 이러한 {인권헌장}이 법적으로 구속력을
갖는 형태를 지니는 것에 대해서 우려했다.80) 그것은 국제기구에 의한 내정간섭,
즉 국가주권원칙에 대한 도전을 의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엔인권위원회는 법적인 구속력을 갖는 규약을 도출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권고나 결의 형식의 {인권선언}을 초안하는 작업을 최우선
과업으로 결정하였다. 결국 법적인 효력을 갖는 2개의 국제인권규약과
선택의정서가 만들어지는데는 {세계인권선언} 이후 18년이 걸렸고 규정에 의한
35개국 이상의 비준으로 동 규약이 효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1976년에서야 비로소 가능하였다. 그러나 유엔 당사국들 간에
조약형태의 구속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실상 비교적 '신속하게' 달성한
짤막한 {세계인권선언}은 최초에 그것을 기초한 사람들조차 기대하지 않았던
국제적 권위를 얻게 되었다. 대부분의 국제법학자들은 이 {선언}이 수많은
나라들의 헌법 구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81) 인권에 관한 국제적 규범의
기초가 됨으로써 국제 관습법의 지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82)

1) 세계인권선언의 규범체계

인권규범체계의 가장 기초가 되는 {세계인권선언}의 주요 규범내용을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자유권적 기본권에 해당하는 권리항목 부분이다. 이러한 인권 항목들은 주로
17-8세기 구라파의 정치적 운동, 즉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에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적극적 자유' 개념보다
'소극적 자유' 개념이 강조되었고 정부의 간섭 보다 자제가 인권실현을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의 2조-21조의 내용들은 그러한
자유주의적 인권 항목들을 나열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내용들 가운데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항목들도 있다. 즉 개인의 안전과 생명에 대한 권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박해로부터의 망명권, 자유선거의 권리 등은 소극적
자유의 개념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 조항에도 불구하고 제
1세대 인권항목들의 기본적 가치는 정부의 자의적인 횡포로부터 개인을
보호한다는 자유, 혹은 '소극적 자유'정신이다. 이것은 지금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들의 법률제도 속에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두번째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로 분류되는 인권 카테고리로 이는 주로
19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과 사회변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83) 즉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업화과정 속에서 나타난 빈부의 격차와 지역간
격차문제, 또 이러한 경제적 및 사회적, 문화적 차별에 대한 개인적 자구수단의
한계는 정부의 복지책임을 다시금 강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또
이것은 세계적인 관점에서 자본주의제도의 확산이 가져온 부정적 효과들, 즉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와 소외현상, 식민지 경영에 따른 피압박 민족의 열악한
존재조건 등에 대한 하나의 반응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세계인권선언}에 내포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인권항목의 특징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측면이다. 즉 사회적 가치 배분과 생산과정에 있어서
보다 평등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이 인권에 대한 의무부담자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 제 22조와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제 2조에 나타나 있듯이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는
각국의 현실에 따라서 점진적인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의 제
22조-27조의 내용은 주로 이러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인권항목들을
반영하고 있다.84) 물론 이러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의 경우 앞서
제시되고 있는 자유권적 기본권 항목들처럼 즉각적인 실현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그것은 이러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은 물론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85) 그러나 정치적 자유를
포함한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인간의 필요가 충족되지
않고서는 결코 달성되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현대 지구적 차원의
문제들을 직시할 때 주로 저개발국가들의 열악한 경제-사회적 조건, 즉 만성적인
기아와 질병, 내전, 정부의 비효율과 특정 집단의 독점적 지배로부터 신음하는 제
3세계 민중들이야말로 가장 인권을 침해받고 있는 조건에 처해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86) {세계인권선언}이 내포하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인권항목들은 선언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필요충족의 권리를 인권의 범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보장의무를 명시함으로써 현대사회에서 인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요인을 적절히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87)

자유권적 기본권, 즉 정치적 인권이 주로 유럽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제기된 문제였다면 경제적 사회적 인권은 전후 제 3세계 국가군의
등장과 그들의 집단적 권리 요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88)
'신국제경제질서(NIEO)'요구는 국제정치의 현실적 조건 아래서 인권이 유린되는
구조적인 원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집단적 항의와 요구라 할 수
있다.89) 이러한 요구는 인권의 세번째 카테고리와 연결되어 있다.

