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경범죄 처벌법> 즉각 폐지하라(한겨레2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1:49
조회
1635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자 비난이 쏟아졌다. ‘부끄러운 느낌’ ‘불쾌함’ 등 주관적 감정이 기준이라 뭐가 과다노출이냐, 왜 국가가 옷차림까지 간섭하냐, 게다가 옷차림이 형사처벌 대상일 수 있냐는 비난이다. 아버지 박대통령 시대의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치는 시민들도 있었다.


 민주통합당도 신속하게 대변인 논평을 냈다. 현안이 쌓여 있는데, 첫 국무회의에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이나 처리하냐며 비난했다. “범칙행위 자체를 늘려놓아 국가의 통제를 일상화하려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적절한 지적이지만 이 논평을 보며,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번 시행령은 지난해 2월 25일 <경범죄처벌법> 전부 개정안 처리에 따른 부수 절차일 뿐이다. “국가의 통제를 일상화”한다고 비난한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개정안 처리 당시 단 한명도 반대하지 않았다. 정범구 의원 한 명만 기권했고, 모두 찬성이었다. 여야, 진보 보수가 따로 없었다. 재석 167명에 찬성 166명이었다. 법률을 바꿀 땐 몰랐는데, 시행령을 바꿀 땐 갑자기 문제점을 알았다는 건가. 예전엔 멍청했지만,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자 갑자기 똑똑해졌다는 건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가볍다고는 하나, ‘경범죄’도 범죄다. 따라서 <경범죄처벌법>이 열거하는 행위들은 모두 범죄행위다. 형사처벌이 따르는 것도 물론이다. 범죄란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 공동체의 질서와 안전을 침해하는 행위, 곧 특별히 해로운 행위들이다. 특별히 해로워도 법률에 따로 정해두지 않으면 범죄가 안 된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이다. 범죄가 되려면 내용과 형식의 요구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경범죄처벌법>은 범죄의 형식 요건을 완벽히 충족하지만, 내용과 실질은 영 형편없다. 기초질서 위반 행위일지는 몰라도 공동체와 사회에 특별히 해로운 행위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형법에 ‘주거침입죄’가 있는데도, ‘빈집 침입죄’를 따로 정해두고 있다. 살지 않고 누군가 관리하지도 않는 집이나 건물에 들어가면 처벌하는 거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집이나 건물이 실제로 있는지 의문이지만, 있다 쳐도 그런 집이나 건물에 들어가는 게 누구의 권리를 어떻게 침해하는지 모르겠다. 만약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버려진 집이나 건물에 들어가는 게 심각한 재산상의 손해를 발생시키는 특별히 해로운 행위라면 형법의 ‘주거침입죄’에 합해 버리면 된다. 고작 10만 원 이하의 벌과금으로 처벌할 문제는 아니다.


 물품강매, 호객행위도 범죄행위다. 물품을 사겠다고 하지 않았는데, 상인이 ‘억지로’ 팔겠다고 청하면 처벌한다. 뭐가 억지인지는 경찰관이 판단한다. 떠들썩하게 손님을 불러도 범죄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소리치거나 신장개업 등 판촉행사를 하는 건 죄다 범죄행위다. 광고물 부착, 배포도 범죄다. 알바여도 광고물 배포를 하려면 일당보다 훨씬 많은 범칙금을 낼 각오가 있어야 한다. 담배꽁초, 껌, 휴지, 쓰레기, 더러운 물건, 못쓰게 된 물건을 함부로 아무 곳에나 버린 사람도 처벌된다. 침을 뱉거나 노상방뇨를 하는 것도 처벌 대상이다. 담배꽁초 무단 투기, 길거리에 침 뱉기는 점잖지 못한 행동이 분명하다. 공중도덕에서 벗어난 교양 없는 짓이다. 하지만 범죄일 수는 없다. 범죄는 특별히 해로운 경우에만 국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가가 우스꽝스러워진다.


 범죄니까, 범죄를 인지한 경찰은 수사를 해야 한다. 인지범죄를 수사하지 않으면 직무유기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경찰에게 바라는 것이 고작해야 광고물 무단부착이나 쓰레기 무단 투기 단속 업무인지 모르겠다. 그걸 하자고 10만 명이나 되는 인력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경찰은 진짜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시시콜콜한 일들이나 쫓아다니라고 경찰을 운영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치안이 불안하다는 소리가 많은데, 경찰이 이렇게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들만 쫓고 다녀선 안 된다.



못된 장난, 구걸, 미신요법, 과다노출도 다 범죄다. 일일이 조문을 들여다보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표현이 이렇게까지 딱 맞아 떨어지는 법률은 없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들이대면 어김없이 범죄행위를 포착할 수 있고,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


 지난해 전부 개정안의 핵심은 “술에 취한 채로 관공서에서 몹시 거친 말과 행동으로 주정하거나 시끄럽게 한 사람은 6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는 조문이다. 다들 1-20만 원 이하의 범칙금을 매기는데, 이것만 60만원으로 가장 높다. 50만원을 넘으면 현행범 체포가 언제든지 가능하다. 폭행도 기물파괴도, 욕설도 하지 않고 그저 시끄럽게만 해도 이제는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 있게 되었다. 경찰은 귀찮은 사람을 내쫓을 좋은 수단을 얻었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통치의 대상, 계몽의 대상쯤에 머물러 있다. 경찰관의 자의적 판단으로 언제든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위험도 늘 도사리고 있다.


 자의적 법적용은 위험하고 해롭다. <경범죄처벌법>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조문 투성이라,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단속 건수를 높일 수 있다.  


경범죄처벌법 범칙금 통고 처분 현황(2007년 - 2009년)



단속을 해서 즉결심판으로 넘기기도 하고, 아예 범칙금조차 매기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전체 단속 건수는 표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많다. 2008년의 통고 처분 건수는 2007년에 비해 3.7배나 뛰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기초질서 확립’을 강력히 주문한 탓이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경찰은 단속 건수를 마치 고무줄처럼 확 늘렸다. 시민의 일상이 대상이고, 자의적 적용이 가능하니 단속 건수 급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봤자, 오물투기, 음주, 인근소란, 금연장소 흡연, 노상방뇨가 대부분이다. 오물투기의 98%는 담배꽁초 투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급증했던 단속 건수는 2009년엔 다시 줄어들었다.


 <경범죄처벌법>은 전부 폐지해도 된다. 그래도 아무 이상 없다. 기초질서 위반 행위는 단속권도 지방정부에 넘기고, 형사처벌이 아닌 과태료 등 행정벌을 매기면 그만이다. <경범죄처벌법>은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을 미개한 통치대상으로 여기고 잡도리하기 위해 만든 <경찰범처벌규칙>을 그대로 계승했다.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 이런 법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법률로 살아남아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해방 68년이다. 이제는 일제가 남겨 놓은 악법에서도 해방되어야 한다.