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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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원 김 순경이 촛불을 보호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5.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1:34
조회
449

노조원 김 순경이 촛불을 보호한다 


경찰관 되기는 이제 하늘의 별 따기 만큼 힘들다. 단박의 경쟁으로 꿈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국 대학의 경찰 관련 학과는 88개나 된다. 경찰관 채용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은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다. 관련 학과를 졸업한다고 해서 경찰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보통은 서울 노량진 등 학원가에서 최소 2년 이상 시험 준비를 한다. 경찰청은 2011년 1차 정기채용에서 977명의 남자 순경을 채용했는데, 여기에 2만5986명이 지원했다. 26.5 대 1의 경쟁률이다. 149명을 채용하는 여자 순경의 경쟁률은 무려 50.5 대 1이었다. 지금 10만 명쯤 되는 젊은이들이 경찰관이 되기 위해 젊음을 불태우고 있다. 예전에는 고졸 출신 순경이 많았지만, 이제는 관련 학과를 나와도 극심한 경쟁에서 이겨야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되었다. 1997년 구제금융 이후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생긴 새로운 풍속이다.


경찰관 시험에 합격하면 곧바로 중앙경찰학교에서 24주 동안 합숙 교육을 받아야 한다. 매일 아침 6시 기상에 밤 10시 취침 등 군대식으로 꽉 짜인 강도 높은 교육이다.


높아진 학력, 조직 문화는 고릿적
경찰관이 되면 견디기 힘든 것이 경찰조직의 이해하기 힘든 전근대적 조직문화다. 경찰관 생활은 순경부터 시작된다. 그 위로 경장, 경사, 경위, 경감, 경정, 총경, 경무관, 치안감, 치안정감, 치안총감 등의 계급이 있다. 현기증 날 정도로 까마득한 층계가 앞에 놓인 것이다. 계급에다 제복까지 입기 때문인지 경찰문화는 옛날 군대문화를 쏙 빼닮았다. 좋고 편한 것은 모두 상급자 몫이고, 나쁘고 불편한 것은 하급자 몫이다.


가까이서 본 경찰문화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상급자와 하급자가 함께 회식할 때, 그 비용을 하급자가 내는 거였다. 월급도 많고 판공비도 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급자에게 자연스럽게 얻어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요즘에는 많이 바뀌었다지만, 상급자가 해외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하급자들이 환전해온 달러를 여비에 보태라고 상납하는 문화도 있다. 상납을 넘어 거의 갈취 수준이다. 상명하복 문화는 하급자에게 굴종과 일방적 희생을 강요한다. 경찰청 ‘의전 지침’에는 아예 상급자에게 ‘굴신 인사’(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해야 한다고 명시됐고, 상급자의 인사이동 때는 하급자가 이전 근무지까지 쫓아가 이삿짐을 챙겨주어야 한다. 개인의 학위 논문이나 리포트를 대필해주기도 한다.


경찰서만 가봐도 ‘계급이 깡패’라는 조직문화의 폐해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경찰서장을 맡는 총경 계급은 일반 공무원의 4급(서기관)에 해당하지만, 적어도 경찰서 안에서는 왕 대접을 받는다. 어디를 가든지, 하던 일을 멈추고 큰 소리로 ‘충성!’ 구호와 함께 붙이는 경례를 받는다. 경찰서의 모든 행정에 대해 경찰서장은 전권을 휘두를 수 있고, 최소한 경찰서 안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경찰서장실은 대개 2층 가장 좋은 곳에 넓게 자리잡고 있다. 서장실에는 서장 개인만을 위한 별도의 숙소가 있고, 오로지 서장만을 위해 심부름을 해주는 ‘여’직원 1명과 의경 1명이 배치돼 있다. 경무·수사·형사·교통·경비·생활안전·보안·정보 등 기능별로 경정급 과장이 1명씩 배치돼 있는데, 이들은 서장만큼은 아니지만 최소한 자신이 맡은 과에서는 왕 노릇을 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소통을 강화한다는 등의 이유로 과장실 벽을 다 뜯어냈지만, 벌써 레임덕이 온 것인지 예전처럼 독립된 방으로 돌아갔다.


경찰서를 기준으로 보면 대개 경위, 적어도 경감 계급이 되면 아예 실무를 하지 않는다. 의례적 회의에나 참석하고, 하급자가 해놓은 일을 점검만 하면 된다. 경찰이 작성하는 서류에는 무수히 많은 결재란이 있고, 상급자 역할은 이 결재란을 채우는 것이 대부분이다.


계급이 올라간다고 그에 따른 책임이 커지는 것도 아니다. 누릴 수 있는 것은 많지만, 책임질 일은 사실 별로 없다. 책임은 일선으로 돌려도 상관없다. 하급자가 상급자 말을 받아적기만 하는 이상한 일을 경찰에서는 ‘회의’라고 부른다. 하급자 말은 보고뿐이다. 그래서 상의하달·상명하복은 경찰조직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적당한 표현이 되었다. 순경으로 시작해도 별 사고 없이 지내기만 하면, 나중에 근속승진을 통해 경위 계급장을 달 수 있고, 운이 좋으면 경감 또는 그 이상의 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오르려면 ‘계급이 곧 깡패’라는 조직문화를 몸으로 겪어내야 한다.