세번째로 {세계인권선언}은 경제적 빈곤과 국제 정치경제체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처하는 후발 산업국가들의 집단적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권리항목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최근 제 3세계 국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연대권(solidarity rights)'을 의미한다.90) '연대권'은 자연법적 인권이론이
전제하고 있는 개인차원의 인권이 아니라 국제적 불평등문제를 시정하고자 하는
'집단적 인권'의 카테고리로 볼 수 있다.91) {세계인권선언} 제 28조는 "모든
사람들은 이 선언에 제시된 권리와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함으로서 주권 국가의 한계를 넘어선 연대권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권리 실현을 통해 주로 경제적, 사회적 인권을 급진적으로
해결하려는 방법론적 요구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연대권'은 다른
인권카테고리와 비교할 때 내용적으로 매우 빈약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92)
자결권과 인류적 재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제외하고 이러한 '집단적 인권'
항목들은 국제적인 지지와 합의를 완전히 도출했다고 보기 어렵다.93) 어찌 보면
이것들은 현대 국제정치의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적인 시도로 간주될 수 있다.94)


서구의 역사적 전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자유권적 기본권, 즉 정치적
인권과 사회주의국가들의 이념을 반영하고 있는 경제권 및 사회적 권리가 각각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1968),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1968)을 통하여 불완전하게나마 국제규범의 지위로
발전하고 있는 사실과 비교해 볼 때 불평등한 세계 정치경제 구조의 변혁을
요구하는 제 3세계의 '집단적 권리'는 아직까지 국제적인 규약이나 국제적
실행제도를 구비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이러한 권리항목들은 아직 선언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한 평가이다.95)

한편 국제 인권장전이나 개별 국제 인권규약들은 {세계인권선언}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권리(예를 들면 자결권, 아동의 특별한 권리, 채무불이행으로 구속되지 않을
권리 등)를 포함하거나 혹은 규정되어 있는 권리(예를 들면 개인의 재산권,
정치적 망명권, 국적을 가질 권리 등)를 삭제함으로써 규범의 내용을 확장하거나
변경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96) 그러나 유엔 인권규범체계는 적어도 이론적인
수준에서 인권 항목들의 구분과 분리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97) 즉 사회체제의
발전과 형태의 차이에 따라 실현가능성에서 차이는 있을지라도 규범에 포함된
모든 인권 항목들은 국가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 각각의 인권항목들은 개별
국가들이 임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아니라 '분리될 수 없는' 혹은
'상호의존적인' 인권규범의 체계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유엔
인권규범 체계를 만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매우 확고한 원칙이었다.98)

물론 이러한 규범들이 개별국가 수준에서 만족스럽게 실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유엔 인권규범 자체가 실행수준에서 개별국가들의 유보와 선택을 허용하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점이 있다.

2) 유엔 인권제도

유엔은 헌장 전문과 헌장 제 1조 3항의 규정을 통해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민족자결원칙과 더불어 "인종, 성별, 언어 또는 종교에 의한 차별이 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과 근본적인 자유를 실현하는 것"을 유엔의 3대 목적 가운데 하나로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헌장정신에 의거하여 유엔은 국제인권실현을 위한 다양한
인권제도들을 구비하고 있다.

유엔의 상시적인 인권조직들을 살펴 보면 먼저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mmittee)'와99)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인권이사회(Committee on
economic,social and cultural rights)'가 있다. 전자는 1977년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이 발효된 이후 이에 의거하여 발족된 인권기구로
개인자격으로 선출된 4년 임기 18인의 위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후자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에 의거하여 1987년 발족된
인권기구로써 마찬가지로 개인자격으로 선출된 18인의 위원을 두고 있다.

