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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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서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들(평화신문, 2014.10.1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6:59
조회
602

[시사진단] 돈이 없어서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들


-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2014. 10. 19발행 [1286호] 


싱가포르, 도쿄 다음으로 안전한 도시는 서울일 게다. 경찰과 검찰은 범죄가 갈수록 기승을 부린단다. 범죄가 날로 흉포화, 조직화, 첨단화된단다. 하지만 흉악범죄 발생률은 싱가포르, 일본 다음으로 낮고, 범인 검거율은 세계 최고다. 그래도 매년 범죄로 처벌받는 사람은 100만 명쯤 된다. 특별히 해로운 것도 없는 기초질서 위반까지 모두 범죄로 정해둔 탓이다. ‘경범죄처벌법’부터 ‘도로교통법’까지 이런 법률들은 많기만 하다. 


이들 ‘범죄자’들은 대부분 벌금으로 죗값을 치른다. 형법 교과서는 벌금형이 징역 등의 자유형을 대신하는 선처라고 가르치지만, 기초질서 위반 사범을 교도소에 가두는 건 터무니없이 잔혹한 일이다. 교도소는 신체의 자유만 제한하는 곳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도 내려놓아야 한다. 생업에 종사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가족과도 생이별해야 한다. 교도소에서의 고통은 일상적이다. 교도소에 보내는 건 능사가 아니다. 


형벌은 범죄자에게 고통을 주면서 사회정의 확립에 기여한다. 하지만 한국의 벌금제도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 모두에게 ‘공평’하다. 같은 범죄에는 같은 액수의 벌금을 매기는 거다. 국민연금도 건강보험도 모두 재산과 소득에 따라 달리 내는데, 유독 벌금만은 빈부를 따지지 않는다. 몇백만 원 벌금이 부자에겐 선처겠지만, 가난한 사람은 치명적 위협을 느낀다. 


한 달 내에 벌금액을 모두 내지 못하면 교도소에 가야 한다. 봐주기 위한 벌금이라지만 가난하면, 도로 교도소행을 각오해야 한다. 이렇게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이 매년 4만 명이 넘는다. 사회와 격리해야 할 흉악범이 아니다. 죄질이 고약한 사람도 아니다. 그저 돈이 없어서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들이다. 오로지 돈이 없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교도소에 보내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잘못된 제도로 인한 비극이다.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그 자체로 형벌이다. 어딜 가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교도소까지 가야 한다면, 이건 전혀 다른 문제다. 


딸의 대학등록금 납부와 벌금 납부 시기가 겹친 한 택시 운전사는 벌금을 내지 않고 교도소에 가는 걸 택했다. 지난 여름 꼬박 넉 달을 교도소에 있었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지만 그는 여름 징역에 치를 떨었다. 요즘 교도소는 기초질서를 잡는다고, 감방에 누워 있는 것도, 덥다고 웃통을 벗는 것도, 체력 단련을 위해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모욕감에 치를 떤 건 그만이 아니었다. 아빠가 교도소에 가는 대신, 등록금을 낸 그의 딸도, 600만 원의 돈 때문에 교도소에 갇힌 남편을 면회하던 그의 아내도 모두 치욕스러운 고통을 겪어야 했다. 가난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비껴갈 수 있었던 고통이었다. 


이 잘못된 제도를 바꾸기 위해 인권연대는 ‘43,199’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43,199는 2009년 한 해 동안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의 숫자다. 이 캠페인에는 조환길 대주교와 강우일ㆍ이기헌ㆍ안명옥ㆍ옥현진ㆍ정순택 주교도 뜻을 모아 주었다. 한 번에 내는 벌금을 나눠 낼 수 있게 하거나, 유럽의 여러 나라처럼 소득에 따라 다른 벌금을 내게 하거나, 벌금 대신 사회봉사를 할 수 있게 법제화하자는 게 캠페인의 주요 목표다. 제도만 조금 바꾸면, 억울하게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들의 숫자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수십 명의 야당 국회의원들이 벌금제 개혁 법안을 제출해놓았지만, 정부 여당의 반대 때문에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토론에도 응하지 않으니 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엔 별 관심이 없는 건 분명해 보인다. ‘가난이 죄’인 세상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