서장은 왕,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다


신임 순경들의 변화는 여기서 시작된다. 김상균 백석대 법정경찰학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신임 경찰관이 조직문화에 익숙해지면서 공격성·권위성·냉소성·보수성·의심성·배타성 등 부정적 성향이 모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공격성 등 부정적 성향이 증가하면서 “경찰이 일반 시민을 잠재적 폭력자로 간주하고, 물리력을 사용해서도 범죄자를 억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역기능이 나타난다고 본다.(1) 특유의 조직문화가 경찰관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거의 모든 경찰관이 승진을 꿈꾼다. 상급자들처럼 하지 않겠다는 포부로 승진을 꿈꾸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모든 것이 좋아지는 승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조직에서 살아남아 승진을 하려면 불만이 있더라도 참고 또 참는 방법이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하급자가 발언하려면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용비어천가라면 모르지만, 뭔가 불만을 쏟아내거나 애로사항을 늘어놓거나 불편한 걸 고쳐달라는 건의사항은 곧바로 사달로 이어진다. 기껏해야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쓰는 정도인데, 경찰 지휘부는 이를 관용하는 태도를 거의 갖추지 못했다. 단순한 인터넷 글쓰기가 내부 감찰 조사를 부르고, 때론 파면이나 해임 등 중징계로 이어진다.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당시)의 성과주의를 비판한 박윤근 경사가 그런 경우다. 박 경사는 파면당했다. 소청 심사를 통해 해임으로 한 단계 낮추고, 해임취소 청구소송에도 승소했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박 경사의 파면이 부당하다는 글을 올린 양동열 경사도 파면됐다. 충북의 장재룡 경사나 부산의 김흥연 경사도 경찰청 내부 게시판에 비판적인 글을 썼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인터넷에 비판글 썼다가 잇단 파면
그래서 경찰노조는 절실한 과제다. 정권 교체, 경찰청장 선택 정도로 경찰을 바꾸긴 어렵다. 외부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수장에 의한 개혁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내부에 개혁 주체를 세우고 개혁 동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 노조다.


경찰노조는 현행법 체계에서는 불법이다.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6조는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공무원의 범위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2항의 3에 ‘교정·수사 또는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는 공무원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 법률은 명백하게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 물론 고매하신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이같은 기본권 제약을 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결정할 가능성이 크지만, 헌법상 모든 국민에게 보장된 노동기본권이 경찰관이라고 해서 배제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조문은 바로 그다음 조문 제2항의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하위 법률에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제한을 명시한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의 제6조는 형식적 측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경찰을 바꿀 수 있는 건 노조뿐
경찰청 등은 경찰관이 법집행 공무원이어서 엄정한 중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역시 노조 설립 불가론이다. 그러나 오히려 경찰관은 법집행 공무원이어서 더 노조가 절실하다. 경찰의 존재 이유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가장 전형적인 국가 작용이 바로 경찰 활동이다. 경찰관은 경찰 활동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다. 경찰관도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면서,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인권지킴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책무를 지닌 사람들이, 그 직무의 성격 때문에 국민 모두가 누려야 하는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부에서는 경찰노조가 시기상조라고 한다. 이런 식의 시기상조론은 무언가 새로운 사안이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온다. 그럼 그 시기가 언제쯤 되어야 그 시기가 성숙하냐고 물어도 반대론자들은 답이 없다. ‘영원히 안 된다’는 속내를 말로 드러내지 않는 것일 뿐이다.


실정법은 금지, 그러나 헌법이 있다
경찰노조가 만들어져도, 경찰관 일반의 보수적 성격을 생각하면 노조의 행보 역시 보수적일 가능성이 높다. 진보적 사회정책이나 인권 향상에 걸림돌이 될 때도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1981년 프랑스 미테랑 정권이 사형제도를 폐지하려고 할 때, 가장 강력한 반대세력은 경찰노조와 교도관노조였다. 하지만 헌법상 기본권을 행사하는데 이쯤의 우려 때문에 망설일 이유는 없다.


경찰이 파업하면 치안 활동이 마비되고 사회가 혼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역시 기우에 불과하다. 경찰노조가 합법화돼 활동하는 많은 나라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영국 경찰노조는 1870년대(1970년대가 아니다)부터 파업투쟁을 해왔지만, 영국은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 경찰제도를 갖춘 나라로 꼽힌다.


일부에서는 경찰노조 설립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먼저 형성하라고 한다. 이 역시 옳지 않다. 인권보장은 실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공감대와 무관해야 한다. 경찰관도 시민인 이상 헌법과 인권의 원칙에 따라 당연히 그들을 보호하는 조직에 몸담을 수 있어야 한다.


다만 경찰노조가 인권·반부패 문제에서 상당한 전적을 올려야 하는 것은 옳다. 그래야 지평을 넓힐 수 있고, 정권의 탄압에 맞서 시민과 함께 투쟁할 수 있으며, 공세를 적절히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아무런 기반이 없다. 그래서 이제라도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 일단은 학습과 조직을 반복해야 한다. 학습 동아리를 만들어 공부해야 한다. ‘무궁화클럽’과 ‘폴네티앙’ 등 기존에 활동 중인 인터넷 동호회를 강화하고, 제2, 제3의 조직을 띄워야 한다. 지금은 동호회 활동이지만, 역량이 성숙하고 조직이 강화되면 얼마든지 노조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경찰은 구조조정에 취약한 조직이다. 저비용·고효율인 시장만능주의의 거센 물결이 국방·치안·교정 등 국가의 전형적 활동에까지 밀려오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종교 교도소이지만 민영 교도소가 이미 활동 중이고, 치안의 일정 부분을 맡고 있는 경비업체의 매출은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노조는 더욱 절실하다.


글 · 오창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