인권이사회의 위원들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가입국 국적을
가진 고명한 인사 가운데 조약 당사국들의 비밀투표에 의해서 선출된다. 위원의
자격은 '높은 인격을 가지고 인권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이 인정된 사람'으로 보통
국제법 학자나 법률가 등에서 충원되는 것이 보통이다. 인권이사회의 위원들은
재선이 가능하며 매 2년 마다 반수씩 다시 선출하고 있다. 그러나 동일한
국적인이 2인 이상 선출될 수 없으며 '공평한 지리적 안배와 상이한 문명형태 및
주요한 법률체계의 차이점이 대표될 수 있도록'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서 선출되고
있다. 이들은 후보자가 되기 위해서 정부의 추천을 받지만 일단 위원이 되면 자국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입장에서 업무를 수행한다. 만약 자국관련 인권문제를
심사할 때는 당연히 심의에서 제외되도록 배려되어 있다.

위원회의 의장은 2년 임기이며 3명의 부의장이 있다. 이들은 위원들의 호선으로
선출된다. 이사회의 의결정족수는 12명이고 의결은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이루어지며 가부 동수의 경우에는 부결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원합의제가 통용되고 있으며 이사회 내부규칙에도 '전원합의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100)

이사회의 회기는 보통 1년에 3회인데 미국 뉴욕이나 제네바 등지에서 분산
개최된다. 회의는 원칙적으로 공개하도록 되어 있으나 비공개로 진행될 수도
있다. 이사회는 필요에 따라 소위원회와 임시 소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 또
유엔 사무총장은 이사회의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해 사무직원과 편의를 제공하며
이사회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를 통하여 유엔사무총장에게 연례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북한은 1983년 인권이사회에 최초보고서를 제출한 이후 한 차례
추가보고서를 제출한 이래101) 보고서 제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가 1997년
8월 인권규약을 탈퇴한 바 있다.

보다 실질적인 조직으로 1946년 UN헌장 제 68조에 의거하여 경제사회이사회
산하에 설치된 인권위원회(The Commission on Human Rights)가 있다. 이 기구는
원래 {세계인권선언}과 두 개의 유엔 인권장전을 만들어 낸 산실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현재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유럽 및 북미주 등 4개 지역별로
할당된 53개 회원국가를 대표하는 위원들로 구성되며 개별사안이 아닌 '심각하고
지속적이며 체계적인 인권침해 사례'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1970년
경제사회이사회 결의안 1503호에 의거한 개인 청원절차를 관장하는 기능을
포함하도록 함으로써 그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유엔의 인권보호제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제도로 간주되고 있는 인권위원회
산하에는 '차별방지와 소수자 보호를 위한 소위원회(Sub-Commission on the
Prevention of Discrimination and Protection of Minorities)'가 설치되어
있다.102) 소위원회 산하에는 소위원회 회기가 시작되기 전에 사안별로
회의자료를 준비하기 위한 세 개의 실무 위원회가 있다. 이것들은 '통보처리
실무위원회(Working Group on Communication)', '현대적 형태의 노예제에 관한
실무위원회(Working Group on Contemporary Forms of Slavery)', '원주민에 관한
실무위원회(Working Group on Indigenous Populations)' 등이며 그 밖에 특별한
관심을 촉구하는 사안에 대한 특별실무위원회 설치를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위원회(Working Group on Arbitrary Detention)' 등이
구성된 바 있다.103)

그러나 인권위원회는 정부의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는 관계로 인권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제시되기 보다 주로 정치적인 선전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1977년 부터 1982년 까지 유엔 인권국(UN Division of Human
Rights)의 국장으로 재임했던 테오 반 보벤(Theo C. van Boven)은 동서대립이
진행되고 있을 당시 유엔인권위원회에서 한 나라가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당사국은
곧바로 '문제를 제기한 국가의 인권문제'를 역으로 제기함으로써 인권보호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104) 우리나라는 1993년 최초로 인권위원국에
피선된 이래 1996-7년간 임기의 인권위원국으로 재선된 바 있다.105)

