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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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대표는 '노무현의 눈물'을 잊었는가? (프레시안 2012.3.8)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1:37
조회
391

[프레시안] 기고


검찰 출신과 함께 검찰 개혁을 하겠다니… 



인재를 구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까. 당 대표가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어 느낀 부담 때문인가.


민주통합당이 법조인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검사 출신 변호사 영입에 특히 공을 들인다. 검사 출신 유재만, 백혜련 변호사가 영입되었고, 판사 출신 임지아 변호사와 대기업 상무 출신 이언주 변호사는 백혜련 변호사와 함께 당 최고위원회의 환영을 받으며 입당했다. 검사 출신 ㄱ변호사를 비롯해 법조인의 영입도 계속 추진될 거란 관측이다.


민주통합당은 "'스펙'에 '출중한 외모'까지 갖춘 여성 법조인이 한꺼번에 동참했다며 고무된 분위기"란다. 한마디로 호들갑이다. 지난 주 이들의 입당 소식을 전한 <한겨레>는 이들이 어떤 대학을 나왔고, 누구와 사법 시험 동기인지 시시콜콜한 기사를 내보내며 민주통합당의 호들갑에 동참했다. 이런 기사가 젊은이들의 가슴을 피멍들게 한다는 걸 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한겨레>의 지향과 달리 '스펙'을 강조해서라도 야당의 승리를 돕자는 건지 모르겠다.


10년 안팎의 검찰 근무와 고작 몇 년밖에 안 되는 법원 근무가 그렇게 대단한 스펙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스펙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민주통합당 안에도 꽤 있었다. 대검찰청 차장을 지낸 김학재, 신건 씨,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박주선 씨 같은 이들은 이번에 영입된 법조인과는 비교도 안 되는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사람들인데 공교롭게도 공천 심사에서 모두 낙천했다. 이건, 어찌된 영문인가. 아 참, 민주통합당에는 최초의 여성 검사 조배숙 씨도 있다.



민주통합당과 경쟁 관계에 있는 새누리당의 검찰 출신의 면면은 더 화려하다. 국회의장(박희태), 새누리당의 전 대표(강재섭, 안상수, 홍준표), 전·현직 사무총장(권영세, 원희룡) 등의 주요 보직은 검사 출신 정치인들이 번갈아 맡아왔다. 검찰총장 출신도 여럿이다. 한명숙 대표는 '법조당'이란 불리는 새누리당이 부러웠던 걸까.


18대 국회의원 중에서 법조인 출신은 59명이고, 이 중 검사 출신은 22명이다. 19대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예비 후보 2012명 중 147명이 직업을 변호사라 밝히고 있다. 직업이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이라고 밝힌 변호사들을 빼도 이렇다. 직업 정치인 중에서 법조인들은 이미 차고 넘칠 만큼 많다. 그런데도 민주통합당은 왜 법조인, 특히 검사 출신 영입에 열을 올리는 걸까.


한명숙 대표가 스스로 밝힌 까닭은 검찰 개혁 추진이었다. 검사 출신들을 잔뜩 모아 놓고 검찰 개혁을 하겠다는 건, 재벌 출신들을 잔뜩 영입한 다음, "이제, 우리 당에도 재벌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들을 중심으로 재벌 개혁을 하겠다"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우선 민주통합당이 잔뜩 공을 들였다는 백혜련 변호사는 '사임의 변'으로 일약 유명해진 사람이다. 검찰을 떠난 직후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치 쪽으로 간다, 이미 민주당 공천 받고 움직인 거라는 말도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일은 전혀 없습니다. 지금 제가 정치에 몸을 담는다면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배신하고 왜곡하는 일이겠지요"라고 답했던 것이 불과 석 달 전이었다.


말을 바꾸는 건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렇지만 백혜련 변호사는 너무 검찰에 기울어진 인물이다. <한국일보> 인터뷰어가 "엄청난 검찰 신뢰론자"라고 꼬집을 정도다. 검찰은 별 문제가 없는 깨끗한 조직인데,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입김이 잘못 들어와 일부 사건에서 국민의 지탄을 받는다는 게 그의 일관된 생각이다.


