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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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사무장의 인간선언(경향신문, 2014. 12.1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7:05
조회
385

대한항공 사무장의 ‘인간선언’ -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재벌 3세 조현아씨. 그는 평생 잊지 못할 수모를 받고 있다고 느낄 거다. 속내야 알 수 없으니, 그의 반성과 사과가 진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저 그가 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면 그만이다. 우리는 이를 죗값이라 부른다. 딱 잘못한 만큼, 그도 남들처럼 공평한 처벌을 받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대한항공 직원들이다. 사무장과 승무원, 익히 짐작할 수 있듯, 심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승객마저 회유했으니, 회사 직원들에게 어찌했을지는 뻔하다. 피해자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하고 협박을 하는 건 전형적인 2차 피해다. 상처를 달래기도 힘겨운 피해자들이 이런 대접을 받는다. 을의 지위를 악용한 고약한 현실이다.


서비스가 좋다는 게, 진상 손님의 난동까지 다 받아줘야 하는 건 아닐 게다. 술 취한 사람이 자신의 배경만 믿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폭행까지 하는데도, 달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게 좋은 서비스일 리는 없다. 물론 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 일반 승객과 시비를 가리는 것도 어려운데, 상대가 오너의 딸에다 회사 부사장이라면 더 그렇다. 질책받던 여성 승무원이 무릎을 꿇자, 그 여성에게 이런 식의 수치감을 줄 수 없었다던 책임자 사무장의 선택도 그랬다. 여성 승무원 대신 무릎을 꿇고,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저를 벌하십시오”라고 했지만, 그 순간 목구멍으로 저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올랐을 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을 게다. 우리는 대개 그렇게 산다. 뻣뻣하게 고개 쳐들고 어깨 펴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도처에 갑을 관계가 널려 있고, 위계는 단지 역할 분담에 그치지 않고 폭력적 질서와 짝하고 있다. 해서 일개 직원이 저 높은 곳에 군림하는 재벌 3세와 시비를 따지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억울하고 분통 터지지만, 무릎을 꿇는다. 


반전은 박창진 사무장의 언론 인터뷰였다. 조현아씨가 심한 욕설과 폭행을 했다고 담담하게 증언했다. 아무리 피해자라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어도 회사 직원이 오너 가족의 잘못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히는 건, 자신을 걸어야 하는 모험이다. 박 사무장은 문득 깨달았단다. 땅콩 회항 사태가 거꾸로 승무원들의 잘못이었고, 경영진의 입장에서 승무원의 잘못을 지적하는 건 당연하다는 회사의 항변 때문이었다. 


“아, 나는 개가 아니었지, 사람이었지. 나의 자존감을 다시 찾아야겠다. 내가 내 모든 것을 잃더라도 이것은 아니다.”


이건 박창진이란 사람의 인간선언이다. 또 인권선언이다. 때론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단박에 일깨워준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이 한마디가 꼭 그렇다. 이 엄연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늘 너무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한다. 거대한 조직 앞에서, 힘센 권력 앞에서 개인은 초라하다. 힘도 없다. 파편처럼 흩어진 개인은 더 그렇다. 해서 개인에게 박 사무장과 같은 인간선언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단지 개인일 뿐인데, 저 거대한 권력, 재벌에게 당당히 맞서라는 건 무리다. 3대, 4대를 넘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철옹성처럼 견고한 재벌이 아닌가. 그들이 우리의 무릎을 너무 쉽게 꺾어 버린다.


무릎 꿇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어쩌면 답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한 장의 종이는 언제든 힘없이 찢겨질 수 있지만, 종이를 묶어 놓으면 아무리 용을 써도 찢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개인들의 연대는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다. 이를테면 노동조합이 그렇다. 아무리 갑질을 일삼는 진상도 노동조합 조합원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다. 그냥 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정말 개인으로만 보이던 대리점주들이 뭉치니까 대기업의 갑질도 주춤해진다. 그러니 우리, 연대하자. 방법은 많다. 노동조합을 찾아 가입서를 내고, 그에 여의치 않으면 시민단체 회원으로라도 가입하자.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고, 나를 함부로 대하려면, 그쪽도 뭔가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자. 곧 새해다. 우리끼리의 연대로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자. 그래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신경림의 시처럼, 우리도 사람답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