또 1993년 제 48차 유엔총회에서 UN사무총장을 직접 보좌하는 UN사무차장급인
유엔 인권고등판무관(UN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직위가 새로
생겨남으로써 유엔 인권제도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유엔의 인권조직을 강화하고 인권의 증진 및 옹호를 위한 유엔
전체 활동을 조정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 밖에 인권관련 '세계대회(World Conference)'는 이제 하나의 인권제도로서
인권에 관한 국제적인 관심과 제도 개선, 연구활동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미 유엔은 1968년 테헤란과 1993년 비엔나에서 두 차례 세계인권대회(World
Conference for Human RIghts)를 개최하여 인권의식 고양과 인권실현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발전을 이룩한 바 있다.

테헤란 세계인권대회에서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인권의 중요성을 부각시켰고
비엔나 세계인권대회는 인권고등판무관 제도의 설치, 반 테러리즘을 인권관련
주요 의제로 부각시킨 점, 사상 유례 없이 700여 개가 넘는 비정부기구(NGO)의
참여로 인권분야에 있어서 비정부기구(NGO)의 역할이 크게 강화된 점 등의 업적을
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106)

또 1978년과 1983년 두 차례에 걸쳐 제네바에서 '인종주의 및 인종차별에 관한
세계대회'가 개최되어 인종차별 문제 개선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1990년
제네바에서 개최된 '개발의 권리에 관한 세계대회'는 새로운 인권규범으로
대두되고 있는 '개발의 권리'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다양한 전략들을 부각시켰다.
1994년 북경 '세계여성대회'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및 권리 향상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논의하고 여성문제에 대한 국제적 여론의 관심을 촉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제네바에 위치한 유엔인권센타(Center for Human Rights)는 1994년 2월 최초로
임명된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의 지도 감독아래 인권관련 교육 프로그램과 정보를
제공하고 다양한 인권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955년 설립된 이 기구는
5개의 실무부서로 구성되어 있다. 진정서국(Communicaton Branch)은 인권침해
혐의와 관련된 진정서를 처리한다.107) 특수절차국(Special Procedures Branch)은
실무그룹, 특별보고관 등 인권관련 조사기관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 지역
조사팀을 조직하기도 한다. 국제제도국(International Instruments Branch)은
인권관련 협약의 준수 여부를 검토한다. 입법 및 차별 예방국(Legislation and
Prevention of Discrimination Branch)은 인권관련 국제협약들을 보완하는 연구
활동 및 유엔 인권소위원회가 요청한 연구 및 보고서 집필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기술지원 및 자문국(Technical and Advisory Services Branch)은 '기술 지원과
자문을 위한 자발적 기금'을 포함한 자문활동 및 기술적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적 지원'이란 공무원들과 경찰 및
사법기관 근무자들에 대한 인권훈련과 옴부즈만 제도, 국가의 인권관련 위원회
설치 및 운영, 선거절차, 헌법 및 법률안 기초 등 다양한 범주의 활동을 포괄하고
있다. 1994년 37개국의 요청에 따라 기술지원이 제공되었다. 인권센타는 각각
과테말라, 캄보디아, 브룬디, 크로아티아, 르완다, 말라위 등지에 지역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 밖에도 유엔 산하의 유네스코(UNESCO)는 별도의 문화적 인권침해를 심사하는
절차를 가지고 있으며108) 국제노동기구(ILO)는 국제적인 노동법의 기준을
마련하고 이의 준수를 감시, 권고하는 별도의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109)

