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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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모욕죄(경향신문, 2015. 1. 1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7:14
조회
514

경찰 모욕죄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부산경찰청장의 계급은 치안정감이다. 치안총감이 제일 윗자리인데 경찰청장 한 명뿐이니, 그 다음으로 높은 자리다. 그 높은 자리에 있는 권기선 부산경찰청장이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다섯 번이나 허리를 숙여가며 사과했다. 자신의 언행을 반성하고, 고쳐나가겠단다. 권 청장은 그동안 부하 경찰관들에게 상습적으로 욕설과 모욕적인 말을 했단다. 총경 계급의 경찰관이 공식 해명을 요구할 정도다. 권 청장의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자, 그동안의 행태에 대한 제보가 잇따랐다. 제 분을 이기지 못해 자동차를 함께 타고 가던 경찰관을 고속도로에서 내리게 한 일도 있었다는 거다. 재벌 피붙이나 하는 줄 알았던 갑질 행태다. 여론이 들끓자 경찰청은 권기선 부산경찰청장의 행태에 대해 ‘엄중 경고’ 조치를 했다. 겨우 하루 만에 조사를 끝낸 다음 내린 결론이었다. ‘엄중’은 그냥 하는 말일 뿐 어떤 징계도 하지 않고 그냥 봐주겠다는 거다. 


2014년 상반기 기준으로 월평균 110명 이상의 시민이 경찰관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처벌받고 있다. 이는 전년도의 월평균 86명에 비해 28%나 늘어난 것이다. 이쯤 되면 급증이다. 2013년 8월 경찰청이 엄정 대처를 주문하자 처벌 건수가 크게 늘고 있다. 


한 경찰청 책임자의 라디오 인터뷰에 따르면 “일선 법집행 현장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있는 상황에서 경찰관을 상대로 지속적인 욕설이나 폭언 등이 위험수위까지 이르는 등 이와 같은 공권력 경시 풍조가 만연된 사회 분위기를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어서” 그렇게 한단다. 욕설을 들으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그래서 당당하고 엄정한 법집행을 할 수 없기에 더욱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거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진정사건들을 보면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한참이나 떨어진다. 혼잣말로 ‘바보’라고 했다거나, 금연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경찰관에게 훈계를 했다고 모욕죄로 체포되는 등 모욕죄 적용이 남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욕죄도 형사소송법의 규정에 따라 현행범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찰은 이걸 악용한다. 곧바로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수갑을 채운다. 내가 기분 나쁘니, 너도 당해보란 식이다. 현행범으로 체포하면 그냥 풀어주지 않는다. 역시 형사소송법을 악용해 유치장에 48시간씩 가두는 일이 반복된다. 법의 빈 구석을 악용한 전형적인 공권력 남용이다. 꼭 욕설을 하지 않아도 경찰관이 모욕감을 느꼈다고 우기면 현행범 체포를 피할 길이 없다. 경찰은 이렇게 무섭다. 


일반 시민은 모욕을 당하면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해야 한다. 한참을 기다려 고소인 조사와 피고소인 조사를 마치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경찰관이 모욕을 당하면 피해자인 경찰관이 곧바로 법의 심판자가 된다. 절차는 생략되고 법집행은 다른 어떤 경우보다 빠르다. 이렇게 빠른 절차가 시민을 위해 작동되는 경우는 없다. 시민을 모욕했다고 처벌받는 경찰관도 아직 없었다. 이런 게 바로 자의적 법적용이다. 


상습적으로 욕설을 했으니 당연히 권 청장도 모욕죄 적용 대상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권 청장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다. 위계가 분명한 계급 조직이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해한다. 그렇다면, 일반 시민도 마찬가지다. 당장 모욕을 당했기에 기분은 나쁘지만 시민에게는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가 있으니, 아주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현행범 체포를 하지 않아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피해를 당한 경찰관이 고소를 하면 되고, 나중에 불러다 조사를 하면 된다. 받아야 할 벌이 있다면 그것도 나중에 물으면 된다. 


시민들이 원하는 대접은 간단하다. 특별한 대접을 해달라는 게 아니다. 청장에게 욕을 들으니, 시민들의 욕도 참으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공평한 대접을 해달라는 거다. 그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