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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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바른 사람들(경향신문, 2015. 7. 28)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7:34
조회
370

예의 바른 사람들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국무총리의 민생 행보가 활발하단다. 골수 공안 이미지뿐인 사람이 민생 행보를 벌인다니 반가운 일이다. 그중에 노인종합복지관 방문도 있었다. 여름철 식중독 예방을 위한 조리실 위생상태 점검이 목적이란다. 그게 총리가 챙겨야 할 일인지, 공안 검사 출신인 총리가 위생 점검에 어떤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해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하고, 칼·도마 등 조리도구는 반드시 세척·소독하여 위생적으로 관리”하라거나, “조리 전에 꼭 손을 씻는 등 개인위생 관리에 철저를 기해달라”는 수준이라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 민생 현장을 돌아보는 건 대체로 좋은 일이다. 현장에서 문제나 답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엘리베이터였다. 황교안 총리가 방문하는 날, 노인종합복지관의 엘리베이터는 한동안 사용이 제한되었다. 총리가 이용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한동안, 복지관의 주인인 노인들은 불편한 몸으로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총리를 잘 모시려는 예의 바른 사람들 때문이다. ‘황교안 엘리베이터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다음, 황 총리의 반응이 궁금했다. 하나 국무총리실은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뻔한 변명조차 없었다.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여겼나 보다. 


하긴 이런 일이 한둘이 아니다. 10년 전 훨씬 덜 권위적인 정권일 때, 대검찰청에서 겪은 일이다. 인권 관련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갑자기 2층에서 내리라는 거다. 장관과 검찰총장이 오니 엘리베이터를 비워야 한다는 거다. 행사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두 대였다. 정 의전이 필요했다면, 그중 한 대만 잡아둬도 될 텐데 멀쩡히 타고 가는 사람들을 도중에 내리게 한 거다. 관료들이 윗분들을 모시는 예의는 이렇게 특별하다. 


보통 행정부처 집무실에는 장관, 차관, 실장, 국장 등이 사무실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전광판이 있다. 높은 분들 퇴근 전엔 퇴근할 수 없으니, 실시간으로 점검하려는 거다. 왜 일반 직원은 장관보다 먼저 퇴근하면 안되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조차 빠져 있다. 


오랫동안 경찰에 몸담았던 장신중 전 총경의 증언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경찰서장이 새로 부임하면, 관사와 집무실의 도배와 장판을 아예 새로 한단다. 서장은 대략 1년에 한 번 바뀌니, 도배와 장판이 연례행사인 셈이다. 서장의 이삿짐은 직원들이 미리 옮겨놓는다. 서장이 부임하는 날이면 지방경찰청으로 서장을 모시러 가고, 경찰서까지 에스코트를 한다. 경찰서에 도착하기 전까지 무전을 통해 부지런히 “서장님께서 지금 무슨 사거리를 막 통과하셨습니다”라는 중계방송이 이어진다. 그러곤 경찰서 정문부터 현관까지 전 직원이 도열해 한 사람씩 우렁찬 목소리로 관등성명을 복창하며 서장을 맞는다. 예의 바른 사람들이다. 


특별한 예의의 압권은 역시 대통령이다. 권력의 크기가 다르니, 예의범절도 각별하다. 서울에 사니, 가끔 대통령 행차를 만날 때가 있다. 경찰관들은 대통령 행차 몇 시간 전부터 길거리를 점검한다. 주차된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치우고, 시민들을 닦달한다. 그러곤 몇 시간째 대통령이 지나가는 ‘경호행사’를 위해 길거리에 도열한다. 도대체 저 요란한 퍼포먼스는 진짜 경호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에 대한 경찰의 충성도를 과시하려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대통령이란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 진짜로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를 시민들에게 일깨우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게 민주공화국에서 관료들이 윗분들을 모시는 방법이다. 정말 예의 바른 사람들이다. 하지만 시민이 이런 예의 바른 대접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시민은 안중에도 없다. 이게 시민이 주인이고, 시민의 대표자가 잠시 동안 공적 책임을 맡아 국가를 경영하는 민주공화국의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