유엔 인권제도는 독립적인 인권조사 기능과 인권재판소 등 사법적 실행기구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유엔의 인권제도는 두 개의 인권규약을 비롯한 수 많은 인권규범을
창출함으로써 국제 인권레짐의 '규범창출' 기능면에서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유엔의 인권제도는 유엔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점을 또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별국가의 주권원칙이다. 유엔은 어디까지나 주권국가들의 합의를 전제로
활동할 수 있으며 인권제도 또한 그러하다. 따라서 가장 강력한 인권기구인
인권위원회도 정치적 경제적 이해를 달리하는 국가들 간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한 국제 인권보호를 위한 기능을 완전하게 수행하기는 어렵다.110)

2. 유엔의 인권보호 실행절차

유엔이 마련하고있는 인권보호에 관한 실행절차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성격으로
대별된다.

첫째 국제 조약에 근거한 실행절차가 있다.111) 즉 두 개의 '국제인권규약'에
의해서 설치된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mmittee)와 '인종차별철폐규약',
'고문방지규약'에 근거하여 각각 설치된 유엔 고문방지위원회(Committee against
Torture), 인종차별철폐위원회(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 등 유엔 인권기구들에 의해서 실행되는 인권보호 및 청원절차가
있다. 이러한 카테고리에 드는 실행절차는 오직 국제규약에 대한 가입국가에
대해서만 구속력이 있다.

둘째 특별한 국제 규약에 대한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유엔 회원국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서 취해지는 '조약에 근거하지 않은 실행절차(Non-Treaty
Procedures)'이다. 여기에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의
유엔인권위원회(Commission on Human Rights)와 그 산하에 있는
소위원회(Sub-Commission) 및 실무위원회 등 유엔 인권기구들에 의해서 수행되는
인권보호 절차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절차는 1970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결의
제 1503호에 의해서 설립된 인권피해 청원절차가 있다(통칭 '1503 procedure').
그 밖에도 유엔 인권위원회는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 등장했을 때 '자의적
구금에 대한 실무위원회(1991)'처럼 사안별로 별도의 실무위원회(Working
Group)를 구성하여 대처하여 오고 있다.112)

그러면 먼저 조약에 근거한 유엔의 실행절차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조약에 근거한 실행절차

① 보고서 제출 및 검토절차

오늘날 국제인권레짐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규범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은 규약에 정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시행절차들을
규정하고 있다. B규약이 규정하고 있는 시행절차는 우선 가입국의 보고서 제출
절차, 가입 국가간의 상호 인권침해 통보절차, 인권 피해자의 개인적 청원절차 등
세 가지이다.113) 그리고 이러한 절차들을 운영하기 위해서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mmittee)를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 이행절차 가운데
두번째 절차인 가입국가 상호간의 인권침해 사실 통보절차는 아직까지 한 번도
실행된 바가 없기 때문에 논외로 하고 나머지 절차들에 대해서 서술하기로 한다.


우선 보고서 제출 절차를 살펴보면 B규약 제 40조는 가입국가는 규약 비준 이후
1년 이내에 '최초보고서'를 유엔 사무총장 앞으로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또 그 이후 매 5년 마다 이 보고서 내용을 갱신하여 자국의 인권보호를 위한
노력을 입증하여야 한다.

이 보고서에는 "규약이 정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하여 취한 조치들과 그러한
권리를 향유하는데 있어서 진전된 사항들"을 포함하여야 하며 "규약의 이행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와 장애가 있을 경우" 이것들도 수록하여야 한다.

인권이사회는 규약 당사국이 제출하는 보고서의 내용과 형식에 관해서 '보고서의
일반기준'을 정하여 이사회의 희망사항을 당사국에 통보할 수 있다.114)

이러한 일반기준에 의하면 보고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첫째 부분은 일반적
사항으로 시민적 및 정치적 인권보호를 반영하는 자국의 법률체계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야 한다. 둘째 부분은 규약의 구체적인 항목들이 국내법 체계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어야 한다.