다수의 '개혁적'인 검사들, 다수의 검사 출신 변호사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만 보장하면 금세 해결될 수 있다는 거다. 구체적인 해법으로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만 하면, 검찰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 거란다. 전형적인 내부자 논리다.
검찰의 정치적 편향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검찰 개혁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 확보가 아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는데, 그 권력을 통제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는 게 핵심이다. 따라서 검찰 개혁은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과감하게 쪼갤 때만 의미를 갖는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처럼 상황 전개에 따라서 검찰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정도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한국은 '검찰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검찰의 권한은 막강하다.


자체 수사권과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 등을 통해 100퍼센트 순도로 수사권을 장악하고 있다. 검찰 마음대로 죄가 없는 사람을 수사 대상으로 삼아 괴롭힐 수도 있고, 거꾸로 죄가 있어도 수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잘못된 수사를 해도, 해야 할 수사를 하지 않아도 어떤 불이익도 없다.


기소도 검찰만이 독점적으로 갖고 있는 권한이다. 죄가 커도 검찰에서 기소하지 않는다면 처벌할 방도가 전혀 없다. 죄가 없는 사람을 기소해서 길고 지루한 재판을 받게 하여 패가망신시킬 수도 있다.


재판이 열려도 형사 절차를 주도하는 건, 법원이 아니라 검찰이다. 법률 적용, 구형을 통해 피고인의 죗값을 미리 정하는 것도 검찰의 권한이다. 도중에 공소장을 변경할 수도 있고, 아예 공소 취소를 통해 재판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재판을 진행하다, 막판에 구형을 하지 않으면 법원은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된다.


검찰은 법원의 확정 판결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죗값을 치러야 하는 범죄자도 검찰의 형 집행 정지로 곧바로 풀려날 수 있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사면 업무는 온통 검사들로 장악된 법무부 검찰국이 맡는다. 이건희 씨의 경우처럼 대통령이 일부러 챙기지 않는 한, 누가 사면 대상이 되는지는 전적으로 검사들의 판단에 달려 있다.


수사-기소-공판-형의 집행까지 형사 사법 절차의 모든 과정은 검찰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 그래서 한국의 형사 사법은 검찰 사법이라 부르는 게 더 맞다. 누구도 갖지 못한 막강한 권한을 혼자서 움켜쥐고 있는데, 검찰을 통제하는 안전장치는 거의 없다. 일본의 '검찰심사회' 같은 시민적 통제 장치가 있다지만, 그저 이름만 베낀, 아무런 법률적 구속력도 없는 유명무실한 조직일 뿐이다. 검찰은 법무부의 일개 외청에 불과하지만, 그 힘은 의회나 법원보다 세고, 가히 대통령과 맞먹는 수준에 와 있다.


이 막강한 조직은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한 몸으로 움직인다. 막강한 권한, 구성원들의 이상한 엘리트 의식, '거악(巨嶽) 일소(一掃)'를 위한 깨끗한 조직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자신감 등을 통해 검찰 조직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검사들과 검찰 공무원들은 자폐적 인식 속에 갇히게 되었다.


민주통합당이 영입에 열을 올리는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이런 자폐적 인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모아 놓고 검찰 개혁을 한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게 아니면 검찰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검찰 개혁을 위해 필요한 인재가 있다면, 그건 권력 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신념과 상식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상식적인 사람일 게다.


검찰 개혁을 하려면 최소한 다음의 네 가지 과제를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검찰에서 수사권을 완전히 떼어 버리고, 검찰은 기소만 전담하는 기관으로 바꾼다.
둘째, 법원의 심급제를 흉내 냈지만, 실제로는 고위직의 자리만 잔뜩 만들어 놓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고등검찰청을 폐지한다.
셋째, 일본의 '검찰심사회'나 미국의 '기소대배심' 와 같은 시민적 통제 제도를 도입한다. 이런 기구는 이름만 빌린 게 아니라, 이들 나라처럼 법원 소속에, 법률적 근거와 결정의 구속력도 있어 실제로 검찰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법무부에 있는 검사들을 검찰로 돌려보내, 법무부를 문민화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고 후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후회하지 않으려면 새누리당 흉내 내기에 불과한 법조인 영입, 특히 검사 출신 변호사 영입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