국가가 제출한 보고서는 인권이사회의 공개적인 검토회의에서 검토된다. 이러한
검토회의에는 보고서를 제출한 당사국의 정부대표가 출석할 수 있다. 정부대표는
이사회에서 제기된 질문들에 대해서 답변할 수 있어야 하며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

이러한 보고서 검토절차를 거쳐 이사회는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일반적 소견'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제출한다. 만약 당사국이 제출한 보고서가 불충분할
때에는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추가 정보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또 당사국이
규약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이에 대한 이사회의 의견을
제출한다.

이사회의 보고서 검토절차와 관련하여 유엔사무총장은 인권이사회와 협의를 거쳐
관련된 유엔 전문기구에 사본을 송부할 수 있고 인권이사회는 그러한 전문기구에
보고서에 관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이러한 인권이사회의 보고서 검토절차에는
명문적인 규정은 없으나 관련국가의 비정부기구(NGO)들이 제공하는 각종 정보나
인권보고서들이 인권이사회 위원들의 의견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115)

그러나 몇몇 인권선진국을 제외하고 규약 당사국들이 제출하는 인권보고서는 단지
국내 법규를 나열하는 정도로 불성실한 것이 대부분이다.116) 북한과 같은 나라는
1981년 B규약 가입을 비준한 뒤, 1983년 단 한 차례 최초보고서를 제출한 이후
인권이사회의 추가 보고서 제출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② B규약 선택의정서에 의한 개인청원절차

B규약 제 1선택의정서(Optional Protocol)를 비준한 국가들은 인권침해를 당한
개인사건을 인권이사회에 통보(communication)하는 절차를 통해 사건에 대한
심의를 받을 수 있다. 개인의 통보가 일정한 자격을 갖춘 경우 인권이사회는
당사국이 제출한 서면정보를 종합하여 통보된 내용의 사실확인과 규약위반 여부를
심의하며 사건에 대한 인권이사회의 견해를 당사국과 통보자에게 송부한다.

이 절차에 의한 개인 통보는 유엔사무총장 앞으로 통보자의 인적사항, 통보의
목적, 침해된 규약의 조항, 청구하는 사실, 국내적 구제조치를 위해서 통보자가
취한 조치, 동일한 문제가 다른 국제인권 절차에 의해서 심의되고 있는 범위 등을
기재한 통보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개인통보를 위한
표준 서식을 마련해 두고 있다.

이러한 통보사실이 당사국에게 전해지면 당사국은 6개월 이내 통보된 사건에 관한
정보 또는 의견을 인권이사회에 제출해야 한다. 인권이사회는 당사국의
항변자료와 통보자의 추가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통보된 사실이
인권이사회의 심의절차에 적절한지 여부(admissibility)를 먼저 결정하게 된다.
통보된 사건이 과연 인권이사회의 심의가 적절한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
인권이사회는 5명 이하의 위원들로 구성된 실무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으며
특별보고자(special rapporteur)를 지명할 수 있다. 실무위원회나 특별보고자는
통보와 관련된 위임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인권이사회의 기능을 대신하는 권위를
가진다.

통보의 심의적절성(admissibility)을 판단하는 절차는 매우 까다롭고 신중하다.
통보된 내용은 국내 구제조치를 완결하였는지 여부 등 6가지 세부항목들에
저촉되는 지 검토된다.117) 그 이외에도 인권침해의 시점이 B규약 발효일(1976.
3. 23) 이후인지 여부와 당사국의 규약 비준 시점 이후인지 여부도 검토된다.
그러나 침해받은 인권이 바록 이러한 시점 이전이라 하더라도 동일한 피해가
이러한 시점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을 때는 심의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당사국이 규약 비준시 유보한 조항에 대한 침해인지 여부도 면밀히 검토된다.
만약 그러한 유보 조항에 해당하는 인권침해 사건은 인권이사회의 심의에서
당연히 제외된다.

만약 이러한 까다로운 심의적절성 여부 심사 단계를 통과한 개인 통보 사건은
인권이사회에서 정식으로 심리된다. 당사국은 심리가 결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
서면으로 이 문제에 대한 의견 및 구제조치 등을 설명해야 한다. 당사국이 제출한
서면 자료들은 모두 통보자에게 송부되며 이에 대한 통보자의 추가 정보나 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인권이사회는 잠정적인 조치(interim measures)가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당사국에게 송부할 수도 있다(절차규칙 제 86조). 잠정조치는 최종결정이
이루어지기 까지 임시적인 조치를 취하게 함으로써 피해자에게 '복구할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는 조치이다. 예를 들면 사형집행 정지나 피해자에
대한 의료지원 등의 서비스제공을 말한다.

진정인과 당사국 간의 상호 정보교환과 서면으로 된 의견교환이 끝나면
인권이사회는 최종적인 견해를 결정하며 결정된 인권이사회의 소견은 진정인과
당사국에게 송부되는 것으로 개인청원절차는 완결된다. 인권이사회의 소견에는
구체적인 인권피해에 대한 보상 및 구제 조치들을 열거하는 경우가 많다. 이 모든
과정은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러한 의견 송부는 당사국에 대한 법적인 구속력은 없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118) 그러나 인권이사회의 권위에 비추어 볼 때 인권침해 사실에 대한
결정은 당사국에게 상당한 정치적 압력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평가된다.119)

③ 기타 인권조약에 근거한 이행절차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국제규약(The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Racial Discrimination)}은 인권규약이 발효되기
7년 전인 1969년 발효된 국제 인권규약이다. 이 규약 제 14조는 당사국이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 the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에 대한 개인 청원절차를 인정하는 선언을 선택조항으로
도입하였다. 그러나 이 조항에 대해서 선언을 한 국가는 1995년 12월 31일 현재
전체 가입국 150개 가운데 단 20개국에 지나지 않는다.120)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 청원절차는 유엔인권위원회(HRC)의 청원절차와 거의
유사하다.121)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개인의 통보에 대한 심의를 위해서
실무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실무위원회가 구성된 사례는 없다.
1982년부터 1991년 까지 10년 동안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에서 처리된
개인통보 사건은 단 2건에 지나지 않는다.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규약에
나타난 인권조항 및 절차에 관한 유권적 해석을 내리는 데 있어서
인권위원회(HRC)의 선례를 따른다.122)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의 절차가 앞서 서술한 유엔인권위원회(HRC)의
선택의정서에 따른 개인 청원절차와 다른 점은 인종, 피부색 및 국적의 차이에
의한 차별에따라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통보할 수 있다는 점,
당사자를 직접 위원회의 심의과정에 출두시켜 증언할 수 있게 한 점 등이나 실제
청원절차가 이루어진 사례가 극히 적어 이러한 절차의 장단점이 가려지기는
어렵다.

1987년에 발효된 {고문 및 다른 형태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혹은 모욕적인
대우철폐를 위한 국제규약(The Convention against Torture and Other Forms of
Cruel, Inhuman or Degrading Treatment)} 제 22조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규정과 흡사한 선택조항에 의한 청원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즉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고문방지위원회(Committee against Torture)가
설치되어 있으며 선택조항에 대한 선언을 한 국가의 영역 내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실에 한하여 개인의 통보가 접수, 심의된다.

이 절차의 특징은 "국가에 의해서 제도적으로(systematically) 고문이 자행되고
있다는 명백하고 믿을만한 정보가 있을 경우" 고문방지위원회 독자적으로 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123) 또 다른 인권제도의 청원절차와 달리
비정부기구(NGO)나 당사국 국민이 아닌 타국적 사람에 의한 개인통보도 가능하다.
단 이 경우는 국가에 의해서 "제도적으로 고문이 자행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유엔의 고문방지 절차도 다른 규약에 근거한 인권보호 절차와 마찬가지로 최종
결정에 대한 법적 구속력은 없다. 다만 통보된 사건을 심의하기로 결정할 경우
이러한 사실이 고문방지위원회의 연간보고서에 포함되며 위원회의 최종결정도 이
보고서에 포함시켜 유엔총회에 제출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심의절차는 오직
{고문방지규약} 제 22조 선택조항을 선언한 국가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한계점이
있다.124)


종합적으로 볼 때 유엔이 마련하고 있는 조약에 근거한 이행절차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 보통 하나의 진정이 처리되는 데 3-4년이 걸리는 시간적 지연125),
최종적인 의무이행은 결국 당사국의 의지에 맡겨져 있다는 점 등 근본적인
한계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제 인권장전에 규정된
인권조항들의 구체적인 의미를 밝히고 진정을 제기한 많은 사람들의 인권피해를
복구한 성과를 무시할 수 없다.126)

2) 조약에 근거하지 않은 이행절차

유엔은 헌장과 세계인권선언에 규정된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장을 위해서
자체 기구 내에 인권보장을 위한 이행절차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 절차들은
인권조약 가입이나 선택조항 선언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유엔 회원국의 인권침해
사실에 대하여 적용될 수 있다.

① 개별국가의 인권상황에 대한 조사 및 결의안(resolution)

우선 경제사회이사회 산하에 53개 국가로 구성된 인권위원회(Commission on Human
Rights) 산하에 설치된 '차별방지 및 소수자 보호를 위한
소위원회(Sub-Commission on the Prevention of Discrimination and Protection
of Minorities)'가 수행하는 절차가 있다.127) 경제사회이사회 결의 제
1235호(1967)에 의해 '소위원회'는 이름과 달리 사실상 개별 국가의 인권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와 시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고
있다. 이러한 권한에 의해서 '소위원회'는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되고 있다고
믿을 만한 정보가 있는 나라들에 대한 특별실무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 실제로
'소위원회'는 쿠메르 루즈군이 지배하던 당시의 캄보디아 사태, 남아프리카
공화국, 모리타니아 등의 인권침해 사태에 대한 특별실무위원회를 설치하고 수년
간 조사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개별 국가에 대한 조사는 더 이상
활성화되고 있지 않다.128)

'소위원회'의 조사 및 결의안 제출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129)


첫째 추후 인권위원회에 논의될 수 있는 정치적 자극이 될 수 있다.

둘째 인권위원회에서 추가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경우에도 인권 전문가들로
구성된 유엔의 공식기구의 견해로써 당사국에 도덕적 압력을 행사한다.

세째 유엔총장에게 보고서 제출을 요구하는 공식적인 기록을 남길 수 있다.130)


인권침해 의혹이 제기되는 개별 국가에 대한 인권상황 조사와 보고서 발간을 위한
특별조사관 혹은 실무위원회는 '소위원회'뿐만 아니라 경제사회이사회의 승인에
의해서 인권위원회도 설치할 수 있다. 또 유엔총회의 결의에 의해서 총회 산하에
설치될 수도 있다(예: 이스라엘점령지에 대한 특별위원회,1968). 또 그 명칭도
'임시실무위원회(남아프리카 공화국)', '특별보고관(칠레)', '유엔 특별대표단(엘
살바도르)', '특별파견관(볼리비아)', '참관대표단(쿠바)','유엔 사무총장
파견관(폴란드)' 등 가지가지이다.131)

이러한 특별 보고관의 주요 임무는 해당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취득하여 보고하는 것이다. 인권상황에 관한 정보는 공식적인 자료 뿐만아니라
비정부기구(NGO) 및 인권피해자들로부터 접수되는 증언 등 비공식적인 자료도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보고관의 활동은 당사국의 국제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국내 집권세력에게 정치적 부담을 안겨주게 된다.

② '1503 절차'에 의한 비공개 조사

1970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결의 제 1503호에 의해서 최초로 설치된
'1503절차'는 유엔이 수행하는 가장 광범위한 인권보호 절차라고 볼 수 있다.

즉 이 절차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대한 침해 사실에 대한 개인의 진정을 허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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